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박순종 전도사(한터교회, 총신대 재학중)
탈북민 박순종 전도사(한터교회, 총신대 재학중) ©‘에스더기도운동’ 유튜브

탈북민센터 북한구원 화요예배 6일 모임에서 탈북민 박순종 전도사(한터교회, 총신대 재학중)가 간증했다.

박 전도사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북한에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고, 태어나보니 북한 땅이었고, 아버지는 탄광 노동자였다. 아버지는 저에게 탄광 일이 너무 힘들고 위험하니까 자신처럼 힘들게 살지 말라며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셨다. 탄광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22호 정치범수용소가 있었다. 1986년, 갱에서 탄을 다 캐자 22호 정치범수용소에 있는 중봉 지역에서 석탄을 캐라는 국가의 지시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정치범수용소 지역은 처음 들어가봤는데, 이사한 집은 하필이면 죄수들이 살던 집이었다. 장마철이 되니 빗물이 고여서 천장이 축 처졌고, 젓가락으로 구멍을 뚫고 물을 받아야 했다. 지붕에 올라가 기왓장을 열어보니까 나무가 촘촘한 일반 집과 달리 나무 껍데기 같은 게 듬성듬성 되어 있어서 널빤지 틈으로 방안이 다 보였다. 죄수들이 살던 집이라 열악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인민학교 시절 동네 친구의 할머니 집에 놀러 갔는데, 책을 보는 저에게 할머니는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그러고는 옛날 책을 펴서 들고 오셔서 읽어 보라고 하셨는데, ‘예수께서’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읽고 ‘아멘’ 하라고 하셨다. 시키는 대로 하니 할머니가 저를 안아주시며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셨다. 한참 지나서 할머니가 내가 너에게 한 것은 좋은 것이고, 크면 알게 된다며 다른 사람이 알면 안 되니까 비밀로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때 할아버지가 들어오셔서 할머니와 대화를 하시더니 그걸 말하면 큰일 나는데 왜 했냐고 하시더니 한숨을 쉬셨다. 그때 말하면 안 되는 거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이어 “하루는 친구와 사진관을 갔다. 20대 중반의 사진사 아저씨가 저희에게 외국 그림책을 보겠냐며 가져오셨는데,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였다. 나중에 또 놀러 오라는 말에 한 달 뒤에 사진관을 찾았는데, 아저씨가 없었다. 친구를 통해 수소문해보니 안전원들이 사진관에 와서 아저씨에게 욕을 하고 때리고 잡아갔다는 것이었다. 겁이 나서 친구와 둘만의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오후 시간에 학생들을 다 모으더니 성경책을 들고 이 책을 읽거나 본 사람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할머니와의 약속이 생각나서 가만히 있었는데, 선생님은 앞으로 이런 책을 보게 되면 선생님이나 안전원에게 신고하라고 했다. 1982년 가을쯤에 있던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날 학교에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처음으로 죄수들을 호송하는 차량을 봤다. 앞에 갱생차 한대만 불을 켜고 나머지 4대의 차는 불이 꺼져 있었다. 그때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을을 지나간다고 조용히 하라는 말에 여자가 더 크게 울었고, 푹 치는 소리와 함께 신음이 나더니 조용해졌다. 밤에 죄수들을 호송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1987년 겨울, 눈이 한 뼘이나 넘게 내린 날이었다. 밖에 나가서 쭉 둘러보는데,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들 몇십 명이 서 있는 것을 봤다. 그 추운 겨울에 불도 못 피우고 오들오들 떨며 서 있는 걸 보며 가슴이 아팠다. 어느날 심심해서 22호 관리소(정치범수용소) 울타리에 가봤다. 2m 50cm 높이의 우타리 위에 줄이 있었는데, 3만 볼트의 전기가 흐른다고 했다. 수용소를 막아놓은 담장을 쳐다보는데 울타리에서 8m 떨어진 곳에 오솔길이 있었다. 사람이 밟으면 못에 찔려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함정이 설치되어 있다고 들었다. 22호 관리소에 살면서 여러 소문을 들었는데, 전쟁이 일어나면 정치범 수용소 사람들을 제일 먼저 죽인다는 이야기, 스파이를 정치범 무리 속에 보내서 폭동을 일으키려고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린다는 것이었다. 또 정치범들에겐 듣거나 보는 모든 일체의 정보를 차단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박 전도사는 “아버지가 자꾸 아프셨는데, 어느 날 저녁 너무 아파하셔서 진료소에 갔다. 북한은 의사가 반드시 의뢰서 같은 걸 써줘야 수술을 할 수 있는데, 밤늦게 의사 집을 찾아가니 문을 안 열어줬다. 집에 오면 아버지가 아파하셔서 다시 의사를 찾아가고, 문을 안 열어주니 다시 집에 오고 밤새 왔다 갔다 하다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의뢰서를 받았다. 어머니가 길에 나가 지나가는 차를 막아 아버지를 태워서 병원으로 보냈다. 수술은 잘 됐다고 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화가 나서 따지니 피가 없었다며, 수혈용 피는 간부용이지 일반 노동자에겐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인민병원에서 돌아가시자 밝게 보이던 세상이 어둡게 보였고, 사회에 대한 분노가 올라왔다.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가족하고 갈라져 살게 되자 북한이 TV에선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라고 하는데, 좋은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1995년 북한이 많이 어려워졌고,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이 땅에 있다간 굶어 죽겠다는 생각에 중국에 갈지 말지를 고민하는데 중국에 가야 한다는 음성이 들렸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 분명하게 들려서 깜짝 놀랐다. 이제 와서 보면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1997년 2월 초, 죽음을 각오하고 두만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 마을에 제일 안쪽에 있는 집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고, 밤에 70리를 걸어서 한 동네에 도착했다. 동네에 북한 사람이 왔다는 소문이 나자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와 북한의 상황을 물어봤다. 쌀을 주지 않아 굶어 죽는다고 했더니, 북한에 있는 친척에게 지원해야겠다며 돌아갔다. 3~4일이 지나 그 사람이 화가 잔뜩 난 상태로 찾아와 김정일의 욕을 엄청나게 했다. 친척 회의를 열어서 돈을 모아 중국 돈과 입쌀 3~4t을 싣고 갔는데, 돈은 3천 원 이상, 쌀은 300kg 이상 북한으로 보낼 수 없다고 막았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쌀이 많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중국에 쌀이 많은 줄 알고 탈북을 하기 때문에 제한했다는 것이다. 그 나라 백성이 잘살게 하려면 들어오는 쌀과 돈을 제한하지 말아야 하는데 북한은 제한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중국에 오니까 북한은 굶어 죽는데 중국은 풍년이 들었다. 풍년에 쌀값이 너무 내려가서 농민이 빚 때문에 자살하는 일도 있었다. 중국에 쌀도 많고 조중친선이라고 하는데 왜 북한에 쌀을 지원하지 않는지 중국 사람에게 물었다. 그러자 김정일이 올림픽과 대만 관련 문제로 중국 공산당에 잘못 보였다며, 북한에서 잘못했다고 빌며 도와달라고 하기 전엔 안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공산당이 탈북자들을 잡아서 내보내는 걸 보면서 북한이나 중국 공산당이나 똑같이 괘씸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 일했는데 돈을 주지 않자 분노가 치밀며 인간다운 게 내 앞에 나타나라는 외침이 올라왔다. 일해서 돈을 벌어도 살기 힘든데 돈을 안 주니까 이 땅에는 못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한국 사람은 사장이라고 부르고 북한 사람은 거지 취급을 하는데 국격에 따라 대접받는 걸 보면서 한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조선 마을에 있는 교회에 가게 되었는데, 3일째 되는 날 한국 사람들이 와서 성경책을 펼치며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전도했다. 믿어지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책을 들고 와서 믿으라고 하니까 세상에 별난 직업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북한에서 1년 돈 버는 것보다 중국에 와서 한 달을 벌면 더 많이 벌고, 중국에서 1년 버는 것보다 한국에서 한 달 일하면 돈을 더 많이 버는 시대였는데, 한국에서 돈 버는 것을 포기하고 여기 와서 전도하는 걸 보니 이상하게 여겨졌다”고 했다.

