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과 종교적 극단주의, 종교적 동기에 따른 폭력으로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이 삶의 터전을 떠나고 있으며, 오랜 역사를 지닌 기독교 공동체의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가톨릭 구호단체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ACN)가 발표한 최신 보고서 ‘박해받고 잊혔는가?(Persecuted and Forgotten?)’에 따르면, 조사 대상 18개국 가운데 10개국에서 기독교인의 상황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등이 포함됐으며, 전반적인 상황이 개선된 국가는 한 곳도 없었다.
이번 보고서는 2024년 8월부터 2026년 6월까지의 상황을 다루며, ACN이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특히 심각하다고 판단한 국가들을 조사했다.
보고서는 “수백만 명의 기독교인이 분쟁 지역에서 대규모로 발생하는 실향민의 일부가 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종교적 동기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상황이 확산되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여러 국가의 광범위한 지역이 위험지대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기독교인 박해와 강제 이주 문제를 주요 우려 사항으로 꼽았다. 무장단체의 공격과 주민들의 대규모 이주가 지속되면서 피해 지역의 종교적 구성까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에서는 국내 실향민 350만 명 이상 가운데 기독교인이 최소 1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특히 북부 지역과 중부 벨트(Middle Belt)에서 무장 강도단과 일부 민족 무장세력,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의 공격을 피해 공동체들이 고향을 떠나고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피해 생존자인 33세 솔로몬 아코는 ACN에 자신이 나이지리아 북부 자리아(Zaria) 인근 마을에서 무장세력에 납치돼 신앙을 포기하라는 강요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그들은 즉시 우리에게 개종하라고 요구했고, 우리가 거부하자 구타하기 시작했다. 채찍으로 때렸고, 다리에 쇠사슬을 채웠으며 발목에는 족쇄를 채웠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코와 다른 인질들은 차가운 물에 목까지 잠긴 상태로 한 번에 몇 시간씩 갇혀 있기도 했다.
부르키나파소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이 국토의 최소 40%를 장악한 것으로 보고됐다. ACN은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식 복장 등 특정 관습을 따르도록 강요받고 있으며, 일부는 즉결 처형을 당했다고 밝혔다.
인접국 말리와 모잠비크에서도 기독교 공동체를 대상으로 살해와 납치가 발생하고 교회가 파괴되는 등 폭력이 이어지고 있다.
ACN은 2026년 세계테러리즘지수(Global Terrorism Index)에서 테러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10개국 가운데 6개국이 아프리카 국가라는 점도 지적했다.
중동 지역에서는 오랜 역사를 이어온 기독교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의 기독교 인구는 2011년 이후 8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교회 지도자들은 기독교 공동체가 존립 자체를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보고서는 다마스쿠스의 마르 엘리아스 교회(Mar Elias Church)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도 주요 사례로 제시했다. 당시 공격으로 23명이 사망하고 65명이 부상했다.
이러한 폭력 외에도 권위주의 정부의 종교 탄압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 ACN의 분석이다.
중국에서는 지하교회에 대한 압박이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종교 활동가 구금과 교회 폐쇄, 종교 교육 및 온라인 종교 콘텐츠에 대한 통제 강화를 주요 사례로 들었다.
이란에서는 12개월 동안 기독교인 체포 건수가 두 배로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니카라과에서는 정부가 성직자 체포와 추방, 교회 기관 압수, 성직자 서품 제한 등을 통해 교회에 대한 탄압을 확대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종교적 민족주의의 확산도 주요 위협으로 지목됐다.
보고서는 인도에서 2025년 한 해 동안 반기독교 폭력 사건이 700건 넘게 발생했다고 밝혔다. 또한 주(州) 정부 차원의 개종 금지법 확산이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파키스탄에서는 기독교 소녀와 젊은 여성들이 납치와 강제 개종, 강제 결혼의 피해를 입는 사례가 주요 우려 사항으로 제시됐다. 신성모독 혐의를 둘러싼 불안과 위협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CN은 기독교인을 향한 적대감이 종교적 이유만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종교적 적대감이 기독교인을 향한 증오 행위의 유일한 원인인 경우는 드물다”며 “대부분 민족적 배경과 자원 접근성, 빈곤, 정치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구 사회의 종교에 대한 이해 부족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서구 사회의 종교적 소양 부족으로 반기독교적 적대감이 다른 요인들에 비해 과소평가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로 인해 인권 상황을 왜곡되게 이해하고, 이미 심각한 기독교인 박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ACN 영국 지부의 언론·공공업무 책임자인 존 폰티펙스(John Pontifex)는 이번 보고서가 기독교인 박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 실패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박해받고 잊혔는가?’ 보고서를 처음 발표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독교인에 대한 억압은 세계가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인권 재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박해는 공동체 전체를 고향에서 몰아내고 지역 전체의 종교적 인구 구성을 변화시키는 거대한 요인이 됐다”며 “특히 아프리카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지만, 그 실상은 종종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계가 행동에 나서려면 도대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번 보고서의 서문은 종교의 자유를 위해 활동하다 2011년 암살당한 파키스탄 소수민족 담당 기독교인 장관 샤바즈 바티(Shahbaz Bhatti)의 형제인 피터 바티(Peter Bhatti)가 작성했다.
샤바즈 바티는 파키스탄에서 종교의 자유를 옹호해 온 인물로, 그의 죽음은 종교적 소수자들이 직면한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피터 바티는 형의 신앙과 증언을 돌아보며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박해받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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