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환 대표(아웃오브보트)
최영환 대표(아웃오브보트) ©한성교회 유튜브 영상 캡처

한성교회에서 ‘전도와 영적 전쟁’을 주제로 4주간 진행되는 금요성령집회 첫 주인 지난 1일,‘우유곽 대학을 빌려드립니다’의 저자인 최영환 대표(아웃오브보트)가 ‘물떠온 하인들은 알더라’(요한복음 2장 1~10절)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최영환 대표는 “부산 영도라는 섬에서 태어나 수도권 대학에 가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고 기도했는데, 경북 포항에 있는 신생대학교에 가게 되었다. 대학의 슬로건이 ‘Why not change the World?’ 왜 세상을 변화시키지 않는가였다. 나 혼자 벌어 먹고살기 힘든 무한경쟁시 대에 자꾸 세상을 변화시키라니까 부담이 됐는데, 대학을 졸업할 때쯤 세상을 한번 변화시켜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대학 졸업 후 군 장교로 가게 되었다. 군대만큼은 주류로 가고 싶어서 인생을 걸었다. 4개월의 훈련기간 좋은 성적을 받으면 좋은 부대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는데, 천 명의 장교후보생 가운데 좋은 성적을 받았다. 하지만 법이 바뀌어서 컴퓨터 랜덤으로 각 부대가 결정되었다.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떡을 달라면 돌을 주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다. 부대가 결정되는 날, 나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실 하나님께 미리 감사 기도를 드렸는데, 최전방 GOP부대로 발령받았다. 그때 떡을 달라 하면 돌을 던지시는 하나님으로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떠서 문을 열면 바로 앞이 북한, 옆은 지뢰지대, 뒤는 민통선이었다. 신기한 건 태어나서 주위에 교회가 없는 걸 처음 경험했다. 그것을 알자마자 제일 먼저 기도한 게 ‘하나님 이곳에 교회를 세워주세요’였다. 과장님은 이곳은 한 번도 교회가 세워진 적이 없는 곳이라며 불가능한 기도라고 했다. 3개월이 지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왔다며 50대 중반의 아저씨가 오셨다. 부산 영도에서 오셨는데, 새벽기도를 드리는 권사님들이 교회를 세우라는 응답을 받고 돈을 모아 건축하시는 집사님에게 전달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집사님이 여기저기 알아보시다가 군부대와 연결되었고, 집사님이 오시는 그 주에 사단장님이 독실한 불교 신자에서 기독교 신자로 바뀌셨다. 사단장님은 최전방에 교회가 없다고 출입증을 써준 것이다. 그다음 날부터 북한을 바라보는 쪽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제 기도가 있을 수 있지만, 얼마나 많은 선배님들이 60년 넘는 기간 동안 이곳에서 눈물 흘리며 예배의 처소가 필요하다는 기도가 쌓이고 쌓여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최영환 대표가 우유곽에 적은 편지
최영환 대표가 우유곽에 적은 편지 ©한성교회 유튜브 영상 캡처

최영환 대표는 핸드폰도 안 터지고, 편지지도 구하기 힘든 최전방에서 우유곽 대학을 꿈꾸게 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일반 군인들과 면담을 했는데, 문제는 청년들이 다 아프다. 급변하는 이 시대에 미래가 불안하니까 아픈 것이다. 그런 친구들에게 힘내라는 말도 좋지만, 실질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노하우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때 ‘사람 살리는 일을 하게 해주세요, 저부터 좀 살려주세요’가 기도 제목이었다. 그렇게 기도하다가 삶을 살아가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인생 대학을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상상의 대학을 세워 리더십, 자기계발, 외국어 등 수십 개의 수업을 만들고, 수업마다 최고의 교수를 임명하기 시작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이채욱 대표님, 세계무역센터 수석 부총재 데이비드 리, 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 폴 신, 영화배우 안성기 등 교수들을 임명하고, 그다음 교수 초빙편지를 쓰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이어 “최전방이어서 편지지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아, 우유곽을 말려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100장쯤 적고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하나님께 그분들의 인생 노하우를 인터뷰한 다음 책을 내고, 그 책이 대한민국 청년들을 살리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하고 보내려는데 보내지 말라는 세밀한 음성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기도하면 할수록 주시는 지혜가 지금 잠잠히 있으라였다. 인간적인 욕심으로는 보내는 게 확실했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지혜면 순종하기로 했다”고 했다.

