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예수님의 말씀이 불편하게 들릴 때’(When Jesus is insulting )를 20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오래전, 필자는 불신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그들에게 기독교의 본질을 생각하게 할 만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대부분의 비기독교인들은 신앙을 멀리하려 할 때 교회의 문제나 그리스도인들의 위선, 혹은 하나님을 믿는 데 따르는 지적 문제들을 열거한다. 그중 일부 비판은 정당하지만, 일부는 왜곡되어 있다.

하지만 기독교의 기초가 한 인격적 존재, 즉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 있음을 알게 된 이후 필자는 이런 비판을 잠시 제쳐두고 그들에게 단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예수님에 대해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나요?” 그때 필자는 사람들이 예수님 그분 자신을 비난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결국, 예수님이 불법적인 재판을 받으셨을 때도 복음서 기자 마가는 이렇게 기록했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거짓 증언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더라.” (막 14:55) 그분의 적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말실수를 유도했지만 끝내 그분의 흠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누가 그분을 향해 정당한 비난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가끔 성경에 익숙한 이들이 예수님이 가나안 여인을 ‘개’라 부르신 사건(마 15:21-26)이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반론을 제기하곤 했다. “그리스도의 도덕적 성품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그는 지옥의 존재를 믿었다. 진정으로 인도적인 사람이라면 영원한 형벌을 믿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워할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를 완강히 거부했다. 그때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예수님을 올바로 이해할 때, 그분은 거듭나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모욕적인 존재’가 된다.

“예수님, 제발 그만 말씀하세요”

복음주의자 팀 켈러(Tim Keller)는 이렇게 말했다.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은 보통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한쪽은 ‘나는 용서받을 필요가 없어’라 하고 다른 쪽은 ‘그건 너무 쉬운 길이야’라고 한다.” 그리고 그는 결론 내린다. “은혜는 모욕적이다.”

한쪽은 예수님이 “당신은 죄인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불쾌해하고, 다른 쪽은 “당신의 선행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 때문에 분노한다. 이것이 복음이 처음부터 사람들의 자존심을 거스르는 이유다.

트레빈 왁스(Trevin Wax)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불쾌하게 여기는 이유를 이렇게 요약했다. “그분은 포용적이어서 싫고(‘저런 사람들과 어울리다니!’), 동시에 배타적이어서 싫다(‘하나님께 가는 유일한 길이라니, 그건 오만해!’).”

조디 버킨(Jody Burkeen) 목사는 덧붙인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죄를 직면하게 하시고(‘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주권을 주장하시며(‘너희는 어찌하여 나더러 주여, 주여 하면서 내 말은 행하지 않느냐’), 순종과 헌신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아버지나 어머니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내게 합당치 않다’).”

성경은 이미 예언했다 성경은 오래전부터 예수님이 거슬리는 분이실 것을 예언했다. 이사야는 말씀했다. “그는 걸림돌과 실족하게 하는 반석이 되리라.” (사 8:14)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보며 이렇게 예언했다.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흥함과 망함을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리라.” (눅 2:34)

예수님 자신도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눅 7:23) 그분의 존재와 말씀은 우리 내면의 깊은 곳을 불편하게 만든다. 가수 Big Daddy Weave와 Katy Nichole의 노래 「God Is in This Story」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 책에는 찢겨진 페이지들이 있어 나를 쓸모없다고 말하는 문장들 너무 오랫동안 나를 규정했던 장(章)들 오늘날의 ‘나는 괜찮아, 날 판단하지 마’라는 문화 속에서 이런 메시지는 참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우리가 꼭 들어야 할 진리다. 잠언의 말씀처럼,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하다.” (잠 27:6)

거슬림 속의 사랑

영국 침례교 설교자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은 설교 「하나님인가, 자아인가(God or Self – Which?)」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사람들을 기쁘게 했는가? 그러나 당신의 주인을 영화롭게 했는가? 그들의 양심을 찔렀는가?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못을 박았는가? 화려한 말보다 거친 말이 오히려 더 유익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복음서에는 그런 ‘거친 말과 심장에 박히는 못’이 가득하다. 그분의 말씀을 진지하게 읽는 사람은 성령에 찔려 회개하든지 아니면 분노하여 그분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고 싶어하든지 둘 중 하나다(눅 4:29).

“예수”라는 가장 불편한 이름

복음 전도자 닉 부이치치(Nick Vujicic)는 말했다. “‘예수’라는 이름은 인생에서 가장 불편한 단어다. 그분만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하나님이다. 나는 거룩하다. 나는 진리의 유일한 길이다.’ 무함마드도, 부처도, 그 누구도 자신이 하나님이라 하거나 사탄을 이기셨다고 말하지 않았다.”

결론: 모욕을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은 분명히 불편한 분이다. 그분은 우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죄를 폭로하며, 자기중심적인 인생을 흔드신다. 그러나 그 거슬림 속에는 우리를 살리려는 사랑의 상처가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예수님 때문에 모욕감을 느끼지 말라. 그분이 필요할 때 당신을 찌르도록 내어드리라. 왜냐하면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기 때문’이다.” (눅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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