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니 크로스비
패니 크로스비

평생 앞을 보지 못했던 찬송가의 여왕 패니 크로스비의 삶에는 5가지 특별한 특징이 있었다.

첫째로 그녀는 매우 부지런한 일꾼이었다. 패니 크로스비는 매우 열심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느 곳에 있든지 그냥 앉아 있었던 적이 없었다. 늘 움직이거나 말을 하거나 무엇인가를 했다. 그리고 친구들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작은 가방과 뜨개바늘을 선물로 주었다. 그녀는 뉴욕 맹인학교시절 훌륭하게 배운 능숙한 솜씨로 친구들에게 목욕용 수건 짜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비록 앞이 보이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으나 그것을 핑계로 절대로 게으르거나 나태하지 않았다. 때때로 가만히 있는 시간에도 누군가에게 시를 읽도록 부탁하거나 뜨개질을 하던지 해야 했다. 패니는 부지런한 인물이었다. 그녀는 밤에 너무 일찍 자는 것을 피했다.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시간이 남으면 성경을 암송했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해 늘 골방에 들어가 기도했다.

    둘째로 그녀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었다. 항상 자신이 원하는 시를 어느 곳에서나 거의 틀리지 않고 암송할 수 있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악보를 보는 다른 사람들보다 찬송을 더 정확하게 불렀으며, 성경을 읽을 때에도 모든 장과 절을 틀림이 없이 외울 수 있었다. 그의 기억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탁월했다. 그녀는 머리 안에 거대한 자신만의 서랍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그 서랍에 생각해두었던 많은 시들을 넣어두었다가 자신이 필요로 할 때면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었다.

   또한 셋째로 그녀는 남을 돕는 이타적인 마음씨를 소유했다. 그녀는 절대 이기적이지 않았고 자신이 소유한 것들을 남을 위해서 철저히 썼다. 그녀는 부자가 아니라 부유한 영혼을 가진 여인이었다. 그녀가 마음먹었으면 얼마든지 부유한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는 삶이 아님을 깨닫고서는 늘 검소하게 살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더 잘되고 행복하게 되기를 어느 곳에서나 바랐다. 그녀는 또한 교회나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수입이 생기면 기부하기를 좋아했으며, 자신이 받은 것들을 더 많이 남에게 주고자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받았던 모든 것들을 주었다. 심지어 그녀에게는 평생 가재도구가 거의 없었으며 자신이 죽을 때 재산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말년에는 세를 낼 수 없을 정도의 심한 고통을 느꼈음에도 그녀는 오히려 불쌍한 고아들을 생각했다. 그녀는 평생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귀한 재능을 주신 것에 대해 늘 감사했다. 그녀가 가장 기뻐한 일은 자신의 시를 듣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설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몸과 마음은 생기가 돌았고 그때마다 힘이 넘치는 것을 느끼곤 했다.

   넷째로 패니 크로스비는 가는 곳마다 모든 사람에게 마치 태양빛과 같은 변함없는 기쁨을 주었다. 그녀는 슬퍼하거나 후회하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항상 기쁨으로 살아있었다. 패니의 구름 속에는 항상 밝은 빛이 있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중 하나는 “당신을 알게 되어서 매우 행복합니다.”였다. 그녀의 마음속 넘치는 기쁨은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에게, 늙은 사람이나 젊은 사람, 그 누구에게나 뿌려졌다. 그녀의 기쁨은 전염성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기쁜 영혼을 통해 행복해졌으며 마음속에 그 기쁨을 간직하고자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는 놀라운 평안함이 있었다. 그 평안은 많은 사람들의 영혼의 고통이나 무거운 짐들을 가볍게 하는 평안이었다. 그녀가 지은 수백편의 찬송가에는 약함을 강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었는데 그 힘은 주님이 주시는 그녀의 평안 속에서 나왔다. 혹 친구들이 어려움에 처하고 상처 입은 것을 그녀가 알았을 때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일은 참으로 간단한 일이었다. 그녀가 그들을 단지 만났을 때 모든 고통이 해결되었다. 어려움을 당한 영혼들을 위해 메시지를 준비할 때까지 그녀는 결코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단 하루도 자신의 사역을 감당하며 기쁨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모든 사람에게 평안이 되었던 그녀가 언젠가 40년 동안이나 앞을 보지 못했던 맹인학교 친구 앨리스 홈즈가 고통 속에서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크로스비는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고 그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녀는 홈즈를 만나기 위해 한 친구와 함께 오랜 여행 끝에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앨리스 홈즈는 맹인이기도 했으나 약간 귀머거리였다. 크로스비가 그녀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아주 오래 전 옛 친구를 알아보았다. 크로스비는 자신의 팔로 앨리스에게 입맞춤하고 그녀를 껴안았다. 그리고 두 명의 맹인들은 한참동안이나 안고 울었다. 그녀는 마음을 다해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위로했다. 패니가 떠날 때 앨리스가 말했다.

