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엡 4:11–12, 고전 14:40)

서헌제 박사(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서헌제 박사(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가 여러 직분을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고 하였고,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는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고 권면했다.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살아 있는 몸이기에, 영적 질서 속에서 세워질 때 비로소 건강하게 자란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영적 질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울 것인가는 각 교회가 채택한 교회정치 제도(Church Polity)에 따라 다르다. 교회의 권위와 의사결정 구조에 따라 감독제, 장로제, 회중제로 나뉘며, 장로교회의 당회·노회·총회 제도는 그중에서도 성경적 질서와 연합의 원리에 입각한 초대교회와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당회(Session)는 한 교회를 섬기는 장로들의 모임이다(행 14:23, 딛 1:5). 초대교회는 단일 지도자가 아니라 복수의 장로가 공동으로 교회를 돌보았고, 오늘날의 당회는 그 성경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노회(Presbytery)는 교회의 대표자들이 모여 교리와 질서를 바로 세우는 대의적 회의체다.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회의는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할례 문제를 둘러싼 신학적 논쟁을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여 논의하고 합의한 사건으로, 오늘날 노회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총회(General Assembly)는 교단 전체의 신앙과 질서를 지키는 최고 회의체이다. 예루살렘 공회의의 결의가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행 15:22)에 의해 공문서로 모든 교회에 전달된 것처럼, 오늘날 총회는 교단의 교리와 헌법을 제정하고 각 노회를 지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당회–노회–총회의 관계는 감독제와 같은 위계적 구조가 아니라, 연합과 협력의 질서 속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교회 안에 드러나도록 돕는 통로이다.

하지만 국가법의 관점은 다르다. 성경과 교회법이 교단을 교회의 상위 기관으로 본다 하더라도, 국가법은 교단과 지교회를 각각 독립된 비법인사단으로 본다. 비법인사단은 자체 정관과 구성원 총회의 결의에 따라 운영되는 독립체이므로, 교단 헌법은 지교회 교인들에게 신앙상 구속력은 있으나 법적 강제력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회 정관에는 “본 교회는 교단 헌법과 규례를 존중하되, 교회의 독립성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에 따른다”고 규정한다. 즉 교단 헌법과 지교회 정관의 관계는 국가 헌법과 법률의 상하관계가 아니라,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로서 지교회 정관이 우선 적용된다는 것이다.

법원 또한 일관되게 “지교회가 교단 헌법을 자치 규범으로 수용한 경우에만, 그리고 교회의 독립성이나 종교의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교단 헌법의 효력이 인정된다”고 판시한다. 따라서 교회 정관에 “본 교회는 ○○교단 헌법과 총회의 결의를 따른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면, 이는 계약적 합의로 보아 법원이 교단 헌법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지교회 재산이 교단 유지재단 명의로 소유권 등기되어 있다 해도 이를 명의신탁으로 보고 지교회가 교인총회 결의에 따라 반환을 청구하면 돌려주어야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목사의 자격, 해임, 권징에 관한 사안은 교단의 권한이 우선한다. 실제로 지교회 담임목사가 교단헌법이 정하는 목사의 자격인 2년간 전도사 사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단총회재판국 판결에 의해 목사직을 상실한 사안에서 법원은, 교단과 지교회 사이의 목사자격 인정 여부는 교단의 신앙적 권한에 속하므로 지교회는 교단 결정에 따라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또한 지교회 장로 8인이 교인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 소속 노회에 담임목사 해임청원을 한 사안에서, 노회는 관할 교회의 목사를 위임하거나 해임할 권한을 가지고 있고, 목사를 해임하는데 반드시 공동의회의 결의를 거친 교회의 청원이 필요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노회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은 다음 목사를 해임할 수 있다고 하여 노회의 권위를 인정하였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 권면했다. 교단은 교회의 영적 질서를 위한 울타리이며, 지교회는 그 안에서 자치적으로 서 있는 공동체다. 국가법이 교단의 명령보다 교회의 자치를 우선시한다고 해서 교회의 연합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당한 절차와 질서를 존중하는 것이 교회의 자유를 지키는 길이며, 질서 속의 자유가 참된 교회다움을 세우는 기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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