이어 “보내지 않기로 결정하고 나서 육군 본부로 발령이 났다. 군 생활 4년 중 2년은 최전방, 나머지 2년은 육군본부와 국방부에서 문화기획 일을 하게 되었다. 육군본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눈물이 났다. 2년 전 하나님께 주류로 보내달라고 이기적으로 기도했는데, 그 작은 신음 하나도 놓치지 않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없는 보직을 만들어서 데리고 오셨다”고 했다.

그는 “전역하기 일주일 전 육군참모차장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우유곽 대학의 비전을 나눴고, 전역 선물로 추천서를 받게 되었다. 최영환 장교를 만나주는 게 60만 군인, 나아가서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는 내용의 추천서를 받았다. 이후 편지지를 모아서 안수기도 한 다음 추천서와 함께 보냈다. 이후 제가 언급한 분들을 모두 만났다. 너무나 멋진 분들을 많이 만났고, ‘우유곽 대학을 빌려 드립니다’라는 책을 내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 “어느 날 ‘새로운 생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 와 있었다. 대한민국은 OECD국가 중에서 20대 자살률이 1위다. 제 책에는 한국 최초 심리학 박사님을 인터뷰한 내용이 있었는데, 그분이 자살을 세 번 시도하셨다. 그때 박사님은 분명히 이 이야기에 위로 받을 친구가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런데 21살의 남자대학생이 그걸 읽고 살기로 하고, 감사의 메일을 보낸 것이다. 정말 하나님이 다 듣고 계시고, 생명을 주관하신다는 생각에 마음이 찡했다. 제 책 마지막엔 책의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린다는 문장을 넣었다. 이 책에 신앙적인 내용은 없지만, 하나님 없이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림그리는 아이들
©한성교회 유튜브 영상 캡처

최 대표는 “우유곽대학 교수님들을 만나기 위해 전 재산을 모아서 4개월간 전 세계 투어를 했다. 한 손에는 전문성을 다른 한 손에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진 멋진 청년들을 만났다. 이 친구들과 네트워킹해서 선한영향력을 끼치고 싶었다. 뉴욕에서 21명의 예술가 청년들과 함께 돈을 모아 물감과 미술재료를 산 다음에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 가서 그림수업을 했다. 엠트리(mtree)라는 비영리회사를 만들고, ‘Brush with Hope’라는 프로젝트로 그림이란 개념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게 너무 멋졌다”고 했다.

이어 “마지막 날 희망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루이라는 아이가 세 가지 색깔로 자기 삶을 표현했다. 짙은 파란색 줄은 어두운 과거, 초록색은 재미있고 신나는 현재, 노란색은 자기의 밝은 미래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학교에 가본 적도 없이 노동 착취를 당하는 아이였는데, 그 일대가 다 그랬다. 저녁에 모이면 우리가 만났던 아이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 아이가 이 마을의 미래이고, 이 국가를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기도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는 가장이란 남자들이 책임감이 없고, 폭력이 난무하며 꿈을 가질 수 없는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그 안에 빛나는 희망을 다 심어놓으셨다. 마치 금은보화를 발견하는 것 같았다. 이것을 보라고 이곳에 우리를 부르셨다는 걸 깨닫고 감사함에 눈물이 났다”고 했다.

전시회포스터
전시회포스터 ©한성교회 유튜브 영상 캡처

이어 “아프리카 아이들의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희망을 보라는 주제로 뉴욕 첼시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현대도시를 살아가는 뉴요커들 안에 희망이 없고 공허한 것이다. 저희 그림이 전부 희망그림이어서 밝고, 신나는 토속음악이 나오는데도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먹는 아이들이 희망을 얘기하며 마음을 두드리니까 눈물이 난 것”이라며 “그때 이게 전시회가 아닌 예배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그다음 날 갤러리 오픈 전에 스텝들과 손을 잡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교회 문턱이 높아서 한 번도 교회에 가지 못한 사람들, 예수그리스도를 듣지 못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 힘들었던 마음이 갤러리에 들어오는 순간 주의 날개 아래 거하게 하시고 그 영혼을 만져달라고 기도했다. 아무도 예배할 것 같지 않은 뉴욕 맨해튼 첼시에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니 함께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전시회를 이끌어나가기 시작했다”고 했다.

