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애 교수(서울여자간호대학, IMRN 대표)
김명애 교수(서울여자간호대학, IMRN 대표) ©열방교회 수련회 영상 캡처

열방교회(담임목사 최정일) 청소년부 수련회 둘째 날인 26일 오전 김명애 교수(서울여자간호대학)가 ‘하나님의 꿈’(대상 4:10)이라는 제목으로 간증과 메시지를 전했다.

김명애 교수는 “이 집회를 생각하면서 기도할 때 역대상 4장 10절 말씀을 주셨다. 이 말씀은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후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나서 힘들었을 때 고난의 순간에 주셨던 말씀이고, 제가 10년 넘게 붙잡고 기도했던 말씀”이라고 했다.

이어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혀달라고 기도한다. 지역은 내가 사는 동네의 의미도 있지만, 진짜 중요한 건 내 머릿속 생각을 넓히는 것이다. 어디까지 넓힐지는 하나님께서 아신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내 꿈과 내 지역을 넓혀달라는 기도를 하기 바란다. 또 야베스가 환란을 벗어나게 근심이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내가 환란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하나님이 생각할 때도 환란인지가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하나님의 꿈과 우리의 꿈이 같다면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것마다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으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저는 간호학과 학생을 12년째 가르치는 교수이자 간호학 박사이고, 주식회사 IMRN의 CEO다. 여러 직함과 명함이 있는데 한 번도 제 꿈이 교수, CEO, 박사, 이사인 적이 없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첫 꿈이자 비전을 가졌다. TV에서 콧물에 앉은 파리를 쫓아낼 힘도 없는 아프리카 아이를 보면서 가서 세수시켜주는 게 내 비전이 되었다. 그 꿈이 계속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어도 멈추지 않았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

이어 “꿈과 직업은 다른 것이다. 직업도 중요하지만 왜 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저는 간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그 아이의 얼굴을 씻어주러 아프리카에 간 김에 약도 발라주고 주사도 놔주려고 간호학과를 택했다. 초등학교 4학년의 꿈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도 그 꿈을 하나님께서 계속 받으셨다.”고 했다.

이어 “목사님이었던 저희 아빠는 제 꿈을 듣더니 너무 귀하다고 하시면서 손을 얹고 기도해주셨다. 선교사가 되겠다는 저의 꿈을 귀하다고 했던 아빠가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해주셨던 말이 있다. 병들고 어렵고 소외된 사람을 돌아보는 삶을 살라고 계속 기도해주셨다. 저도 제 두 딸에게 똑같이 그 기도를 계속해주고 있다. 저희 아이들 둘 다 비전이 있다. 아이들에게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삶을 살면 좋을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직업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직업을 통해서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저는 그 꿈을 가지고 나아가다가 간호학과에 입학했고, 1학년 때 아빠가 간암 진단을 받고 6개월 만에 소천하셨다. 너무 슬펐지만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뜻과 꿈을 구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10일 뒤에 의료선교대회가 열렸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너는 선교사가 될 아이니까 너의 훈련을 멈추지 말라고 하셨다. 저는 순종해서 의료선교대회에 참석했다”고 했다.

이어 “대회에서 놀라운 사진을 보여 주셨는데, 아파도 병원에 제대로 못 가고 누워서 맥주병 수액을 맞고 있는 어린아이의 사진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굶어 죽는 나라가 있어서 아프리카에 가려고 했는데, 굶어 죽다 못해 겨울만 되면 얼어 죽는 나라가 있었다. 북한의 아이였다. 그때 북한 땅을 가기로 결단했고 그 이후로 이 꿈이 흔들린 적이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부모님의 신앙교육 때문인 것 같다. 저는 당연히 선교사가 돼서 북한 땅을 갈 줄 알았다. 제가 북한을 돕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당시엔 북한은 갈 수 없는 나라였다. 북한을 위해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들어주셨다. 처음 북한에 개성공단이 생기고 같이할 간호사가 필요하다고 전화가 왔다. 저는 전화를 받고 제가 북한에 가겠다고 감사하다고 했다. 왜냐면 기도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순종하도록 훈련을 시키셨고, 어렵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을 돌아보라고 하셨는데, 그게 내 삶의 철학이 되고 비전이 되었기 때문에 북한에 가겠다고 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실제로 저에게 일어나게 된 건 나의 꿈이 이뤄질까를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이 있다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꿈과 같이 어렵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을 돌아보는 꿈을 꾸고 있다면, 상황을 보지 말고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시고 나의 지역을 넓혀달라고 계속 기도하면서 나아가면 된다. 제가 북한을 향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북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안고 같이 기도할 기회를 주셨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길 바란다”고 했다.

김 교수는 “우리에게 비전이 있는지 묻고 싶다. 비전이 무엇인가. 오늘 이 자리에 오는데 안개가 많이 껴서 앞이 잘 안 보였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이끄는 대로 가면 나올 거라는 믿음으로 나아갔다. 북한에 갈 때도 똑같았다. 안개가 많이 껴서 앞은 안 보이고 길이 지도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우리의 인생이 안개 속에 갇힌 것처럼 앞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그 안개 속에 끝을 보는 것이 비전”이라고 했다.

이어 “저의 비전은 북한에 간호대학을 세우는 것이다. 원래는 간호선교사가 되어서 나갈 줄 알았는데, 교수가 되고 박사가 되고 회사를 운영하는 CEO가 돼서 감당하게 하셨다. 이건 제가 계획한 게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가는 것인데, 다만 한 가지 비전을 놓지 않았다. 저는 꿈을 향해 나아갈 때 많은 방해가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꿈을 향해 나아갈 때 많은 방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런 방해를 주의 이름으로 물리치고 담대하게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저의 청소년 시기를 돌아보면 목사의 딸로 사는 게 쉬운 건 아니었다. 다행히 전 모범생 스타일이어서 순종을 잘했다. 그런데 내가 아빠의 꿈을 따라간 것이 아니다. 어렵고 병들고 소외된 자를 돌아보는 꿈이 있었기에 순종의 사람으로 살았던 것 같다.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이든 순종함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다 세고 계신다”고 했다.

