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은 기독교에서 가장 특별하고 의미있는 절기이다. 주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심을 기념하는 날이다.

한국교회에 있어 부활절은 역사적으로도 매우 특별하다. 한국에 공식 입국한 첫 복음 선교사인 미국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아펜젤러가 배를 타고 1885년 4월 5일 인천 제물포 항으로 입국한 그날이 바로 부활주일이었기 때문이다.

두 선교사가 한국에 처음 입국할 때 각자의 파송 교단을 의식해 누가 먼저 내리느냐 하는 문제로 고민하다가 각각 부인들을 앞세우고 나란히 손잡고 내렸다는 일화도 있다. 한국에 도착한 아펜젤러 선교사는 본국 선교부에 보낸 편지에서 그날의 소회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는 부활절 아침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이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을 끊으사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과 자유를 주시옵소서.”

그로부터 꼭 13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다. 가난과 무지, 온갖 병마에 신음하던 조선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의 참화를 딛고 새롭게 일어나 이제는 세계 9위 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복음의 불모지였던 나라가 세계교회사에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속한 부흥 성장을 이룬 것도, 복음을 받은 피선교국가가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세계에 파송하고 지원하는 선교국가로 우뚝 서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다.

그러나 찬란한 역사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다. 일제 강점기에 기독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3.1만세운동을 주도하며 숱한 순교자들을 배출한 한국교회는 8.15 해방 이후 좌우 이념의 대립 속에서 발발한 6.25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아픈 분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다.

1952년 고신, 1953년 기장에 이어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4회 총회에서 통합과 합동으로 분열한 사건은 한국교회 역사에 큰 오점이 아닐 수 없다. 교회사가들은 “교회의 분열을 그리스도의 찢김으로 간주한 칼빈의 관점에서, 한국 장로교의 분열상은 그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교회 교단 분열이 신학적인 입장 차이 뿐 아니라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된 점에서 볼 때 큰 상처이자 오점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꼭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교단 분열 이후에 교단 간의 선의의 경쟁심이 전도의 열기로 확산된 점은 분명 새롭게 평가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다만 보수, 진보의 간격이 벌어지고 교단마다 정파적 색깔이 고착되고 있는 점은 재고할 부분이다.

한국교회에 있어 부활절이 유독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러한 분열에 대한 각성과 반성이 부활절을 기점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 시초는 1947년 4월 6일 서울 남산에서 조선기독교연합회(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전신)가 주한미군과 함께 드린 부활절연합예배였다.

그러나 부활절연합예배 역시 숱한 부침을 겪었다. 보수와 진보 간에 누가 주최권을 가지느냐 하는 문제로 나뉘었다가 합치기를 반복해 오던 부활절연합예배는 결국 간격을 좁히지 못한 채 각자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2007~2010년까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한 부활절 연합예배가 한국교회의 보수 진보가 ‘연합’해 드리는 부활절 예배의 마지막이었다.

그 후 10년이 지나도록 한국교회 분열 역사에 오랜 가뭄을 해갈해 줄 단비와 같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한국교회의 출발점이 된 부활절에 한국교회가 다시 하나 되자는 작은 움직임이 조금씩 감지되고 있는 점은 분명 고무적인 현상이다.

4월 4일 부활주일에 한교총(한국교회총연합)은 오후 4시 사랑의교회에서, 한교연(한국교회연합)은 같은 날 오후 2시 군포제일교회에서 각각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린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예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우선 한교총이 참여하는 예배에 한교연 대표회장이 참석해 인사를 전하기로 한 것과, 한교연이 주관하는 예배에 한기총 임원들이 다수 참석해 순서를 맡기로 한 것이 그것이다.

연합기관 인사들 간의 교차 방문이 그리 놀라운 일이거나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그러나 한교연이 이를 염두에 두고 예배 시간을 3시에서 2시로 변경한 것과, 한교연과 한기총이 공동예배 형식으로 순서를 배분한 것 등은 예년에는 볼 수 없었던 변화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 통합을 위한 노력은 그동안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돼 왔다. 그러나 큰 틀에서 합의하고도 세부적인 문제들로 번번이 좌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예장 합동이 총회장 소강석 목사의 진두지휘로 교단 차원에서 이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인위적인 방법과 계산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통합과 연합’은 깨지기는 쉬워도 다시 붙이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1972년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N. 로렌츠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이후 작고 사소한 것이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온다는 뜻에서 ‘나비효과’라는 말이 생겨났다. 올해 부활절에 감지되는 이런 작은 변화와 움직임들이 선한 ‘나비효과’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장차 한국교회를 위기에서 건져내는 귀중한 첫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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