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준 목사
최철준 목사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취업이 안되거나, 일자리를 잃어버려 고통을 겪는 청장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별히 청년 소상공인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장년에 비해 고통을 견뎌낼 내공이 부족하기에 쓰나미처럼 들이닥친 코로나의 고통을 견뎌내는 것은 청년들에게 너무 가혹한 시간이다.

요즘처럼 답답하고 힘든 시간을 지내다보면 노래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메마른 일상에 활력을 주고 위로를 주는 노래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에 트로트가 인기를 끌고 있고 가요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차지하고 있다. 현실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노래들 속에서 위안을 찾고 희망을 찾는 것이다. 좋은 노래를 들으면 잠시 위로가 되고 위안을 얻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우리 삶이 답답하고 메마르다고 느낄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그렇다. 우리는 찬양을 부를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있는 생명력과 기쁨과 평안과 위로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다. 찬양할 때 메마른 일상을 살아갈 영적인 활력을 얻게 된다.

시편 47편의 기자는 메마르고 우울한 일상에서 우리가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되는지 말해주고 있다. 기자는 1절에서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치”라고 선포한다.

메마른 일상에서 우리가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될까? 하나님은 큰 왕이 되시기 때문이다. 온 땅의 큰 왕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시인은 세 가지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2절). 하나님은 1)‘지존하신 분’이시다. ‘지존하신 여호와’는 세상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지극히 높으신 곳에 거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지극히 높은 곳에 거하신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시편에서 높다는 것은 구원을 의미할 때가 많다. 시편 27편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우리 인생이 험난한 여정을 지날 때, 초막과 장막의 은밀한 곳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숨기시고 회복시켜 주신다. 또한 회복된 우리를 “높은 바위 위에” 두신다. 절대 흔들리지 않는 든든하고 큰 바위에 두신다는 것은, 환난을 지날 때, 우리를 존귀하게 하셔서 온 세상이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세워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 출신이 아니었다. 다 갈릴리 출신이고 대부분 어부들이었다. 예수님조차도 나사렛 출신이다. 나사렛은 지금도 조그만 마을이다. 얼마나 작고 미약했으면 나다나엘 조차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냐고” 말할 정도로 나사렛은 볼품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런데, 나사렛 출신 예수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부른다. 당시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나사렛 출신 예수가 갈릴리 제자들을 통해 세상을 소란케 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게 하신 것이다.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갈릴리 출신 제자들이 예루살렘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고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된 이유가 무엇인가? 나사렛으로 오신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분을 믿고 따라가는 제자들은 누구나 존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청년들도 내가 믿고 따라가는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큰 왕이 되신 하나님은 지존하신 분이시다. 또한 큰 왕이 되신 하나님은 2)‘두려우신 분’이시다. 여기서 ‘두려우신 분’은 사람들에게 경외와 두려움을 자아내는 분이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 무엇인가? 코로나인가? 실패인가? 아니면 불안한 미래인가? 성경은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1:28).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은 대부분 우리 몸에 위협을 주는 것들이다. 우리가 코로나를 두려워하는 이유도 우리 몸에 위협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질병과 미래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우리 몸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몸과 영혼을 좌우할 수 있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신다.

종교개혁자인 칼빈이 수많은 위협 가운데 종교개혁을 이루어갈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코람데오 정신, “하나님 앞에서”의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몸과 영혼을 좌우할 수 있는 하나님만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두려움의 대상이 오직 하나님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지존하신 분이시고, 두려운 분이시며, 3)‘온 땅에 큰 왕’이 되신다. ‘온 땅에 큰 왕이 되신 분’은 세상에 견줄 자가 없는 유일하신 왕이라는 의미다. 기자는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언어를 구상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있다.

출애굽기에 보면 바로가 히브리 산파들을 불러 모든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산파들이 바로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기들을 살려 준다. 산파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바로의 명을 거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와 견줄 수 없는 더 크고 더 높으신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왕의 명령을 어긴 산파들을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출1:21).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시고, 산파들의 이름을 영원토록 기억하게 하셨다. 성경에 보면 바로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 바로는 왕이라는 직함이다. 그런데 산파들의 이름, 십브라와 브아라는 이름을 기록하게 하셨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하나님이 영원토록 기억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여러분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 하나님은 작은 왕이 아니시다. 우리 하나님은 큰 왕이시다. 큰 왕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고 계신다. 우리의 삶이 메마름 뿐이라 할지라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우리의 유일한 두려움의 대상, 온 땅의 큰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

최철준 목사(지구촌교회 젊은이목장 센터장)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mail protected]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

#최철준 #최철준목사 #지구촌교회 #대학청년부 #청년부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