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찬란한 문명도시, 알렉산드리아
마가의 복음전파와 순교의 흔적
'성 마가 교회', 순교자의 땅 되다
복음의 겨자씨, 아프리카로 퍼지다
나일강 하구에 위치한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필자에게는 매혹의 도시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알렉산더 3세)은 기원전 334년에 시작한 해외원정을 통하여 그의 말발굽 아래 점령한 동부 지중해 지역(이집트 등),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 지역(오늘날 이라크와 이란), 중앙아시아(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 코카서스 지역 그리고 파키스탄·인도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그가 정복한 지역에는 그리스 문명과 문화를 전파하려고 그의 이름을 붙인 도시(알렉산드리아)들을 건설하였다. 이들 알렉산드리아 이름을 가진 여러 도시들 가운데 오늘날까지 그 이름을 간직하고 계속 번영하고 있는 도시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가 유일하며 이 도시는 알렉산더가 자기 이름을 붙인 도시들 가운데 가장 먼저 이름을 붙인 곳이다.
고대에 세계최대 규모의 도서관과 가장 높은 등대를 갖고 있었고 당대 최고의 학문수준을 갖고 고대 세계를 이끌었던 찬란한 문명과 문화 그리고 교역의 국제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의 명령에 따라 건설된 도시이다. 그러나 막상 현지를 방문하고 건설 명령을 내린 알렉산더 대왕은 도시가 건설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원정 도중에 사망하였다. 인구가 많은 카이로와 비교하면 지중해에 면한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는 복잡하지 않고 도시가 주는 분위기가 다르다. 시민조차 카이로에 비해 밝고 마음이 열려있음을 갈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바가지 요금을 부르는 택시 운전기사도 훨씬 적고 방문자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운전기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가 필자의 마음을 잡아 끄는 것은 신약성경의 공관복음 3권(마태, 마가, 누가복음) 가운데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가 이곳에 와서 전도를 하였다는 구전(口傳)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사도행전)에는 알렉산드리아 관련하여 4번(6장 9절, 18장 24~25절, 27장 6절, 28장 11절)이나 언급되어 있다. 이 구절들은 알렉산드리아인들이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해외여행을 하고, 알렉산드리아에 유대인 사회가 존재하였고, 동부 지중해에서 알렉산드리아는 해상교역의 중심지로서 많은 선박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매년 수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집트를 방문하지만 대개 피라미드를 쉽게 볼 수 있는 수도 카이로와 고대 유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룩소(Luxor)를 주로 방문하고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필자의 경우, 여태까지 이집트를 4회 방문하였는바 알렉산드리아를 3회 방문하였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필자에게 알렉산드리아는 마가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서기 10년경에 리비아의 구레네 지역의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하였다고 하며 서기 61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 와서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다가 서기 68년경(마가 나이 약 60세)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하였다는 마가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성(聖) 마가 교회'는 알렉산드리아의 구시가에 위치하고 있다. 항구에서 부지런히 걸으면 20분이면 도착한다. 이집트 토착 기독교인 콥틱 정교회 교회인 마가 교회는 정문 입구가 보이지 않는 제법 먼 곳에서도 경찰관들이 경비를 서있고 교회 마당에 들어가는 출입구에는 경찰이 출입자들의 신분을 확인하며 엑스레이(X-Ray) 보안 검사대를 통과하도록 한다. 외국인은 여권을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마가 교회는 2017년 4월 9일 주일에 기독교를 혐오하는 자들에 의해 자살공격 테러를 당하였기 때문이다. 이날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트들은 이 교회를 폭탄으로 공격함으로써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는 교인 15명을 살해하고 41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마가 교회의 외부 정문을 들어가면 왼편 벽에 이때 희생당한 교인 15명의 사진과 이름이 붙어있다. 정문을 통과해서 예배당으로 가는 길 왼편에는 조그만 정원이 보이는데 정원 속에 있는 마가의 동상 뒤 벽에는 마가가 4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한 여정이 큰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다. 마가 교회는 정면에서 볼 때는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지만 옆과 뒤에서 보면 엄청나게 큰 건물이다. 교회 안에는 초대 목회자로서 마가의 이름이 돌판 맨 위에 새겨져 있고 교회 옆에는 행정사무실 건물과 기념품 상점도 있다. 마가가 살았던 집이 있었던 곳에 세워졌다는 이 교회는 파괴와 재건축을 되풀이하다가 1990년에 오늘의 모습으로 준공되었다. 그리고 이 교회의 뒷부분이 있는 곳을 지나는 도로는 '다니엘 도로'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구약 성경의 용맹한 선지자요 정치가(총리)인 다니엘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마가 교회가 있는 지역은 고대에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그때 이름붙인 다니엘의 이름이 아직도 도로에 붙어 있는 것이다. 마가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뿌린 복음의 씨앗은 작은 겨자씨가 거대한 나무가 되듯이 세월이 가면서 아프리카 전역에 기독교 복음이 퍼져 나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필자 권주혁 장로(청량리교회). 성지(聖地) 연구가이며 국제정치학 박사이다. 세계 145개국을 방문했다. 영국왕실 대영제국 훈장(OBE)을 수훈(2015년)했다. 저서로는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사도 베드로의 발자취를 찾아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등 24권을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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