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모 교수
류현모 교수

신학과 철학은 존재의 근본과 기원에 대한 지식에서 시작한다. 즉 존재론과 기원론, 인식론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앎의 바탕이 되며, 그 외의 모든 지식은 이 토대 위에 구축된다. 우리는 신의 존재와 기원에 대해 논의하면서, 과학적 방법론이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발견한 바 있다. 진화론은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믿음에서 시작하는 것이요, 창조론은 ‘신이 존재함’을 믿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지식의 근본이 되는 형이상학적 토대를 과학적 방법론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지식은 어떤 믿음을 근거로 발전한다.

현대의 과학은 세상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사람들에 의해 학문적 체계가 만들어 졌다. 프란시스 쉐퍼는 “세상이 합리적인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관찰자로서 자신과 관찰의 대상 사이에 연관성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기반이 없었다면 현대 서양과학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진화론은 모든 것의 기원에 다양하고 무한히 많은 우연을 가정하고 있다. 우연한 대폭발로 우주가 탄생했고 지금과 같이 아름답고 균형 잡히고 질서정연한 우주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또 무기물로부터 유기물의 탄생, 유기물로부터 단세포 생명체의 탄생, 단세포 생명체로부터 다세포 생명체의 탄생, 그리고 아주 다양한 생명체로의 종 분화 같은 모든 과정이 무수한 우연의 연속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하지만 철학적인 관점으로 볼 때 이와 같은 과정들이 모두 우연에 의해 일어났다고 가정하는 것은 잡동사니로 가득한 고물상이 폭발해서 우연히 우주왕복선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틈새의 신(God of the gaps)이라는 개념이 있다. 고대에는 일식, 번개, 우박, 무지개 같은 자연의 현상도 신의 섭리로 해석했지만 현대에 와서는 과학으로 설명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되었다. 이에 신은 계속 밀려나서 지속적으로 후퇴하였고 과학이 밝히지 못한 미지의 틈새 영역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개념이다. 물리학자 리처드 뷰브는 과학의 발전 때문에 틈새 신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것이 현대의 신앙적 위기를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라 주장한다. 그러나 디트리히 본회퍼는 “우리는 틈새가 아니라 천지만물의 모든 현상 가운데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하나님이 천지만물의 주재이심을 주장한다. 틈새의 신 개념은 자연주의/유물론자들이 가진 인식론의 근본적 문제점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의 문제는 성경의 가르침에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는 과학자들의 주장에 많은 신학자, 목회자, 철학자들이 백기를 들고 항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대에는 모든 지적활동과 그 활동의 방법론이 철학이라는 학문의 이름 아래 행해졌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그리스 철학자들도 자연과 초자연에 대해 통합적으로 공부하였다. 물론 그런 학문 활동을 위한 논리, 언어, 심리와 같은 방법론도 포함된다. 근대에 와서 과학의 발전으로 자연과 초자연에 대한 지식의 양적 증가와 연구 방법의 분화로 인해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학문의 분화가 일어났다.

철학자 J.P.모어랜드는 두 가지 이유로 과학적 주장을 위해서는 철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첫째, 철학의 자율성이다. 철학이 공부해 오던 자연과 초자연에서 과학이 물질과 자연에 대한 부분에 집중한다면, 초자연과 연관되는 부분은 철학만의 영역이다. 이 부문은 과학의 간섭 없이 철학이 자율성을 보일 부분이다. 예를 들면, “의식과 영혼의 본성은 무엇이며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은 과학적 방법론 밖의 영역이고, 과학은 탐구를 포기하였지만, 철학은 연구를 지속해 오던 영역이다. 즉 “의식과 영혼은 존재하는가? 자신의 정신과 타인의 정신에 대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은 온전한 철학의 영역이지만 과학자들이 대답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진화론이 과학인가? 혹은 지적설계가 과학인가?” 같은 과학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대답이 아니다. 이들 질문은 “순수한 자연주의적 방법론만을 사용해야 과학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귀결되는데 이런 부분은 과학 철학자나 역사학자가 담당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철학이 과학에 대해 자율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철학과 과학이 함께 탐구하는 영역에서는 철학의 권위가 더 높다.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함께 답을 제시한다고 할 때, 과학이 자신의 원리에 따라 제시할 수 있는 근거가 철학이 자신의 원리에 따라 제시할 수 있는 근거만큼 강한 경우가 드물다. 즉 과학과 철학의 답이 서로 충돌한다면 철학의 권위가 대부분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시간의 본성에 대한 논쟁’, ‘관찰될 수 없는 이론적 대상들의 존재여부에 대한 논쟁’, ‘생명의 기원에 대한 논쟁’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서 우주의 시작을 설명할 때 “비경계” 모형을 전개하여 허수의 시간을 사용하면서 우주론적 시작점을 회피한다. 이것은 스스로 도구주의자이며 반실재론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도구주의, 반실재론 이런 개념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개념들이라 기초이론을 철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J.P.모어랜드는 전통적 기독교를 방어하는 논리제시를 위해 철학자, 신학자와 과학자가 함께 작업할 것을 주장한다. 이를 방어할 수 있는 학자의 집단은 그 수가 결코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자 지식의 한계 속에서 공격적 무신론의 집중포화에 절망하고 있다. 세속적 무신론의 실체는 거짓을 근거로 거짓 이념을 만들어 내어 사람들을 미혹시키는데 있다. 이에 대항할 영적 전쟁에 힘을 합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일어서서 뭉쳐야 한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 10:4~5)

묵상: 이 시대의 영적전쟁을 위해 힘을 합칠 때 내가 참여할 분야와 나의 준비된 무기는 무엇인가?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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