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백석대 채영삼 교수

성탄절은 위험한 날이었습니다. 로마의 압제가 심해져가던 때에, 황제는 인구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불의한 법이라도 따르지 않을 수 없었기에, 요셉과 마리아, 식민지 백성의 가난한 부부는 마굿간에서 자신들의 첫째 아이를 낳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저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소식은 신빙성 있는 히브리 성경학자들의 입을 통해 분봉왕 헤롯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왕이 났다’는 소문입니다. 그가 왕이시면 자신이 왕 노릇할 수 없는 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있었고, 그들은 잔인한 방법을 택합니다. 베들레헴에 있던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모두 칼로 베는 것입니다. 권력을 위해서는 어린 아이들의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어둠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가장 위험을 느낀 자는 마귀였습니다. 세상 권세 잡은 자 마귀는 세상 뒤에 숨어서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성탄절은 그에게 죽음의 사자가 당도하는 도살의 날이었음을 그는 알았습니다. 요한은,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 달린 ‘한 큰 붉은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녀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려 하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위험한 성탄절입니다. 하지만 여자는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종말의 목자이십니다(계 12:1-5). 그래도, 여자는 광야로 도망해야 했습니다.

아직은, 악한 자의 땅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무력하기 짝이 없는 아기로 보내셨습니다. 그의 나라는 칼이나 돈이나 힘으로 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거짓으로, 윽박과 협박으로, 어거지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생명과 은혜와 진리, 참된 것으로 다스리고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그 생명과 은혜와 진리의 통치에 순복하지 못하는 세력은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게 될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충돌 속에서,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모두 죽여 버린 무서운 사건의 아우라 속에서, 한 아기가 태어납니다. 모든 연약함과 가난함과 아픔과 상처를 짊어진 모습으로 그는 이 땅에 오십니다. 위험한 성탄절이었지만, 그를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에게는 위로의 성탄절이었습니다. 이 아이를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 없는 교만으로 한 없이 높아진 자들을 거꾸러뜨릴 것입니다. 이 아이를 통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그를 신뢰하며 참으며 악을 악으로 갚을 수 없어서 의의 길을 따르고, 사랑의 길을 따르는 모든 이의 억울함을 신원하실 것입니다.

그 날은, 악한 자 마귀와 그에 속한 모든 악한 권력들과 그에 붙어살던 모든 악인들이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 날은, 그 어린 양의 피에 자신의 심령과 행실을 씻으며, 눈물로 그의 길을 따라가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의 영광, 빛 되신 아버지께서 친히 비추실 것입니다.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실 목자이신 그 어린 양 예수께서, 그들의 눈물을 생명수 샘물로 친히 닦아 주실 것입니다.

성탄절에, 우리는 위험한 자리에 있고, 또 위로 받을 자리에 있습니다. 다만, 지금도 그리고 그 때에도 그 아들과 함께 있게 되기를 엎드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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