   “패니, 당신의 방문으로 나의 마음은 위로받았습니다. 나의 영혼은 당신을 만나는 순간 평안해졌어요. 당신을 곧 볼 수 있기를 고대해요. 안녕, 패니, 우리는 언젠가 더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패니 크로스비는 댄스 홀, 술집, 술주정꾼, 거리의 여자들, 난폭한 사람들, 불결한 사진을 파는 작은 가게 사이에 살았다. 그곳은 소매치기와 흉한들이 강탈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남북 전쟁에서 버림받은 팔, 다리, 또는 눈이 없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구걸하고 있었다. 존경받을만한 이들은 거의 보디가드 없이 지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패니는 거기서 사는 것을 선택했다.

   이스트사이드 저지대가 빈민가가 되기 오래 전에, 패니는 존 스트리트 감리교회를 다녔었다. 여러 해 동안, 그녀는 가난한 이웃 근처에 살았지만, 지금처럼 불결하지는 않았었다. 비글로 & 메인 출판사 가까이로 이사 온 후에, 그녀는 여전히 이스트사이드 저지대로 사명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기 위해 갔다. 이제 많은 선교 시설이 있었고, 어떤 곳은 교회가 헌금을, 다른 곳들은 패니 같은 사람들의 기부를 받았다. 그녀는 그리스도께 돌아갈 많은 사람들을 인도해야하는 죄악의 거리로 다시 돌아가는 사명을 받았다.

   패니는 특별히 제리 매컬리와 가깝게 되었는데, 그는 워터 스트리트 선교회를 설립했다. 그는 거리의 갱으로 삶을 시작했고,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강도로 5년 형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존 스트리트 감리교회에 전도될 때까지 건달로 떠다녔다. 10년 후 매컬리는 웨스트의 32번가의 3층 건물에 큰 선교 시설을 열었는데 집이 없고 직장이 없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옷, 은신처, 그리고 교회로 인도해주었다.

    거리에는 더 많은 선교 시설들이 생겨났다. 평신도, 앨버트 룰라프손의 바워리 선교 시설, 그리고 휘트모어의 ‘희망의 문’은 오갈 곳 없는 “거리의 여성”을 위한 집이었다. 패니 크로스비는 이곳에서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맹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는 “빛 속을 걸어가는 기쁨”에 대해 말했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께 헌신하게 해주었다. 술 취한 사람들이 바워리 거리에서 소동을 일으켰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항상 그들로 하여금 금주(禁酒)서약에 서명하게 했다.

   한 번은 거리의 선교시설에 연설할 때에 한 알코올 중독자가 자신이 바로 돌아와야 할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했고 연단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패니는 그에게 “그리스도의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물었다.

   “오, 그게 무슨 상관이 있죠? 난 친구가 없어요,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요.”

   “당신의 생각은 옳지 않아요.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좋아하고, 역시 다른 사람들도 당신을 좋아합니다. 내가 당신의 영혼의 행복에 깊은 관심이 없다면 난 분명 여기서 이 문제에 관해 당신과 이야기하지 않을 거예요.”

