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하게 될 수 있을까?”의 질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은 구원을 말한다. 즉 구원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이생과 내생에 행복의 길이 열어지며, 특별히 영혼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살게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새로운 구원 이해는 이러한 구원 이해가 잘못된 것이라고 보는데, 이 관점에 의하면 전통적인 구원 이해는 너무 협소한 구원 이해이다. 즉 전통적인 인간 이해는 인간이 영혼으로만 되어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혼만의 구원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통합적인 인간이해에 의하면 인간은 영과 육이 하나로 된 통합적인 존재이므로 구원도 영과 육이 모두 함께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해는 김균진의 다음 글에서도 볼 수 있다.
생명을 살리는 예수의 구원의 사역은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는 물론 인간의 육체에 대해서 일어난다. 예수가 행한 병 고침과 귀신 추방에서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볼 수 있다. 병 고침을 통해 인간의 영혼은 물론 그의 육체가 건강하게 되며 고통과 소외에서 해방된다. 귀신이 인간을 떠날 때, 인간의 온 몸이 건강하게 되며 사회에 통합된다. 예수께서 죄 용서를 선언할 때, 죄인의 영혼은 물론 육체를 포함한 그의 존재 전체가 용서를 받으며, 사회적 소외에서 해방되어 존엄성을 회복한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육체와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긍정을 보여준다. 예수는 인간의 영혼만 만족케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를 굶주림의 고통에서 해방시키며 그것을 만족시킨다.
해방신학을 주창한 구티에레츠는 해방의 세 가지 차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로 해방은 압제 받는 대중의 정치적 해방을 말한다. 둘째, 인간화로서의 인간 해방을 의미한다. 셋째, 죄로부터의 해방과 하나님과의 친교라는 신앙적인 차원을 지닌다. 여기에서 구티에레츠는 양적구원과 질적 구원을 말하는데, 양적 구원이란 비기독교인들을 복음화하여 개종시키는 전통적인 존재론적인 개인 구원을 의미하여, 질적 구원이란 사회 모든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인간화를 포함하는 사회구원이라고 보면서 후자에 더 많은 강조를 두는 경향이 있다. 즉 해방신학이 말하는 구원이란 주로 사회 정치적인 해방에 더 많은 포커스를 두며, 이 구원에 참여키 위해서는 예수의 정치적인 삶을 따라서 정치적인 책임을 다하는 바른 실천 (orthopraxis)의 삶을 살아야 함을 요청한다. 즉 해방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영혼의 구원 뿐 아니라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문화 등의 종속으로부터 해방을 의미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구원이란 모든 사람이 서구의 부에 동참하게 될 정도의 대규모의 기술적인 발전의 확장이 이루어지면서 억압과 소외 착취가 사라지고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원 개념 속에서는 전통적인 개인적이고, 영적이며, 미래적인 차원의 구원 개념은 거의 사라지고, 주로 사회구조적인 해방의 관점에서 기술되어지며 역사의 현재 속에서 실현되는 구원개념이 나타난다. 이 같은 구원 개념 속에서 사회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는 사회악을 척결해야 하는데, 사회악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 현상의 분석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사회학이 신학과 유사한 자리를 갖게 되고, 성경해석도 정치적 관심에서 해석하는 소위 ‘정치적 해석학’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막시즘이 상당 부분 수용되어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전통적인 신학이 통전적인 구원이해나 사회구원의 차원을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며, 또한 반대로 포괄적인 구원이해에 영혼의 구원이나 개인구원의 차원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전통적인 신학은 영혼 구원과 개인 구원이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이고, 그것이 먼저 이루어지고 난 후에 점진적으로 육의 구원과 사회 구원도 함께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포괄적인 구원 이해에 있어서는 영의 구원과 육의 구원이 분리되지 않고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개인 구원과 사회구원이 함께 일어나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별히 해방신학의 경우는 육의 구원이나 사회 구원에 더 강조점을 두는 경향을 보이며, 이러한 구원이해가 에큐메니칼 신학에 의해 많이 수용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 좀 더 자세한 내용과 각주 등은 아래의 책에 나와 있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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