김선교 선교사(다윗의 열쇠)
김선교 선교사(다윗의 열쇠) ©나주글로벌교회 영상 캡처

나주글로벌교회 제1회 NEXT WAVE 청년지구 X FRIENDSHIP 연합수련회에 둘째 날인 지난 7월 30일 김선교 선교사(다윗의 열쇠)가 ‘믿음의 회복’(롬 1:17)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김선교 선교사는 “코로나를 지나고 현장에서 직접 만나면서 제일 먼저 요청받는 주제가 회복이다. 문제는 우리 회복의 수준이 코로나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이 오면 또다시 흔들릴 수 있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성장의 발판을 삼아 어떠한 팬데믹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회복되길 원한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셨다는 그 은혜를 믿는 것이다. 믿음의 속성은 내가 믿어주는 게 아니라 믿어지는 것이다. 이 믿음은 내가 믿으려는 대상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믿어진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그 대상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몇 개 안다고 해서 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인격과 인격 사이에서 안다고 하는 건 반드시 경험이 전제된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교제하고 식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경험이 전제된 앎이다. 이렇게 알게 될 때 자연스럽게 알아가는만큼 그 관계 안에서 신뢰와 믿음이 형성된다. 그러니 믿음은 내 의지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믿어지는 게 아니라 믿어주는 신앙생활을 하면 힘들고 성장이 안 된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신실하심에 이론상의로는 동의한다. 그런데 그 전지전능하심, 신실하심을 경험해 본적이 없고 해석이 안 되면 앞으로의 걸음도 맡길 수가 없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을 만나지 않고 정보를 모으고 관찰만 한다면 온전한 관계가 아니다. 사랑하는 대상을 알아가는 관계가 형성되면 그 안에서 나오는 게 신뢰, 믿음이고 이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묻어난다”고 했다.

이어 “믿음은 하나님을 믿기 위해 또 다른 영적이고 신령한 믿음을 새로 만들어가는 게 아니다. 일상 가운데 원래 쓰고 있던 믿음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지 믿음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우리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믿음이 없으면 한순간도 살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믿는 능력이 충만하다“고 했다.

이어 “제가 청년 상담할 때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믿음으로 해보려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을 믿었다고 단순하게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기대하는 건 하나님을 믿었더니 뒤따라오는 나의 변화다. 씨앗에 생명이 있고 좋은 땅에 심기면 열매는 맺히는 거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고 너희는 가지니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하셨다. 확실하게 믿으면 생명으로 살아가는 삶과 어울리지 않는 건 멀리하려는 반응이 나타날 테니 제대로 믿는지 제대로 붙어있는지에 집중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김 선교사는 “우리가 믿음으로 살자고 하면 불편해지는 이유는 손양원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처럼 희생, 순교신앙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그렇게 할 수 있게 만든 하나님과의 관계를 봐야하는데 사역과 결과만 보기 때문이다. 믿음을 생각하면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더 알아간다는 기대와 설렘보다는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벌써 사로잡는다. 우리 안에 이런 믿음에 관한 인식이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성경 많이 읽고, 경건해 보이고, 찬양을 열심히 하고, 헌금 열심히 하고 기도 많이 하고 직분과 직책을 맡아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보면 성경 인물 중에 딱 들어맞는 사람은 없다. 이 기준에 딱 들어맞는 사람은 바리새인이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에서 너희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같지 않으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실 정도로 그들의 노력을 인정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노력은 인정하셨지만, 노력 자체를 믿음으로 보진 않으셨다”고 했다.

이어 “우리의 믿음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한다. 예수님이 성경에 믿음이 있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소경 바디매오, 혈루증 앓았던 여인, 나병 환자다. 예수님이 믿음이 크다고 칭찬했던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다. 딸이 귀신 들렸던 가나안 여인과 백부장이다. 예수님께선 믿음이 방법이 아니라 믿음의 원리를 가르쳐주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들의 특징은 자기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한계 앞에 섰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해봤던 사람들이다. 모든 걸 다 했는데 내려진 결론이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들이 예수님을 찾아갈 때는 예수님은 여러 가능성 중에 한 분이 아니라 유일한 마지막 소망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줄 분은 예수님밖에 없다는 결론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와 엎어진 태도를 보고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다.

김 선교사는 “우리는 죄인이다.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온갖 애를 쓰고 노력한다. 남들보다 착하게 살 수는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선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간음은 죄로 보지만 음욕을 죄로 보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공의는 간음이나 그것을 가능케 한 원동력인 음욕을 동일한 간음으로 보신다. 인간은 살인을 죄로 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분노는 죄로 안 본다. 하나님의 공의는 살인이나 분노나 동일한 살인으로 보신다. 이 하나님 공의의 기준 앞에선 깨끗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스스로는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이를 수 없다. 그러니 예수님 앞에 엎어질 때 죄인인 상태로 선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죄인인 걸 인정한 죄인이다. 답이 예수님밖에 없다고 도와달라고 엎어져 나온 그 태도를 보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다.