   패니가 그에게 성경을 암송해주었을 때, 그 남자가 물었다. “내가 내일 여기 모임에 온다면 그리고 서약에 서명한다면, 나와 함께 있어 줄 건가요?”

   “그럼요, 난 여기에 다시 올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서약에 서명하는 것을 말리지는 않겠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서명은 당신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주시겠어요?”

   다음날 저녁 그가 다시 왔다. 패니는 그의 손을 잡고 주님께로 인도했다. “그날 밤, 우리는 그의 눈에서 새로운 빛을 보았고 그의 목소리에서 변화를 느꼈습니다.”

   패니는 결코 술을 마시는 것을 죄로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인도되어 헌신된다면 금주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 문제에 대한 그녀의 부드러운 접근 때문에 술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글로 & 메인 출판사가 알코올 중독과 싸우기 위해 찬송가를 출간하기 시작했을 때, 패니는 그것들을 그녀의 금주 찬송가로 채웠다.

   거리에서 그리스도께 영혼을 인도하는 것은 그녀 생애의 큰 사명이 되었다. 그녀는 그 일을 찬송가와 목소리, 손, 그리고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지고 했다. 그녀는 매일 밤 선교 시설에서 일했고 하나의 일을 하면서 또 다른 일을 했다. 길 잃은 영혼이 다가와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따랐다. 패니 크로스비가 말씀을 전하는 밤이 되면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녀의 겸손한 메시지에 사로잡혔다.

   “우리의 친절함은 많은 사람들을 빛 안으로 들어오게 할 뿐만 아니라 은혜 속에서 그들을 자라나게 할 수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우리는 수줍은 많은 영혼들을 무심코 그냥 지나칩니다. 우리의 친절한 말 한 마디에 혹 그들이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녀는 자신의 시간을 자유롭게 헌신했고 결코 선교 일에 대한 보수를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보상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왔다. 그녀는 인류를 사랑했고, 특별히 하나님의 커다란 은혜를 필요로 하는 자들을 더욱 사랑했다. “인간이 죄지은 자라고 말하지 마세요,”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신은 그의 죄를 지적함으로써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요. 그에게는 용서와 사랑만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을 믿으며 절대로 놓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그가 확신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세요.”

   패니는 자신이 말한 것들을 실천했다. 그녀는 때때로 어둠 속에 숨어 있으며, 빛을 구하는 어려움에 처한 영혼들을 매일 찾았다. 어느 날 밤 거리집회에서 그녀는 앞에 앉은 한 사람이 인생의 교차로에 서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예배가 끝났을 때, 그녀는 그의 어깨를 만지면서 속삭였다.

   “초청을 하면, 당신은 결단을 할 건가요?”

   그는 주저했고, 그러나 물었다, “그러면 저와 함께 해주실 건가요?”

    패니는 주님께 또 다른 “구원 받은 영혼”을 허락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다.

   1870년 대 후반과 1880년 대 초반에 패니 크로스비는 바워리 거리와 그리고 워터 스트리트 선교회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그녀는 거리를 걷고 설교 예배당에 앉아 있을 때마다 술, 담배, 그리고 해충이 들끓는 세탁하지 않은 옷들의 냄새를 맡아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모든 타락한 영혼들을 사랑했고, 그 거리를 걸었던 모든 해 동안 “그들 중 누구도 내게 추하지 않았습니다.”고 고백했다.

    ‘뉴욕 서피스카 운송회사’의 사장인, 윌리엄 락이 패니의 선교사역을 알았을 때, 그녀를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그의 많은 직원들은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일주일 내내 일하는 고단한 삶이었고, 승객들에게 욕설을 했으며, 인생에서 기쁨을 거의 찾지 못했다. 몇 시간의 여가가 주어지면,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바워리 거리의 싸구려 술집으로 갔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락은 그들의 영혼이 돌아오게 하는 길만이 그들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패니에게 요청했다.

