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1] 성경 속 위인들 가운데서 가장 억울해 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누구라 생각하는가? 앙케이트 조사를 하면 랭킹 1위로 선정될 가능성이 많은 인물이 요셉이다. 사실 요셉만큼 억울한 일을 연거푸 당한 이도 드물다. 아버지의 일방적인 편애를 받다가 이복형들로부터 미움을 샀다. 하나님이 꾸게 하신 꿈을 내뱉았다가 거듭 이복형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또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도시락을 갖다 주었다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다.

[2] 시위대장 보디발 집에서 인정받는가 싶더니만 그 부인의 유혹을 떨친 괘씸죄에 걸려 감옥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가 들어간 감옥이 하필이면 왕의 역모죄에 해당하는 중범죄인들이 들어가는 특수 감옥이다. 거기서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주어 그가 요셉의 꿈대로 풀려나 왕궁으로 돌아가지만 자신의 억울함을 바로에게 말해달라는 요셉의 부탁은 잊어버리고 만다.

이런 일들만 골라서 겪은 이에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므로 형통하게 되었다”라는 말씀이 과연 어울리는 것일까?

[3] 전혀 아니다. 요셉을 인생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주범들이 누구인가? 요셉의 이복형제들이 아니던가! 뿐만 아니라 보디발의 아내도 한 몫을 크게 했다. 술 맡은 관원장 역시 요셉에게 남아 있던 한 가닥 기대와 소망마저 완전히 좌절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셈이다.

이럴 때 우리는 스스로 어떻게 반응하는가? “내 인생은 어째서 이리도 복이 없는 걸까? 난 왜 하는 일마다 다 잘 안 풀리냐? 하나님은 살아계시기나 한 것일까?”

[4] 하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의 상황이나 억울하게 보이는 순간이 사실은 하나님의 드라마틱한 반전쇼를 구경하기 위한 전초전에 불과함을 아는가? 요셉의 인생을 절망의 코너로 몰아넣은 주범들이 사실은 자기를 애굽의 총리로 앉게 해준 일등공신 역할을 하게 됨을 아는가? 테이프를 되감아 굴곡 많은 요셉의 인생에 잔뜩 묻어 있는 하나님의 지문을 발견해보라. 요셉이 형들에게 배신을 당하지 않았다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5] 그가 노예로 팔려가지 않았다면 보디발의 집으로도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보디발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보디발의 아내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보디발의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왕의 죄수들만 가두는 특수 감옥에 갇히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특수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셉이 그의 꿈을 해몽하지 않았다면 바로의 꿈을 해몽할 기회도 잡지 못했을 것이다.

[6] 바로의 꿈을 해몽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면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구덩이에서 왕궁으로, 노예복에서 총리복으로, 지저분한 길바닥에서 국회의사당과 청와대로, 헛간에서 백악관으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 덕분이었다. 그러니 눈앞의 암담해 보이는 상황을 보고 낙심하지 말라. 지금 경험하는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가슴 아픈 현실로 인해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말라.

[7]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도 함께 계신다.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아니 실패할 수가 없다.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등극시킨 인간 주인공들은 누구인가? 첫째는 이복형제들이다. 그들이 요셉에게 분노하여 애굽에 노예로 팔지 않았다면 과연 그와 그 가족들의 미래는 어떠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8] 둘째는 보디발의 아내이다. 그녀로 인해 요셉이 특수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요셉의 미래는 어찌 되었을까? 보디발의 집에서 집안총무 자리에 앉아 편안히 살았을 진 모르지만, 바로와 연결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는 술 맡은 관원장이다. 그는 요셉의 꿈 해몽대로 복직되어 왕궁으로 되돌아갔다. 출옥할 때 요셉이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기억해서 바로에게 말해달라고 관원장에게 부탁했다.

[9] 당시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으로부터의 기별을 매일 얼마나 학수고대 했을지 상상해보라. 이제나 저제나 왕궁으로부터의 ‘무죄석방!’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아무런 소식이 없자 그의 마음이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라. 만일 술 맡은 관원장이 왕궁으로 돌아가자마자 즉시 바로에게 요셉의 억울함에 관해서 고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10] 그와 바로와의 만남은 결코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관원장이 복직되자마자 요셉을 기억해서 바로에게 고했다면 기껏해야 감옥에서 풀려나 ‘고향 앞으로 가!’는 일 밖에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는 바로가 꿈을 꾸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요셉이 총리가 되려면 바로가 꿈을 꾸기까지는 절대로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는 일이 발생하면 안 되었단 말이다. 그게 바로 창세기 40장 23절에서 일어난 상황이다.

[11]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아, 술 맡은 관원장의 ‘은혜 망각’이 우선은 야속해보일지 몰라도 요셉에게 얼마나 상상 못할 큰 영광과 축복을 가져다줄 것인지를 누가 알았으랴!

상대방의 배은망덕한 모습으로 인해 상처입고 분노에 차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 일로 인해 요셉에게 얼마나 더 놀라운 기적이 선물로 주어졌음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11] 요셉이 이복형제들과 보디발의 아내와 술 맡은 관원장을 통해 경험한 쓰라린 버림받음과 억울한 누명 뒤집어 쓰기와 은혜 망각은, 당하는 순간은 힘들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을지 몰라도 인내로 참고 견디는 이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행복과 기쁨을 안겨다 주고 말았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어김없이 가능함을 기억하자. 요셉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은 우리와도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만 믿고 늘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자!

신성욱 교수(아신대학교 설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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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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