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의 세 번째 간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복음 6장 10절)이다. 이 간구는 앞의 간구와 함께 하나님에 관한 간구(Thou-Petitions) 중 마지막에 있고 근본적으로 앞의 두 간구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에 관한 간구 전체의 마무리가 될 수 있다.

이 간구는 둘째 간구 ‘하나님 나라가 임하옵시며’의 반복, 즉 둘째 간구가 실현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의 실현 없이는 이름을 거룩히 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은 서로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용할 양식이나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거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악에서 구원을 바라는 것도 하나님의 뜻의 실현이어야 하기 때문에 이 기도는 주기도문의 중심이기도 하지만 핵심적인 간구이기도하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져 왔고, 이루어지고 있고, 이루어질 것이다. 기도하는 손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져 왔고, 이루어지고 있고, 이루어질 것이다. ©pixabay

이러한 맥락에서 정리해 볼 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되기까지 그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며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성립되지 못하는 것이다. 칼빈은 주기도문의 첫 세 간구에 대해서 “이러한 간구를 드리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주시하게 된다. 반면 우리 자신은 잊어버리고 우리 자신의 이익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게 된다”라고 했다. 기도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God's glory)에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자연적으로 하나님 나라에의 갈망이 따르며, 우리가 이 땅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님을 섬기려는 정직한 노력이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야말로 우리 소원의 위대한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나 자신만을 위하여 이기적으로 살고 있다면 나는 ‘우리(Our)’라는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에 관한 간구를 드릴 수 없다. 만일 내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답게 행동하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거나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만일 내가 거룩하게 되려고 힘을 다하여 노력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라고 간구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교부 오리겐(Origen)은 이와 같은 탁월한 말을 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면, 땅은 이미 땅일 수 없다… 그때 우리는 모두 하늘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 한 언제나 어디서나 기도해야 한다. 비록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날 그의 뜻이 이루어질 날이 올 것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는 이 셋째 간구는 앞선 간구들과 함께 결코 본질적으로 다른 간구가 아니다. 하나님에 관한 한 가지 간구이며, 그 내용은 그의 이름(Thy name), 그의 나라(Thy Kingdom), 그의 뜻(Thy Will)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1.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두 가지 다른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제시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비밀의 뜻(God's secret will)이고, 이것을 그의 법령의 뜻(the will of his decree)이라고 한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계시된 뜻(God's revealed will)이다. 이 두 가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1) 하나님의 비밀의 뜻(God's secret will)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의 뜻이 우리에 의해 이루어지라고 기도하지는 않는다. 이 비밀스러운 뜻은 알 수도 없는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 자신의 흉중에 간직되어 있으며, 인간도 천사도 이것을 여는 열쇠를 가지지 못한다. 이것은 감추어진(secret) 뜻이고, 작정적인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뜻은 하나님의 창조(계 4:11,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나님의 섭리(단 4:35,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하나님의 은혜(롬 9:15,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에 나타난다.

2) 하나님의 계시된 뜻(God's revealed will)

이 뜻은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다. 이 성경은 하나님의 뜻의 선포로서 그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하기를 원하시는 바가 무엇임을 나타낸다. 이것은 계시된(Revealed) 것이고 교훈적인(Preceptive)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스스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성경에 알려 놓으셨다.

3) 두 가지 하나님의 뜻에 대한 구분

감추어진, 즉 작정적인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꼭 같이 땅에서도 항상 이루어진다. 아무도 그것을 훼방하거나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주님의 교훈을 어길 때마다 하나님의 계시된 뜻이 어겨지는 것이 분명하다.

모세가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에서 이 구분은 더 명백하게 드러난다(신 29:29, ‘모호한·Secret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Revealed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라’).

2. 하나님의 뜻이 포함된 특징들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이다(God's will is absolutely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뜻은 절대 주권적이고, 그의 뜻은 절대 주권적 의지이다. 그는 그의 피조물에 대하여 자기 뜻대로 처리하실 수 있는 최고의 권리와 통치권을 가지고 있으시다. 때문에 그 뜻대로 행하심에 대하여 우리는 저항할 수 없다. 하나님이 이 뜻을 정해 놓으시면 아무도 그 뜻을 거스를 수 없다. 그의 뜻은 변함이 없으시며, 그는 그가 하시는 일에 대해 어떤 피조물에게도 설명할 책임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모든 행하시는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시나니’(욥 35:13)라고 하셨다.

헬라어로 기록된 성경에서는 불레(βουλη, boule)라는 단어를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뜻의 특징은 저항이 불가능한 뜻이고, 변경이 불가능한 뜻이라는 말이다. 성경 사도행전 2장 23절에서는 십자가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뜻이라고 분명히 선언한다(‘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십자가의 인류 구속의 역사를 누가 작정했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 작정하셨다는 말이다.

때문에 아무도 이것을 변경할 수도 없고, 저항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성도의 구원도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이라고 기록하고 있다(엡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성도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어떤 특별한 사건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음을 암시한다(잠 16:33,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 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2) 하나님의 뜻은 불가항력적이다(God's will is irresistible).

이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반대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방해할 수는 없다. 로마서 9장 19절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For who resists His will)’라고 하였다. 전속력으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과 자전을 하고 있는 지구를 누가 멈추어 서게 할 수 있는가? 누가 하나님의 뜻의 진행을 방해할 수 있는가? 그의 뜻은 이루어져 왔고, 이루어지고 있고, 이루어질 것이다.

