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4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자행했다. 평양 순안비행장 인근에서 발사돼 동해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떨어진 이 신형 ICBM은 일반각도로 쏘면 워싱턴과 뉴욕 등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어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제사회에 약속한 ICBM 발사 유예를 스스로 파기한 것으로, 한반도와 지역, 국제사회에 심각한 위협을 야기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를 명백히 위반했다”고 했다.

대통령직 인수위도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도발 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 북한 도발 행위를 강력히 규탄했다. 또 “한미 간 철저한 공조를 토대로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의 도발에 강력히 대응해 나가야 한다”며 유엔 안보리 소집을 촉구했다.

북한이 ICBM을 쏜 건 4년 4개월 만이다. 북한 김정은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6차 핵실험에 이어 ICBM을 발사하더니 곧바로 핵실험과 ICBM 발사 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북한의 이런 표변은 미국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평화 쇼’를 벌이기 위한 전초전 성격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이 참가하고 이어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것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문 정부 임기 말에 ICBM 도발을 재개함으로써 이런 위장 평화의 종말을 고했다. 동시에 문 정부가 북한에 온갖 굴욕을 당하며 공들여 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종전선언’도 공중 분해된 느낌이다. 말뿐인 평화가 가져다준 결과가 이토록 참담한 것은 북한에 핵무기를 완성할 시간만 벌어줬을 뿐 아무것도 남은 게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ICBM 도발 재개에 있어 문 정부가 저지른 가장 큰 과오 중 하나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확실하다”며 미국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한 일이다. 그 결과로 2018년 6월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대통령 재선을 노리던 트럼프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까지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깨지면서 동시에 ‘평화 쇼’도 막을 내리게 됐다.

그런데도 여권은 대통령이 5년 내 공들여온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엄호에 나선 모습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최근 출간한 자신의 책에서 “남북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최소화되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사라졌다”고 문 정부의 안보를 치켜세웠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가 최대 치적으로 내세우는 K-방역과 남북 평화 정책 모두 실패했다며 비판에 날을 세웠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 집무실·관저 이전 추진에 대통령과 민주당이 ‘안보 불안’ 운운하며 발목잡기에 나서자 “문재인 정권이 안보를 얘기할 자격이 있느냐”며 격앙된 모습이다.

사실 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5년간 안보와 관련해 해 온 일들을 열거하면 대통령집무실 이전을 놓고 안보 불안을 거론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ICBM 도발에 문 대통령이 NSC를 열어 뒤늦게 북한을 규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뭔가 낯설고 어색한 것도 그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연례 한미군사훈련 재개와 관련해 “필요하면 남북군사위원회를 통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라고 해 놀라게 하더니 북한이 반발하는 한미연합훈련을 실제 기동 훈련 대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한 장본인이다. 북한이 미사일과 방사포를 쏴도 매번 “불상의 발사체” “군사합의 위반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 분이 후임자가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하자 “안보 불안을 야기한다”며 자신이 ‘국군통수권자’임을 들먹이는 모습에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문 정부가 북한 김정은과 손잡고 벌인 ‘평화 쇼’의 직접 피해 당사자는 미국과 국제사회가 아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대한민국 4천5백만 국민이다. 우리 군의 방위 능력과 태세로 볼 때 북한이 핵무기 도발을 감행할 경우 이를 방어할 시스템을 단기간 내에 갖추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균열이 간 한미동맹을 봉합하고 우방의 핵우산 보호 아래 국가 안보태세를 재점검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의 방법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보듯 전쟁이 발발하면 국제사회가 직접 개입하는 건 현실적으로 난관이 적지 않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25일 비공개회의에서 북한의 ICBM 시험 발사를 규탄하는 언론성명을 내려다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북한도 그런 분위기를 간파하고 불장난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권교체기마다 크고 작은 도발로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전례로 볼 때 북한의 장난은 이번 신형 ICBM 시험 발사 하나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핵실험 재개의 징후도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런 안보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세다. 과거와 같이 말뿐인 평화, 그 망상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대북제재를 풀어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과 같은 당근을 주면 핵을 포기할 것이란 착각에서 벗어나 확실한 힘의 우위로 위태로운 평화를 지켜야 한다.

그런 만큼 윤석열 당선인의 어깨가 취임 전부터 무거워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윤 당선인의 과제는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강화하는 것이다. 전과 다르게 적극인 자세를 보이는 중국에 대북 억제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하는 일도 필요하다.

국민은 한반도 평화마저 ‘쇼’로 전락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해 온 정권을 이미 심판했다. 이제부턴 대선 과정에서 보인 남남갈등을 치유해 사회 통합을 이루고 국민 모두가 국가 안보를 위해 똘똘 뭉치는 게 최우선이다. ‘쇼’는 끝났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