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강영우 박사   ©자료사진

'남을 돕는 열정과 설득력', '수줍은 소년처럼 위트와 웃음을 잃지 않은 모습' 등 고 강영우 박사를 기억하는 모습은 각자 달랐다.

그러나 한국인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로 미백악관 장애인 정책차관보를 역임했던 고인의 고난을 축복으로 바꾼 믿음과 의지는 모두가 기억하는 고인의 면모였다.

앞서 23일(미 현지시각) 고인의 아내인 석은옥 여사와 두 아들이 거주하는 미국 워싱턴 DC 올네이션스교회(담임목사 홍원기)에서 추모의 밤 행사가 진행된 데 이어 한국에서는 25일 오전 11시 추모예배가 명성교회 구 성전 베들레헴성전에서 진행됐다.

고 강영우 박사 2주기 추모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 날 예배는 양성전 목사(21세기선교연구원장)의 사회로 이철휘 장로(전 제2작전사령관)가 기도, 김종량 이사장(한양대학교 재단)가 약력소개, 원광기 목사(잠실교회 원로)가 설교, 임청화 교수(백석대 음대)가 추모가, 이동건 회장(사회복지공동모금회)·감경철 회장(CTS기독교TV)·한상대 총장(전 검찰총장)·정갑영 총장(연세대)이 추모사를, 이경재 위원장(방송통신위원회)가 인사말을 전했다.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고 강영우 박사를 회고하며 2주기 추모위원회를 대표해 인사말을 전했다.   ©오상아 기자

이경재 위원장은 "2년 전 2월에 미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목소리를 들으니 강 박사였다. 그때 강 박사가 너무도 밝게 '저 이제 갑니다'며 본인과 아들들이 모아 로타리클럽에 25만불을 맡기니 잘 좀 도와달라고 했다"며 "죽음의 소식을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을 들으며 놀랐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그 전화통화 이후 열흘 후엔가 강영우 박사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이어 고인을 회고하며 이 위원장은 "2009년에 제가 국회에 강 박사를 초청해 강연을 부탁했던 때, 강 박사를 소개하며 '장애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미 백악관 장애인 차관보'에 올랐다고 소개했더니 나중에 하는 말이 '장애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 때문에'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이 위원장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았던 고 강영우 박사의 삶의 목표를 위해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설교를 전한 원광기 목사(예닮글로벌학교 이사장)는 "강영우 박사가 하나님 나라에 가서 무엇부터 체크했겠나 생각하면 '내 눈이 보이나'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며 "천국은 고통과 역경과 절망이 없고, 기쁨이 충만하고 소망이 넘치는 곳이라 생각하니 고인을 향한 눈물이 멈췄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또한 여러 역경을 당할 수 있지만 믿음을 갖고 나갈 때 어려울 때 만나는 큰 도움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실 것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은 고인이 다녔던 서울맹학교 신지희 학생(고등부 2학년)이 클라리넷 연주를 선보였으며, 예닮글로벌학교는 신지희 학생과 예닮글로벌학교이하늘 학생(중등부 2학년)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고 강영우 박사 2주기 추모예배가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 25일 고인과 교제했던 각계각층의 사회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오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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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영우박사 #이경재방송통신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