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다 스미스
아만다 스미스 ©영국 크리스천투데이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캐논 존이 그의 웹사이트 ‘canonjjohn.com’에 쓴 ‘최초의 국제 여성 전도자가 된 흑인 노예’라는 제목의 기사를 소개했다.

캐논 존은 영국 촐리우드에 본부를 둔 기독교 비영리 단체인 ‘필로 트러스트(Philo Trust)’의 설립자이자 이사이다.

다음은 그가 소개한 최초의 흑인 여성 전도자 ‘아만다 스미스(Amanda Smith)’에 관한 요약이다.

아만다 스미스의 삶은 특별했다. 그녀는 흑인 노예에서 최초의 국제 여성 복음전도자가 되는 여정을 지나왔다.

아만다는 1837년 미국 메릴랜드주에서 13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노예였고 그녀도 노예 신분이었다. 가난한 환경에도 아만다는 기도와 성경을 읽는 환경에서 자랐고 부모님에게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그녀의 아버지는 고된 노역을 통해 처음에는 자신을, 다음에는 가족을 위해 자유를 살 수 있었다.

노예로부터 해방되었지만, 아만다는 여전히 차별을 받았고 매우 제한적인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13살에 가정부가 되었고 30대 중반까지 가정 도우미로 일해야 했다. 그녀는 17세에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한 명만 살아남아 성인이 됐다. 그녀의 남편은 남북전쟁에서 사망했다.

20대 초반에 아만다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그녀의 중병을 기적적으로 치료해 주셨다고 느꼈다. 얼마 후 그녀는 회심하여 개종하기에 이르렀다. 미혼모가 된 그녀는 다시 결혼했지만 슬프게도 그녀를 속인 남편은 그녀를 버렸다. 아만다는 3명의 자녀와 함께 가난에 빠졌고, 모두 유아기에 죽음을 맞을 지경이 되었다.

점차 아만다는 감리교 교회 모임에 참여했고, 유명한 전도사가 되었으며, 그녀를 통해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교회(흑인이든 백인이든)와 기독교 모임에서 믿음을 갖게 됐다. 그녀는 180센티에 가까운 키에 풍부한 성량, 노래에 대한 놀라운 재능을 가진, 활기차고 역동적이며 즉흥적인 강력한 연설가였다. 동시에 영향력있는 설교자였다. 그녀가 말하는 곳마다 사람들은 회심했고, 뉘우침에 압도당했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느꼈다.

1869년에 막내 아들과 두 번째 남편이 죽은 뒤, 아만다는 전임 선교사로 부름을 받았다고 느꼈다. 해방된 흑인 노예로서, 그녀는 세탁부(washerwoman)에 불과했고, 교육이나 정식 훈련 없이는 어떤 공식적인 교회 지위도 얻을 수 없었다. 대신, 아만다는 은사를 받아 믿음으로 살아야 했다. 그녀는 믿음으로 행동했으며, 계획을 세우는 대신에 모든 것을 기도하고 자신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다.

아만다는 회심과 거룩함에 중점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 특별 행사에서 설교하기 시작했다. 1878년 그녀는 영국에서 열린 케스윅(Keswick) 대회 연설에 초청을 받았다. 그녀는 곧 영국 전역의 부흥 집회에서 인기있는 설교가가 되었다. 그녀는 설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많은 군중들을 매료시켰다.

아만다는 인도로 초청받아 그곳에서 18개월 동안 부흥 집회를 열어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에 그녀는 아프리카를 방문했고 8년 동안 전도 활동을 하고,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에 학교를 세워 선교활동을 했다.

마침내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아만다는 자신의 영적 여정과 삶, 그리고 19세기 흑인 여성이 직면한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문제들에 대한 목격담을 토대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892년부터 그녀는 일리노이 주에 고아원을 설립하여 운영함으로써 흑인 미국인 공동체를 돕는 데 주력했다.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자, 아만다는 플로리다로 이주하여 1915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만다 스미스는 40년 동안 4개 대륙에 걸친 전도 및 부흥에 하나님이 특별히 사용하셨던 가장 가망없는 배경의 인물이었다. 그녀의 성공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덕택이지만, 그녀는 하나님이 그녀의 삶에서 일하시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아만다의 삶에 대해 세 가지가 생각난다.

첫째, 그녀는 하나님께 의지했다. 아만다는 광범위한 인종적 편견에 맞서, 제한된 교육을 받고 일하는 가난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한계 때문에 그녀는 하나님과 그분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아만다 스미스의 삶은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가장 작게 여기는 사람을 통해 가장 많은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둘째, 그녀는 하나님을 갈망했다. 19세기의 ‘성결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강조와 열정은 오늘날에는 인기가 없다. 아만다는 하나님을 찾고 그분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자신의 삶에 반영하는 것을 가장 우선시했다.

셋째,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냈다. 아만다는 고통받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5명의 자녀 중 4명을 잃었고, 빈곤한 삶을 살았으며, 종종 2류 시민으로 취급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놀랍도록 은혜로운 삶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자신이 겪은 인종차별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그녀는 공개적으로 차별을 제기한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흑인과 백인 사회의 장벽을 허물고 다리를 놓는 등의 엄청난 선행을 보였다.

아만다 스미스는 그녀의 세대에서 하나님을 위해 많은 것을 성취했으며, 우리를 위해 모범을 보였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