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진 목사ㅣ군포제일교회
▲권태진 목사ㅣ군포제일교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여호와의 신으로 창조사역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피조물 중에 제일 귀한 존재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아름다운 땅 에덴동산에 거하게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가 행복하기를 원하셔서 남자에게 여자를 주시고 행복하게 살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기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아름다운 환경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순종하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금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6~17) 그러나 그들은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불신하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단절되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그냥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위해 양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3:21) 저주받은 땅에서는 하나님의 보살핌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 그의 사랑의 표현으로 태초부터 있었던 생명의 말씀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하였습니다. 또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했습니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의 염려대로 굉장히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문 밖에 쌀이 있고, 돈이 있을 때도 있고, 필요할 때마다 근근히 채워져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아갔다고 합니다. 문 앞에 필요한 것을 갖다 놓은 분은 바로 그의 부모였습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사람까지도 구원하시기 위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사람은 부정적인 모습에서 돌아서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연못 바닥에 돌이 보이면 물이 줄었다는 것을 알수 있듯이 가정의 생활이 어렵다고 느낀다면 가정에 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꾸 밉게 보이고, 짜증스럽고, 행복하지 않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환경 때문이 아니라 마음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길 원한다면 마음 속에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을 가득 채우길 소원합니다.

복음의 능력은 사람들과 사귐이 있게 하고 하나님과도 사귐이 있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과의 관계와 대인관계가 바로 됩니다. 그리고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천국을 믿습니다. 영혼의 가치를 깨닫습니다. 그 영혼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합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전 재산을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바른 신앙이 있으면 돈 때문에 싸우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돈 돈 하는 것은 가룟 유다처럼 물질의 시험에 빠진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것 도적질 하면 사람의 것도 도적질 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신앙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행복과 부 그리고 기쁨을 원하거든 먼저 복음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요한은 생명의 말씀을 빛으로 표현했습니다. 또 하나님이라고도 소개합니다. 또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죄 용서 받는 길은 자백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열려진 용서의 문, 빛의 길, 이것만이 인간에게 최고의 축복이요 최대의 행복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1. 빛 가운데 행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하나님은 영적 빛이요, 진리의 빛이요, 생명과 사랑의 빛입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가 빛이요, 하나님의 세계는 빛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발광체라면 성도는 반사체입니다. 구원을 받아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우리는 빛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8:12)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4~16)

빛을 가지면 선악이 분별되고 생사(生死)가 구별되며 거짓 속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빛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명도 있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어두움 가운데 행하면 세상을 향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공직자는 관행이라고 어둠에 속하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수입에 눈이 멀어 부정을 행하고, 일반인들은 다수가 요구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그대로 믿고 빛 운동을 해 나가야 합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왕명을 거절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고자 했습니다. 그 뜻대로 채소와 물을 먹고도 큰 지혜를 얻었습니다. 믿음의 사람 된 우리는 빛 가운데 행하는 능력을 받아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둠 가운데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요일1:6) 어둠은 죄를 가리킵니다. 욕심과 자기중심적인 생활과 비진리, 그리고 인본주의는 어두움입니다. 여기에 붙잡힌 사람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고후6:14)
교회에 적응하기 어렵고 만족이 없고 사람이 자꾸만 미워집니다. 구원 운동에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다면 그는 어둠에 속한 자입니다. 불의한 사회를 기준하여 교회를 정죄하는 것은 사탄의 장난입니다. 변화되기 전의 사울이 어둠에 속한 자입니다. 구약의 사울 왕이 어둠에 속한 자이며, 주일성수하지 말라 하고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 어둠 운동인 것입니다.
믿는 성도는 주의 말씀으로 빛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119:105)

2. 빛 가운데 행하면 깨끗하게 하십니다.

교회가 나라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1:7)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은 진리를 믿고 주님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마6:23)

성령으로 행하고 순종의 삶을 살 때 하나님과 사귐이 있습니다. “서로 사귐이 있고” 빛 가운데 행하면 교회가 평안합니다. 영적 교통은 사랑의 교제를 만들어 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인간의 죄값으로 흘려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에 범할 죄도 회개하면 깨끗하게 됩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요15:2~3)

구원 받은 성도가 빛 가운데 행하면 죄악의 세력에서 점점 벗어납니다. 점점 거룩해집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갑니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보면 남의 죄를 용서해 줄 때 자신의 죄를 용서해 준다는 말을 했습니다. 빛 가운데 행하면 남의 죄를 용서합니다.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가장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아내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성도로서의 사명을 다하고, 목사로서, 장로로서, 교역자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와 가정과 사회가 행복하게 될 줄 믿습니다.

3. 죄인임을 알고 늘 회개하는 삶을 삽시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일1:8~10)
모든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전7:20)

예전에 제 친구 전도사가 목사 안수를 받고 개척을 하는데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그는 블록으로 지은 것 같은 방에서 상 하나를 놓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제가 가보니 너무 딱해서 교회를 도와야 겠다 생각이 들어 여기저기 모금을 하여 그 교회를 도왔습니다. 그 후에 저도, 그 친구도 교회가 안정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그 교회를 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잌보니 제가 그 교회를 위해 쓰임을 받은 것이지 제가 하나님을 도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잘못 생각하면 내가 하나님을 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깊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써 주심에 대한 감사가 넘칩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7:18)
진리 없고 기도하지 않는 자는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진리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항상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주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1:15)
자기는 잘못이 없거나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이들, 또 교회를 도와주는 것으로 착각하는 자도 진리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교만의 증거요, 양심을 쓰지 않고 외식하는 증거입니다.

성경에는 성도는 일생동안 죄와 싸운다고 했습니다.
“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잠20:9-1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전7:20)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마7:4)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딤전1:19)

우리는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족한 저는 주님의 종으로서, 주님을 떠나서는 잠시도 만족이 없습니다. 나에게 천국이 없다면 사람이 짐승보다 결코 행복하지 못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이 있으므로 성도는 행복하게 꿈과 희망 가운데 찬송하며 행복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빛 가운데 행하시고 주님과 동행하여 영육 간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독교 종합일간지 '기독일보 구독신청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