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간 동안 겨울 동해바다를 헤엄쳐 귀순을 감행한 탈북민이 남측 군사분계선을 넘은 후 국군 초소를 일부러 피해 민가로 향했다. 예전의 귀순자들과는 다른 행동이었다. 2012년 같은 지역으로 넘어온 북한군 병사와 비교해 봐도 너무나 달랐다. 당시 북한군 귀순 병사는 우리 군 GOP 내무반까지 도착해 문을 두드려 자신의 귀순의사를 밝혔다고 해서 소위 ‘노크 귀순’이란 말까지 나왔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하는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국군 초소를 만나게 되면 ‘이제 살았다’고 안도하며 자신의 위치를 드러낸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강원도 고성 전방부대 인근에서 발견된 민간인 귀순자는 일부러 국군초소를 피해 다녔다. 그런데 그 이유가 국군에 잡힐 경우 “북송될까 두려워서”였다니 참으로 놀랍다.

서 욱 국방부장관은 2월 23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야당의원들의 질의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군 초소에 들어가 귀순하면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서 장관의 이날 답변은 귀순을 시도하는 북한 주민들이 우리 정부 또는 군 당국을 극도로 불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이러한 인식이 이미 북한 주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처음부터 북송이 두려워 탈북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이 귀순자가 혼자만의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했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을 감행할 정도의 사람이 기본적인 상식도 없이 막연히 월남을 감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목숨을 걸고 휴전선을 넘어오면서 왜 우리 군을 그토록 불신했을까 의문을 가질 때 집히는 사건이 있다.

정부는 지난 2019년 11월 오징어잡이 배를 몰고 월남한 선원 2명을 북송시켰다. 당시 북한 선원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음에도 정부는 이들이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혐의를 내세워 강제 북송했다. 이 사건에 대한 소문이 남쪽으로 월남하려는 사람들에게까지 퍼졌다면 그 어떤 귀순자라도 국군에 잡히면 북송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야당과 인권단체들은 정부가 귀순자를 북으로 돌려보낼 경우 어찌 될지 뻔히 알면서도 저지른 ‘최악의 반인권적 조치’라며 강력 반발했다. 정부가 교착상태인 남북관계에 악재가 될 것을 우려해 이런 비인도적인 조치를 감행한 것이란 비판이 거셌다.

그러나 정부는 이 사건에 대해 아직까지도 “정당한 북송”이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있었던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북송된 선원 2명은 한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흉악범”이라며 “이들의 귀순 의사도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해 청와대 국가안보실 주도하에 처리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정말 동료 선원을 살해한 흉악범이라도 귀순 의사를 밝힌 이상 국내에서 면밀한 조사과정을 거쳐 추후에 법에 따라 처리했어야 옳다.

강원도 고성 해안가로 귀순을 감행한 탈북민이 군 초소를 피해 민가로 향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또 다른 문제점은 북한 주민들이 과거보다 더 외부 정보에 깜깜해지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지난해 말 여당의 독주로 국회에서 통과된 ‘대북전단지금지법’이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외부세계와 완전 차단하게 만들었을 개연성도 있다.

‘대북전단금지법’은 국내 인권단체들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면서까지 헌법적 핵심가치인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린 최악의 ’반인권법‘이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야당은 북한 김여정 부부장의 말 한마디로 만든 법이라 하여 ‘김여정 하명법’이라 부를 정도다. 미국 등 국제사회도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북한 주민을 외면하고 최악의 독재 권력자를 돕는 법이라며 한국 정부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퇴보시켰다고 혹평할 정도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던 순간, 더불어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만세를 부르듯 환호하는 장면이 한 보도기자의 카메라에 잡혀 눈길을 끌었다. 북한 주민을 외부 정보로부터 차단하고 캄캄한 어둠의 장막에 갇히게 만드는 법을 통과시킨 게 무슨 자랑이고 대단한 성과라고 그토록 만세 부르며 환호했을까.

한 때 월남 귀순자들도 남쪽으로 넘어와 국군을 만나면 ‘이제 살았다’라고 안도하며 만세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살았다’에서 ‘잡히면 북송돼 죽는다’로 바뀌고 있다. 정부와 군이 귀순자들에게까지 이런 불신을 당하게 된 것은 북한에 굴종해 온 정부의 태도로 볼 때 얼마든지 예견된 일이다.

목숨 걸고 자유를 찾아 월남한 국민에 대해 국가로서의 당연한 책임과 의무마저 함부로 방기하지 않았는가. 훗날 국민이 그렇게 물으며 꾸짖을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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