최 대표는 “비영리 프로젝트다 보니까 돈이 없었다. 우리만의 길을 보여 달라고 기도하다가 이미 잘 하는 영리기업과 협업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어 “미국과 영국의 좋은 패션브랜드와 함께 협업해서 가방에 아프리카 아이들의 그림을 프린팅했다. 제품 옆에는 어떤 아이가 이 그림을 그렸고, 이 그림엔 어떤 희망의 메시지가 있는지를 적어 놓았다. 한 달 만에 완판이 됐다. 그다음 해에는 티셔츠를 만들어서 미국 163개 매장에 동시 런칭했다. 브랜드기업과 협업하니 셀럽들이 와서 홍보해주었다. 갤러리 장소에 국한되었던 메시지가 이제는 사람들이 들고 다니면서, 입고 다니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게 감사했다”고 했다.

이어 “이것을 계기로 예산이 마련되고, 케냐에서 가장 큰 교육대학과 함께 창조관을 잘 담은 미슐커리큘럼을 함께 계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잘 되면 2년 뒤 케냐의 모든 공립학교에 저희 미술 교육 커리큘럼이 퍼지게 된다. 예배드리면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게 놀라웠다. 그때는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던지시는 하나님께 불만이었는데,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는 고백이 제 입술에서 나가기 시작했다고”고 했다.

최영환 대표는 “한국에 멋진 청년들과 네트워킹하기 위해 ‘outofboat’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창단식 날, 세상을 변화시킬 커뮤니티에 관심 있는 사람은 오라고 페이스북에 광고했는데 210명이 모였다. outofboat의 미션은 각 사람이 선한 가치를 가장 잘 발견하고 실천하도록 돕는 커뮤니티다. 이 청년들의 이야기를 매거진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이 선한 영향력이 대한민국 사회에 퍼질 수 있도록 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 가족한테 너무 어려운 순간이 있었다. 제 아이가 어릴 때, 엄마아빠가 너무 바빠서 아이에게 조금 소홀했다. 한참 회의를 하는데 갑자기 아이가 안 보였다. 순간 소름이 돋아서 아내와 함께 뛰쳐나갔는데, 큰 수영장 바닥에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물에 팽창해서 얼굴 빛깔, 입술 빛깔이 없는 시체와 같았다. 의료진 수십 명이 제 아들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아이는 1분에 한 번씩 경련을 일으키는 심각한 상태였다. 의사는 뇌 손상이 있을 거라며 앞으로 못 걷거나 언어가 안 되거나 앞을 못 볼 가능성이 크니까 빨리 재활 준비를 하자고 했다. 눈물밖에 안 나고 살려달라는 기도밖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아이가 이틀 만에 깨어났는데 첫 마디가 안 보인다는 거였다. 말이 어눌하고, 걷지도 못했다. 심각하게 손상이 온 걸 보고 마음이 무너졌다. 이틀째 밤, 호흡기가 꽂힌 기계에 자꾸 오류가 났다. 자꾸 오류가 나면 산소 공급이 안 되기에 너무 불안했다. 앞에 아무것도 없는데 ‘스크린 블록’이라는 오류 메시지가 뜨니까 간호사도 이상하다고만 했다. 순간 보이지 않는 뭔가가 아들한테 가고 있어서 스크린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오셨을 수도 있다며 아내와 함께 기도했다. 그다음 날 아들이 눈을 떠서 보기 시작하고, 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3일 만에 일어섰다. 의사들이 미라클 보이라며 너무 특이한 사례라고 했다”며 “우리의 소식을 들은 작가님이 기도할 때 너희는 잠잠히 있으라 내가 하나님 됨을 알려주리라 하신 강력한 말씀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 어려운 순간에 있거나, 앞길이 막혀서 막막한 분도 계실 것이다. 내가 왜 이 무거운 돌항아리를 들어야 되냐고,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때 순종하며 나아가면 연회장이 와서 이야기한다. 세상 논리는 처음에 좋은 것을 갖다주고 취하면 질 낮은 술을 갖다주는데, 여기는 어떻게 더 좋은 술을 갖다 놓냐고 할 때 물 떠온 하인들은 알게 된다”고 했다.

이어 “어떻게 역사상 한 번도 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곳에 교회가 세워졌는가. 뻔하고 뻔한 자기계발 서적이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가. 저주받은 땅이라 불리는 곳, 알코올 중독 아빠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노동착취를 당하는 아이의 그림이 어떻게 바다 건너 뉴욕 맨해튼에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고 있는가. 어떻게 뇌 손상을 받은 아이가 3일 만에 일어서서 말을 하고 보고 있는가. 세상 논리로 설명 안 될 때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가 지금 돌항아리를 들고 가는 순간, 하나님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냐고 할 때 반드시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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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환 #우유곽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