3) 하나님의 뜻은 공의로우시다(God's will is justice).

성경은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자와 척도이다. 정의의 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반대하실는지는 몰라도, 그러나 우리를 부당하게 대하시지는 않는다. 그는 엄하실지는 몰라도 불의하시지는 않다. 우리 인간은 부패하였기 때문에 거룩하고 과오가 없는 하나님의 의지에 순응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정의로우시고 공명하심이 이루어지도록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간구해야 한다.

4) 하나님의 뜻은 포괄적이다(God's will is comprehensive).

이것은 하나님의 뜻 일체를 포함하는, 광대함을 의미한다. 그의 뜻은 인간 역사의 흥망성쇠, 개인의 생명과 죽음, 개인의 건강과 질병, 창조와 종말,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이 내포되어 있다. 그의 포괄적인 뜻은 그의 재림, 영원한 나라의 수립을 내포한다. 우리들은 그의 포괄적인 목적의 뜻을 따라 ‘주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구해야 한다.

5) 하나님의 뜻은 좋고 은혜로우시다(God's will is good and gracious).

「칼빈주의 5대 교리」 가운데 불가항력적 은혜 혹은 유효한 부르심(Irresistible Grace or the Efficacious call of the Sprit)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며 인간은 이것을 거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성경의 중생사역은 하나님이 부르신 죄인은 틀림없이 구원받게 하시는 것이다. 이같은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으로 나타나신 것이며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모든 죄인에게 불가항력적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다.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고 선한 청지기로서 좋으신 하나님의 일군이 되게 하신다. 성령은 이를 위하여 효과적이고 불가항력적인 역사를 끊임없이 이루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때 얼마나 선한 것인가를 알게 된다. 그때 우리는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6) 하나님의 뜻은 궁극적인 구원이다(God's will is the security of Believers).

「칼빈주의 5대 교리」 가운데 성도의 견인 혹은 궁극적인 구원(The Perseverance of the Saints or the Security of Believers)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을 받고 성령에 의해서 중생을 입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신앙을 지키게 된다는 것이다. 중생을 통하여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영생의 진리이다. 영생은 인간의 뜻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 아무도 없다. 주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영광으로 천국에서 누리는 영생이 보장되어 있다. 비록 참된 신앙을 가진 자로서 육신이 약하여 시험에 빠져 실패하고 낙심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과 보호는 끊임없이 계속된다. 이러한 죄가 우리들을 구원에서 영원히 상실케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완전히 순종하고, 자진하는 마음으로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사는 헌신을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할 때, 나는 ‘오 하나님이시여! 세상에서 주님의 포괄적인 뜻을 성취하소서, 그 뜻을 완성하소서, 나의 인생의 모든 투쟁과 시련, 모든 고통, 모든 불안, 모든 슬픔, 모든 질병, 모든 죽음, 모든 죄의 결과들을 주님의 영원한 계획에 적합한 것으로 만드소서’라고 간구해야 한다. 이러한 삶의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믿음과 동시에 영원한 생명의 소유를 확인케 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궁극적인 영생 얻은 자로서의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라는 간구를 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7) 하나님의 뜻 가운데 ‘허용적인 뜻’이 있다.

헬라어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토 델레마수(το θελημα σου), 즉 ‘당신의 뜻’으로 되어 있다. 신학자들은 이 단어를 ‘허용적인 뜻’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나님이 다르게 할 수 있도록 허용하시기도 한다는 말이다.

불순종하는 인간의 의지와 사단의 방해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게 될 때, 이 부분에는 이 ‘허용적인 뜻’을 적용시킬 수 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허용적인 뜻’을 이루시는 일에 있어서는 인간 편에서의 협조가 없이는, 또 책임 있는 응답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허용적인 뜻’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그래서 우리들이 사는 것이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살지 않는다. 여기에는 죄도 지을 수 있고, 생각, 판단, 결정을 인간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기계처럼 살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허용적인 뜻’만으로 역사를 움직이시지는 않는다. 가령 모든 결정을 우리에게 다 맡기고, 그의 절대 주권의 뜻으로 결정하시지 않으신다면 역사와 인생의 삶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불순종하는 인간의 의지와, 사단의 방해 때문에 혼란과 무질서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떤 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안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택할 수 있는 얼마간의 자유를 허용하신 것이다. 우리가 이 자유의 영역을 어떻게 관리하며, 이 속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며,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결정을 하면서 내 삶을 하나님의 계획과 마음에 합하도록 형성해 갈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허용적인 뜻’을 이해하고 이루어 가는 데 도움을 주는 로레인 뵈트너(Loraine Boettner)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그는 ‘이것은 마치 어항 속에 있는 고기들이 그 안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고기의 자유는 어항 속에서 제한된 자유이다’라고 했다. 어항 속의 고기는 그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역사와 개인의 삶에는 하나님의 테두리가 분명히 결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은 허용된 뜻을 사용하도록 자유를 주셨다. 허용적인 하나님의 뜻에 대한 바른 자세와 이해와 적용을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올바른 간구를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계속>

김석원 목사
국제기도공동체(GPS, Global Prayer Society) 세계주기도운동연합 설립자 및 대표
CCC 국제본부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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