이어 “저한테도 믿어야 한다고 했는데, 믿어지지 않는 걸 믿어야 한다니 반발이 올라오면서 이 사람이 똑똑한 사람인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목사님께 ‘사과가 되지 말고 토마토가 돼라’는 속담의 뜻을 물어봤다. 목사님은 눈을 감고 기도를 하시더니 사과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되지 말고 토마토처럼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라는 뜻이라고 하셨다. 그때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믿는 건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고, 목사님은 저에게 기도를 해주시면서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이어 “성경을 쭉 봤는데 신명기 28장에 축복과 저주가 나왔다. 하나님을 안 믿으면 이러이러한 벌을 가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몇천 년 전에 쓴 책인데 어떻게 지금 북한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쓴 것인지 깜짝 놀랐다. 만약 성경책이 맞다면 저렇게 우상숭배를 하는 게 나라를 망치고 민족을 망치고 정말 고통스럽게 하는 나쁜 일이라는 깨달음이 왔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날 십이지장 출혈이라는 시련이 생겼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어지러워 쓰러졌는데, 정신을 차리면 교회 분들이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가치 없이 죽는 게 억울해서 하나님께 가족도 돈도 없고 도와줄 사람이 없는데, 살려주시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울면서 기도했다. 한 집사님이 저를 위해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자꾸 감동을 주신다며 집에 데려가서 저를 정말 잘 간호해주셨고, 교회 목사님이 돈을 구해주셔서 치료를 받고 회복하게 되었다. 교회 분들이 제가 불쌍하다며 2백 원을 주셨는데, 제가 가지고 있던 돈과 함께 몽땅 헌금하면서 하나님밖에 없다고 살려달라고 울면서 기도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살아났다”고 했다.

