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리처드 랜드 박사의 기고글인 ‘칼뱅주의 논쟁: 칼뱅주의와 자유 의지의 공식화에 대한 대안’(Calvinism debate: An alternative to both Calvinist and Free Will formulations)을 최근 게재했다.
랜드 박사는 2013년 7월부터 2021년 7월까지 남부 복음주의 신학교(Southern Evangelical Seminary)의 총장으로 재직했으며 2011년부터 CP의 편집장 겸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혹은 <침례신앙고백서>가 말하는 “자유 행위(free agency)”의 문제는 수세기 동안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혀 온 신학적 수수께끼이다. 어떻게 이 두 가지 위대한 성경적 진리를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필자는 ‘Whosoever Will’에서 “합치하는 선택: ‘영원한 현재(Eternal Now)’ 관점에서 이해하는 구원”이라는 메시지를 맡아 전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겸손함과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 주제가 매우 도전적인 동시에 필자가 수십 년간 그리스도인으로서, 또한 조직신학 교수로서 씨름해온 주제였기 때문이다.
필자의 목표는 모든 성경 구절을 자신 있게, 균형 있게 설교할 수 있는 ‘선택’(Election) 모델을 찾는 것이었다. 즉, 어느 한쪽 견해에 불편한 본문을 완곡하게 다루거나 무시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모델 말이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1장 3-5절에서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사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는 말씀과, 디모데전서 2장 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을 같은 무게로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진리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필자는 다음의 두 가지 핵심 진리를 통해 이를 해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첫째, 성경은 두 가지 종류의 선택을 계시하고 있다. 바로 “아브라함적 선택”과 “구원 선택”이다. 이 두 선택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혼란이 발생했다. 아브라함적 선택(창 12:1–3)은 하나님이 유대인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이다. 반면 구원 선택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개별 인간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다.
아브라함적 선택은 집단적이며 지상에서의 특권과 관련되고, 구원 선택은 개인적이며 영원한 생명과 관련된다. 신약에서 하나님은 구원 선택이 ‘미리 아심’(foreknowledge)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계시하신다(롬 8:29–30, 11:2; 벧전 1:2).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대한 유대인의 반발을 예견하며, 하나님께서는 항상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롬 11:1–5), 곧 아브라함이나 바울처럼 두 가지 선택을 동시에 받은 자들을 남겨두셨다고 설명한다.
필자는 이 책에서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칼뱅주의자들이 선택 교리를 잘못 정식화한 이유는 그들이 교회론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교회를 동일시함으로써 하나님이 집단으로서의 이스라엘과 개별 구원받은 자들을 구분하여 다루신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야곱과 에서”의 문제(롬 9:11–13)를 둘러싼 질문에 대해 H. A. 아이언사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본문은 천국이나 지옥에 대한 예정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한 아이는 천국으로, 한 아이는 지옥으로 보내기로 작정하셨다는 말이 아니다. 이 구절은 전적으로 이 땅에서의 특권과 관련된 말씀이다.”
둘째, 구원 선택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은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으며, C.S. 루이스가 말했듯 ‘영원한 현재(Eternal Now)’ 안에 계신다. 하나님은 과거와 미래, 모든 사건과 사람을 동시에 현재로 경험하신다.
즉, ‘미리 아심’이란 하나님께서 미래를 단지 아는 것을 넘어서, 모든 것을 현재적 순간으로 경험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을 언제나 현재적으로 경험하신다. 그분은 그들을 ‘택하신 자들’로 간주하시며, 그들의 부르심을 실제적으로 이루신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거절하고 반역하는 자들도 동일하게 항상 경험하신다. 그들은 부르심을 ‘받을 수 없는(cannot)’ 자들이 아니라, ‘받지 않을(will not)’ 자들이다.
따라서 “택자는 반드시 구원받는다(must be saved)”는 칼빈주의적 모델과 “택자는 구원받게 될 것이다(will be saved)”는 이 모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더 나아가, “비택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cannot be saved)”는 주장과 “비택자는 구원받지 않을 것이다(will not be saved)”는 주장 사이에도 중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 새로운 선택 모델이 칼빈주의 5대 교리(T.U.L.I.P.)에 어떤 영향을 줄까? 필자는 2008년 Whosoever Will 컨퍼런스 이후 이에 대해 오랫동안 기도하며 생각해 왔고, 그 결과 ‘D.E.S.I.R.E.’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게 되었다.
D.E.S.I.R.E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D(Disabling Depravity, 무능력하게 만드는 타락):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전적 부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저항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거절 가능한’ 것이다.
E(Eternal Now Election, 영원한 현재의 선택): 하나님은 ‘영원한 현재’ 안에서 선택하신다.
S(Sufficient Salvation, 충분한 구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에게 구원이 적용된다.
I(Initiatory Conviction, 성령의 시작적 확신): 성령께서 먼저 역사하셔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복음을 이해하도록 하신다. 그러나 그 부르심은 강제적이지 않다.
R(Regenerative Grace, 중생의 은혜): 인간이 반응할 때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위로부터 거듭나게 하신다.
E(Eternal Security, 영원한 구원의 안전):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 안에 영원히 안전하게 보존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D.E.S.I.R.E.’이다. 이는 칼빈주의도 아니고 아르미니우스주의도 아닌, 성경에 뿌리를 둔 대안적 구원 이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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