김 선교사는 “그런데 우리는 항상 예수님 앞에 설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깨끗하고 거룩하게 만들어서 떳떳하게 나아가려고 하지만 불가능하다”며 예수님이 훈련한 제자들의 변화를 통해 예수님이 기대한 믿음의 사람에 관해 설명했다.

그는 “이어 “베드로는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도 걷게 해 달라고 한다. 베드로의 첫걸음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간 것이다. 베드로는 물 위에 뜰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럼 그다음 걸음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가야 한다. 내 앞에 파도가 몰아칠 때 물 위에 뜨게 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가면 빠질 일이 없다. 파도가 예수님보다 크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은 뜨게 하신 예수님이 아니라 떠 있는 자기 자신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마치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한번 제대로 해볼까 생각이 들어올 때가 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행동과 성격과 성품이 바뀌는 게 아니다. 방향이 바뀌는 게 가장 중요한 변화다. 세상과 내 정욕을 좇아 살던 인생이 이제 방향을 틀어서 주님을 따라 걷는 삶까지 가는 것이다. 회개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가 방향을 전환한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이어 “방향은 바뀌었지만 내가 서 있는 위치는 정욕을 좇아 살던 삶에 더 가깝다. 그러니 내 생각과 감정도 거기에 더 익숙하게 반응한다. 예전처럼 살자니 찔리고 믿음으로 걸어가기엔 잘 안되는 상태다. 인간이 연약해서 자꾸 가던 길을 계속 가게 되는데, 이게 몇 번 반복되면 다시 돌아온 게 이상하고, 더 오래 반복되면 어차피 다시 돌아올 테니 그냥 가던 길을 가자는 신앙생활을 반복하게 된다. 기억할 건 받은 은혜는 내가 지키는 게 아니다. 그 은혜가 나를 지키는 것이다. 내가 말씀을 지키는 게 아니라 그 말씀을 붙들 때 그 말씀이 나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김 선교사는 “베드로는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했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지금은 따라올 수 없고 후에는 따라올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가장 잘 따를 수 있다고 하는 상태는 은혜를 잔뜩 받아서 심장이 뛰고 열심을 낼 때다. 그런데 그 때는 못 따라온다는 것이다. 결국 베드로는 고백한 지 하루도 안 지나서 예수님 면전에서 저주하고 부인한다. 자기의 의지로는 고백을 하루도 못 지킨다”고 했다.

이어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배신한 제자들을 찾아가신다. 베드로의 상태는 우리가 말한 믿음의 기준으로 볼 때 아무것도 바뀐 게 없고 믿음이 더 자랐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누가복음 5장에서 베드로를 처음 부르셨던 장면을 똑같이 연출하신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손에 든 그물을 놓고 겉옷을 챙기더니 물로 뛰어 들어가서 예수님이 계신 해변으로 간다. 누가복음 5장에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날 떠나소서 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와 별반 다를 거 없는 어쩜 더 흉악한 죄인인데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간 것”이라 했다.

이어 “뭔가 대단한 게 바뀐 건 아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과거에 대해 하나도 묻지 않으시고 나를 사랑하냐고 물으신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마지막 고백을 받으신 다음 네가 준비가 다 됐다고 하신다. 준비가 다 됐다고 하면 뭔가 갖춰져야 하는데, 성경엔 내 양을 치라 먹이라고 표현한다. 사도의 직분을 감당할 준비가 됐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베드로의 성품, 인격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예수님이 지금 따라올 수 없는데 후에는 따라올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네가 따라오려고 하는 그 길은 네 의지로는 못 간다는 것이다. 이 길은 너를 붙들어주시는 은혜로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가 은혜에 대한 이론을 몰랐던 게 아니다. 그런데 그가 실제 경험한 은혜,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던 그 의미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이 은혜를 네가 경험하여 알게 됐으니 준비가 다 됐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예수님은 승천하셨고 베드로는 그 이후도 수도 없이 넘어졌다. 그런 베드로가 넘어지고 흔들리고 휘청거리기도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결론은 방향은 안 바꾼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연약함은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할 이유가 아니라 연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주님이 더 필요한 것이다.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연약함을 발견할 때야말로 오히려 주님을 더 붙들 때다. 베드로는 그런 상황일 때 내 연약함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더 예수님을 붙드는 자리에 나아갔다. 그리고 끝까지 예수님을 쫓아갔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우리가 증인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증인을 세울 때 학벌, 실력을 보고 세우지 않는다. 재판이 진행 중인 그 사건을 정확하게 보고 듣고 목격한 사람을 증인으로 세운다. 하나님은 복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변호인을 찾지 않으셨다. 진짜 경험한 증인을 찾으셨다. 말은 투박해도 실제로 경험한 은혜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증인이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예수님이 찾으시는 증인이 이런 사람이라면 오늘 우리도 갈 수 있는 길이다. 이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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