박 전도사는 “한국에 가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하던 중 북경에 있는 한국 영사관에 가면 한국에 갈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세 명의 공안이 지키고 있어서 혼자서는 어렵고 10명~15명씩 밀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영사관 앞에 가서 동태를 살펴보니 밖에는 두 명, 안에는 한 명의 공안이 지키고 있었고, 들어갈 때마다 문건을 확인했다. 그 문이 천국과 지옥의 문 같았다. 기도하면 이뤄진다고 교회에서 몇 년 동안 배웠으니까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들어서 마음과 정성을 다해 기도했다. 중국에서 그렇게 열심히 기도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회개 기도, 한국에 보내주시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기도, 신학대에 가겠다는 서원 기도를 했다. 기도하다 보니까 마음에 평안이 오면서 잘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기도 후 다시 나가서 영사관을 보니 두 명만 지키고 있었다. 둘 중에 한 명이 화장실을 가자 때가 왔다며 다가가 공안을 확 밀쳤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달려서 들어가는데, 벨 소리, 고함이 들리고 공안이 다가왔다. 중국에 있을 때 공안이 제일 싫었기에 다가오면 때리려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때 영사관 직원이 영사증을 보여주면서 따라오라고 했고, 조사를 마치고 2003년 5월 23일 대한민국에 왔다”고 했다.

이어 “북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오면 가족에 대해서 알아보는데, 누나가 굶어 죽었다는 말에 분노가 치밀었다. 한국에 오면 신학교에 갈 계획이 있었는데, 다른 형제들이라도 살리려고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을 일했다. 일하면서 몸이 안 좋아졌고, 십이지장 출혈에 역류성 식도염까지 있었다. 중국, 한국, 영국에서까지 치료받고 돌아왔지만, 또 시간이 지나자 십이지장 출혈이 생겼다. 너무 아프니까 사는 게 귀찮고, 누가 날 죽인다고 해도 겁이 안 났다. 너무 아파서 자연을 벗 삼아 살자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제주도에서 신학대를 다니는 고향 사람을 만났는데,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며 오지 말라는 데도 1년 반이나 계속 찾아와서 기도를 해줬다. 내 힘으로 지금까지 발버둥 쳤는데 이제 안 되겠다는 마음에 하나님께 가까이 가보자고 그때부터 성경책을 봤다. 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디지털 성경을 들었는데 1년 동안 성경을 들으니까 하나님이 건강을 회복시켜주셨다. 건강이 회복된 후 열심히 일하면서 돈을 벌다가 2017년 설날, 마음이 진정되면서 생각이 깊어졌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니까 하나님이 회복시켜주셨는데,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자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박 전도사는 “성경공부를 하러 포천에 올라와 저녁에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을 주셨다. 얼마나 좋은지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게 느껴졌다. 세족식을 할 때는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시는데 세상에서 느끼던 기쁨보다 몇십 배나 큰 기쁨을 주셨다. 엄청난 사랑과 은혜를 받으니까 지금까지 북한과 중국, 한국에서 억울하게 살면서 받았던 상처가 치유되었다. 성경통독반 4기를 마치고 성경을 보는데 이 세상에 악한 마귀가 있어서 사람을 괴롭히고 못살게 하는데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복이 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게 길이라는 게 깨달아졌다. 성경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 우상숭배 체제는 망할 수밖에 없고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악한 마귀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끄는데 나라나 개인이나 하나님을 잘 믿고 섬겨야 살길이 열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적이 온 것은 멸망시키려는 것뿐이고 예수님이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뜻대로 살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구나를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전엔 부활이 잘 믿어지지 않았는데 믿어지면서, 믿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죽었다가 살리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남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셨다. 지금도 한국, 중국, 러시아에서 고생하는 탈북민들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중국에서 잘 데가 없어서 종이상자를 깔고 밖에서 자기도 하고, 겨울에 추운 집에 들어가면 살이 시리다 못해 뼈가 시렸던 생활을 겪어봤기에 마음이 아프다. 해외에 떠도는 탈북민들 섬기고 돌봐줘야 하는데, 그들을 섬길 때 하나님이 축복해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자리를 빌려서 한국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한국에서 정착할 때 가족 얘기를 할 때 너무 힘들었다. 사람이 못 먹고 너무 고생하다가 억울하게 굶어 죽고 앓아 죽으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탈북민을 대할 때 가족 얘기는 물어보면 너무 상처가 되니까 배려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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