   패니는 물론 동의했다. 락은 그의 차장들과 운전사들을 주일예배에 나오도록 했고 그들을 위해 차고에 공간을 제공했다.

   “처음엔 단지 극소수가 왔어요, 그러나 마침내 그 작은 방은 ‘철도’ 소년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녀의 예배는 매우 성공하였고 “소년”들은 YMCA의 철도 지부를 만드는 일을 도왔다. 그들은 뉴저지의 호보켄에 사무실을 냈고 이 소식은 곧 나라 전체로 퍼졌다. 그녀의 활기 찬 여생 동안, 패니는 동부 해안의 YMCA의 정규 연설자가 되었다. 그녀는 그 “철도 소년”들을 항상 마음에 품었고 그들에게 바치는 시를 썼다.

당신의 손을 얼마나 잡고 싶은지,
당신들에게 하나 씩 하나 씩 얼마나 인사하고 싶은지
그러나 우리는 지금 너무 멀리 떨어져 있네,
이루어 질 수 없는 일.
그러나 난 바라고 바라고 또 기도하네
하늘의 영원한 기쁨이
이슬처럼 당신의 머리에 떨어지기를,
내 고귀한 철도 소년들.

   여러 해 동안 그녀는 거리에서의 선교사역을 잘 감당했고, 비글로 & 메인 출판사와 일을 계속했다. 종종 그들은 어려운 요구를 그녀에게 했는데, 때때로 그녀에게 영감을 주지 않는 주제에 관한 시를 부탁했다. 그녀는 비록 나이 들었지만 결코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공식적인 초청과 사회적인 일 때문에 자정까지도 찬송가 일을 시작할 수 없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썼지만 비글로 & 메인 출판사가 원하는 것을 항상 제 시간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매일 매시간 복음을 전하는 바쁜 중에도 패니 크로스비는 침묵의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그날그날 복음을 전하면서 주께로 돌아온 영혼들을 생각했고 감사했다. 그녀는 이 시간을 통해 그리스도의 임재하심과 성령의 감동을 마음속에 충만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하늘에서 노래하는 “하늘 합창단” 의 훌륭한 화음을 들을 수 있었고 그녀의 영혼이 주님의 감동 가운데 밖으로 움직여나가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때때로 그녀는 할머니의 존재를 느꼈고,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와 대화했으며, 모두 와서 패니의 자정 기도에 함께 했다. 커다란 영감의 시들이 그녀의 헌신으로부터 넘쳐났다. 때때로 그것들은 꿈길에 나타나서, 인생의 어려움이 거처하는 침묵의 계곡으로부터 흘렀다. 영혼구원 사역을 하면 할수록 그녀의 마음은 시적 영감이 넘쳐났다.

   거리의 영혼들을 위해 사역한 어느 늦은 밤 기도 후에 패니는 다시 어머니의 존재를 느꼈다. 시의 조각조각들이 마음속에 모아졌고 그녀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어났을 때, 시는 그녀 기억에 와서 정리되었다. 그녀가 비글로 & 메인 출판사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서기에게 이 시를 암송했다. 그녀의 어머니께 바치는 시였다.

가진수 교수
가진수 교수

그녀의 인생 항해는 끝이 나고,
그녀의 닻은 굳건히 던져졌네.
많은 폭풍에 용감했던 그녀의 돛단배는
마침내 항구에 안전하게 정착했네.
그녀의 소중한 것에 둘러싸여,
우리의 어머니는 사라졌네.
황금 일몰 아래
여름 찬란한 그 날,
오, 어머니, 우리는 갑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다시 당신의 손을 잡을 때까지,
그리고 축복의 노래를 부를 때까지
밀 더미를 모아
낫으로 베어내고
영원한 영광을
그리스도를 통해 그녀의 영혼이 승리하기를.

가진수(월드미션대학교 예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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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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