이어 “순종했던 제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어머니가 목사안수를 받고 어렵고 병든 사람을 돌보시다가 어느 날 쓰러지셨다. 지하교회에서 어려운 분들을 돌보고 힘들게 하나님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사셨는데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하나님 향해서 헌신했던 두 분을 보고 자란 저였고 저 역시 하나님의 일이라면 무조건 달려가는 사람인데 큰 환난 같았다”고 했다.

이어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중환자실 간호사였던 저는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엄마의 수치가 중환자실 환자들의 마지막 숨 거둘 때와 똑같았다. 저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순종의 사람이었지만 그 순간 흔들리고 넘어져서 엄마에게 원망의 말을 했다. 하나님만 보고 최선을 다한 엄마가 왜 고통 가운데 돌아가시는 거냐고, 이걸 누가 알아주냐고 엉엉 울면서 이야기했다. 그때 엄마가 이게 다 너희를 위한 거라고 하셨다. 누가 알아주냐는 말에 어머니는 ‘주님은 아시겠지’ 이 한마디를 남기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의 수고, 나의 아픔과 상처, 하나님 위해서 애쓰고 기도했던 것 아무도 몰라도 된다. 주님은 아신다. 저의 엄마의 고백이지만 저의 고백이고 여러분의 고백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하나님의 꿈을 가지고 나아가고 순종하면 꿈꾸는 대로 다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번엔 뭐해줄까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꿈과 내 꿈이 같으면 된다. 제가 꿈꾼 건 선교사였고 아프리카와 북한을 돕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방식은 사람의 방식과 전혀 다르다. 선교사가 꿈이었는데 교수란 이름으로 서 있고, 아프리카와 북한에 가서 한 명 한 명 만날 줄 알았는데 지금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가장 마음 아픈 건 청소년에게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 비전을 못 찾았다면 기도하길 바란다.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비전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 비전이다. 남들은 보지 못하지만 내가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비전이다. 비전은 직업이 아니다. 그 직업을 통해 무언가하고 있는 모습이 나와야 한다. 비전이 있을 때 사명이 생긴다. 그래서 존재의 가치, 내가 이 교회, 이 나라에 있어야 할 이유가 정확히 생긴다. 그래서 비전이 중요하다. 비전을 갖게 되길 소망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제가 꿈을 이뤄가는 모든 과정 가운데 있게 해준 세 가지 비밀이 있다. 첫 번째, 하늘에 포인트 쌓기다. 하늘에 포인트를 쌓는 건 주님은 아시겠지와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이 내가 한 일을 오히려 많이 몰라줄 때 천국에 포인트가 많이 쌓인다. 천국에 포인트를 많이 쌓으면 이 땅에서도 쓸 수 있다. 이번엔 뭘 해줄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순간이 온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모든 것을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기쁨으로 나아갈 때 주님만 아시는 그 순간에 하늘나라에 나의 포인트가 쌓인다. 내 수고를 말할 필요가 없다. 주님이 아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꿈은 다양한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본질인지를 잊지 않고 하늘나라에 포인트를 쌓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멈추지 않길 바란다. 내가 한 모든 일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된다. 사람에게 보이는 건 중요하지 않다. 외모가 아니라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자녀 됨을 기뻐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두 번째, 자리 지키기다. 우리가 인생 가운데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자리를 지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떠나갈 때 끝까지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사람을 보지 않고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자리를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너무 사랑하신다”고 했다.

이어 “세 번째는 긍정의 언어를 사용하고 비난의 언어를 멈춰야 한다. 저는 어떤 상황이든지 순종하면서 원망하지 않았었다. 야베스도 욥도 요셉도 그러했다. 요셉은 엄청난 시련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부정적인 언어나 원망하는 단어가 아니라 긍정의 언어로 나아갔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의 언어를 멈추지 않으면 좋겠다. 또 비난의 언어를 금지해야 한다. 긍정적인 언어를 쓰고 원망의 말을 멈추고 축복의 언어로 바꾸면 된다. 힘들어도 축복의 언어를 계속하고 긍정의 언어가 오가면 좋겠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저는 북한에 간호대학을 세우겠다는 선포를 오랫동안 했다. 방송에 나가선 김정은에 영상편지도 썼다. 그러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선포하시는 걸 보니까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하시겠다는 게 느껴졌다. 과연 내가 북한에 간호대학을 세울 수 있을지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왜 나를 쓰시는지 정확히 알게 하신 말씀이 있다. 고린도전서 1장 26~31절 말씀이다. 내가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미련하고 약해서 택하신 것이다. 그리고 택함 받았을 때 온전히 하나님을 자랑하면 하늘나라에 포인트가 쌓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하나님께서 한 말씀을 더 감동으로 주셨다. 욥기서 23장 10절이다. 내가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아신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갈 길을 아신다.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도 기뻐하면 된다. 하나님이 우리의 갈 길을 알고 계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있고 하나님의 꿈을 안다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어 “그냥 그 길을 가게 하시는 게 아니라 단련하신다. 단련하신 다음에 순금같이 나아가게 하신다. 단련이 쉽지 않다. 그러나 나아갈 길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 길을 나아갈 때 단련하고 있다면 감사하길 바란다. 불평과 원망하지 않고 긍정의 언어로 나아가서 정금같이 만나게 되길 축복한다”고 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명애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