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가 츠토무 교수(동경신학교 조직신학)가 발제했다.   ©오상아 기자

14일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김명용) 세계교회협력센터에서 오후 1시부터 진행된 장신대 제15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사도적 공동체의 형성'을 주제로 발제한 하가 츠토무 교수(동경신학교 조직신학 교수)는 '21세기를 시작하면서 세계를 뒤흔든 두 가지 사건'으로 2001년 9.11 뉴욕 동시다발 테러와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을 꼽고, 후자의 사건을 조명하며 일본 기독교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그는 먼저 "2001년 9월 11일 뉴욕 동시다발 테러사건은 새롭게 발흥한 민족적 정체성의 약진과 결부된 종교적 원리주의가 국제정치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것을 상징하는 사건이다"고 말했다.

이어 3.11 일본 대지진에 관해서는 "과학기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과학기술에 대한 과신으로 말미암아 지신, 쓰나미 등 자연재해 그리고 핵발전소 사고와 같은 인위적 재해에 대해서 인류문명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3.11 이전의 일본사회의 정신성은 대량소비를 바탕으로 한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국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며 "동시에 일본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정신문화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먼저 '공리적 개인주의'를 들며 "알라스데어 맥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에 의하면 자유시민사회의 문제점의 하나는 공리적 개인주의라고 한다. 거기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만이 독보적이라고 주장된다"고 말했다.

이어 "선악의 척도는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맡겨지고, 어느새 도덕언어는 효력을 잃고 대신에 그 사회의 지배적 권위는 경제언어가 차지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 그는 '의미를 묻지 않는 인간과 사회'를 꼽으며 "노버트 볼츠(Norbert Bolz)에 의하면 현대사회에는 어느 곳이든 블랙박스가 감춰져있다고 한다. 사회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완전히 파악하기 불가능한 상태에서 우리들은 엄청난 데이터를 가진 정보의존사회에서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즉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알지 못한 채, 사람들은 IT 첨단기기를 완벽하게 사용해 내고 있다. '무엇 때문에'라고 묻거나 목표를 제시하거나 하지 않은 채 현대세계는 기능적 의미, 단 하나만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하가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의미를 깊게 묻지 않기 때문에 아이러니컬하게도 매우 잘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며 "현대인은 삶의 의미를 묻지 않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현대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의미를 묻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고도 말했다.

그는 '매스 미디어에 조종된 사회'가 '미디어 의존적인 인간'을 만들어냈다며 "실제의 타자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분투하는, 그 가상사회 안에서만 살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하가 교수는 "이러한 기능주의적 세계관을 지탱하는 것은 과학 만능주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상의 삶을 과학이론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며 "마치 설명할 수 없는 블랙박스를 감춰놓은 것 같이, 일상 속에 드러나지 않게 편만해있는 것이 전통적인 자연주의 세계관이다"고 했다.

그는 "그것은 신도(神道) 및 불교와 결부된 것으로, 일본 서민들의 자연주의적 생사관을 형성한다고 할 수 있다"며 최근에 유행한 대중가요인 아라이 만이 작곡한 '센노 가제니 놋데(천 개의 바람에 실려)'의 가사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노래가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일본인 또는 아시아인의 자연주의적인 생사관과 애니미즘적 영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하가 교수는 3.11 이후의 변화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대재난 직후 확실히 사람들의 반응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목격한다"며 "공리적 개인주의적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원봉사 활동에 폭넓게 참여하며 인도적 지원의 네트워크가 확산됐다"고 했다.

또 "정부정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핵에너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경제 우선주의에 대한 반감은 라이프 스타일을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의미를 묻지 않는 사회'의 경향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 삶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묻게 만들었다"며 "'신이 존재한다면, 왜 신은 우리에게 이 같은 고통을 전가하는가?' 이런 신정론적인 질문은 가공의 행복한 삶에 빠져있던 우리의 허상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주의적 구원관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필연적 운명이나 조상숭배와 같은 자연주의적 구원관에 더욱더 굴복하는 경향을 보인다"고도 말했다.

하가 교수는 "사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위기의식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며 "대재난의 경험이 인생관을 바꾸지 못하고 새로운 인생관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물리적인 일상생활의 복구가 어떠한 변화도 없이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가게 한다면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 뿐이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를 위한 '일본 교회와 신학의 과제'를 소개하며 "성경적 내러티브는 거대한 자유경쟁사회의 공리적 개인주의에 맞서, 보다 매력적이고 대안적인 선한 삶을 제시하고 있다"며 첫번째로 '선한 삶의 구상'을 꼽았다.

또 '신정론'에 대한 대답을 줘야 할 것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 스스로도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문제, 즉 죄, 악, 죽음 등의 문제에 직면할 때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이 생겨난다"며 "일본인은 이 문제에 대해 체념이나 운명이라는 정신적 각성에 도달함으로 대처해 왔지만 그러한 태도는 우리 삶의 거친 풍랑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의 답을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신학은 인류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거기서 비롯되는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고, 공적인 진리로서 하나님의 열린 비밀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며 "먼저, 고난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정결케 하고, 둘째로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을 농밀화하고, 셋째로 고난은 성령에 의해 그것을 실현케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구원론의 내러티브적 신학의 전개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가 교수는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은 무엇보다도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의 역사에 있다. 이 역사적 사건이 인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현대 일본신학이 회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며 "그 역사는 구원을 계시하는 결정적 사건이지만, 아쉽게도 세속화된 과학기술 만능주의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의미를 깨닫기 어려울 것이다"고 했다.

그는 "구원의 개념이 단지 현실세계 내의 행복으로만 축소되고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속죄론을 거론한다 하더라도 현대의 젊은 세대에게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다"며 "그것이 사실이라면 천상의 세계를 잊고 사는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진정한 구원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켜야 할 것이다"고 했다.

하가 교수는 "그럼에도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증거하는 내러티브는 구원의 원초적 스토리로서의 성경이 포함하고 있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며 "우리 삶의 스토리에 상응하는 성경의 모티브에 초점을 맞춘다면, 해석학적 지평융합이 일어날 것이고 성경의 원초적 스토리는 우리 삶의 스토리로 스며들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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