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슬픈 날이다. LA에 사시는 처형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임종 가능성을 전해 듣고 아내는 지난주 급히 LA로 갔다.
과거 미국에서 유학할 때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적지 않은 금액을 여러 차례 보내주셔서 학위를 마치기까지 큰 힘이 되어주신 분이다. 큰딸이 중2 때 한국에 왔다가 1년 뒤 다시 미국에 가겠다 해서 거기 가서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수년간 살게 해주신 분도 처형이다.
유학하던 중이어서도 그렇고 학위를 마친 후 국내에 들어와서 자리를 잡느라고 힘든 상황이어서도 그렇고, 받은 사랑에 제대로 보답해 드리지도 못한 채 이 땅에서의 수고를 마치셨다. 병원에 가시기 며칠 전, 천국 다녀온 꿈을 꾸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곧 그곳으로 가시겠다 생각했었는데, 정말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입성하셨다. 눈물과 고통과 슬픔이 없는 그곳으로 이사하신 그분이 무지 부럽다.
하지만 사랑하는 남편과 자녀와 동생들을 두고 가셨기에, 남은 이들의 슬픔과 아픔은 적지 않다. 밖에서 운동하던 중 임종하셨다는 얘기를 듣는데, 눈물이 많이 흘렀다. 내 마음도 슬프지만, 유족과 친동생인 아내 마음이 아플 것을 생각하니 더욱 목이 메었다.
1월 4일부터 뜻한 바가 있어 평생 하지 않던 걷기와 뛰기를 시작했다. 점심은 조금 섭취하고 아침과 저녁엔 몸에 좋은 야채를 갈아 마셨다.
건강에 적신호가 왔기에 하나님이 주신 몸의 건강을 위해서 결단한 것이다. 두 달 가까이 매서운 겨울 추위 속에서도 거의 매일 1시간 반씩 걷기와 뛰기를 연속해 왔다. 몸무게가 무려 7킬로나 빠져서 지금 너무도 가볍고 상쾌한 마음이다. 이렇게 좋은 것을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왜 하지 않았는지 후회스럽기 짝이 없다. 이젠 하루에 한 시간 반씩 걷고 뛰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다음 주부터 개강인데, 학교에서도 운동장에서 맨발로 걷고 뛸 생각이다.
오늘 “죽기 전에 죽지 마라”란 중국 명나라 연지대사(蓮池大師)란 분의 글을 페북에서 읽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노인이 죽은 후 염라대왕을 만나 항의했다. ‘저승에 데려올 거면 진작에 미리 알려주어야 하지 않소!’ 그러자 염라대왕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자주 알려주었노라. 너의 눈이 점점 침침해진 것이 첫 소식이었고, 귀가 점점 어두워진 것이 두 번째 소식이었으며, 이가 하나씩 빠진 것이 세 번째 소식이었노라. 그리고 너의 몸이 날로 쇠약해지는 것으로 몇 번이나 알려주었노라.’”
김상용 작가가 소개한 영국의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글이 있다. “Whatever happens, stay alive. Don’t die before you’re dead.”(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 있어라. 죽기 전엔 죽지 마라). 죽음에 굴복하지 말고 최대한 살아 있으라는 말이다.
어찌 보면 참 매력적인 글이다. 죽음에도 굴복하지 않는 ‘생의 의지’가 위대해 보인다. 물론 성경적으로 보면 어리석은 내용이 될 것이다.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젊고 건강하다고 늦게 죽거나 죽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오라 하시면 어린아이도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게 인간이.
그렇다고 우리가 책임지고 간수하고 유지해야 할 건강마저 포기하고 살라는 얘기는 아니다. 오래 사는 것도 좋은 일이나 건강을 다 잃은 채 병원 신세 지거나 자식들 힘들게 하면서까지 길게 사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천국에 빨리 가는 것도 좋겠지만, 이 땅에서 건강한 몸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다가 가는 것도 멋진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시간 반이나 밖에서 걷고 뛰다가 들어왔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 어떤 이는 오래 살고, 어떤 이는 짧게 살지만, 길고 짧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사랑하는 처형의 소천 소식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의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흐른다는 사실과 남은 우리의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죽기 전에는 죽지 말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좋지 않게 볼 필요는 없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아서 일찍 죽음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임과 동시에, ‘가능한 한 건강한 몸으로 오래 살아남아서 유익한 일을 많이 하라’는 충고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연지대사가 전한 이야기처럼 늙어감 자체가 인생의 끝을 향한 신호라면, 그 신호는 두려움이 아니라 준비의 초대라 볼 수 있다. '미리미리 죽음을 잘 준비하라'는 뜻으로 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적절한 성구를 소개하면 시 90:12절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오늘을 제대로 산다.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만이 땅에서 충실히 산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잘 살기 위해 힘쓰고 애써야 한다. 주신 몸을 잘 돌보며,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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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