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오늘 오전 11시에 한다.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국민적으로 극도로 민감한 사안인지라 선고 결과에 따라 승복 또는 불복으로 갈리며, 탄핵 찬반 양측간의 충돌이 한층 격화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례에 견주어 봐도 역대 그 어느 대통령들보다 훨씬 긴 시일이 소요됐다. 그만큼 법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고 인용, 기각, 각하 등 선고 결과를 놓고 헙법 재판관 사이에서도 의견 대립이 뚜렷했다는 뜻이다.
교계는 4개월여 탄핵정국이 이어지는 동안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탄핵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손현보 목사를 주축으로 일타 역사 강사 전한길 씨가 합류한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는 서울을 비롯해 부산과 대구, 광주, 대전, 춘천 등 전국 대도시를 돌며 국민적 탄핵 반대 열기를 집약하는 역할을 했다. 또 서울에서는 전광훈 목사를 중심으로 광화문과 서울광장에 이르기까지 주말마다 수십만 명이 모인 가운데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려 인근의 탄핵 찬성 집회를 압도했다.
그러나 한국교회 진보진영의 목소리는 이와는 정반대였다. NCCK는 대중집회를 열지는 않았지만 시국회의를 통해 입장문을 내고 12.3 계엄을 내란죄로 다스려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하라고 헌법재판소에 요구했다. 또 교회개혁실천연대 등도 서부지법 난입사태와 관련, 초법적 행위를 한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은 줄기차게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자칫 종교가 정치에 개입한다는 비판을 받을까 우려하는 마음이 커서였겠지만, 무엇보다 교회 내부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의견 간에 충돌로 인한 갈등을 피하기 위한 차원일 것이다.
하지만 헌재 탄핵심판 선고 이후에도 그 기조를 유지하는 건 의미가 없다. 결과가 나온 이후 사회가 양극으로 갈려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 이어지고 분열과 갈등이 심화하는 데도 침묵을 고수하는 건 교회의 존재 의미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 한국교회가 분명하고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할 시간이다.
여야는 헌재의 결정이 서로에게 흡족할 경우에는 승복하고 받아들이겠지만 불리하게 나면 거부하고 불복하려 들 게 뻔하다. 그게 정치의 생리이자 속성이다. 벌써부터 한쪽에서 헌재 결과에 불복하고 유혈 폭동을 일으킬 것이란 흉흉한 소문까지 돌고 있다.
문제는 이 정치적 싸움에 국민을 끌어들여 대리전을 치르려는 여야 정치권의 알팍한 노림수가 가져올 국가적 파탄 상황이다. 정당들은 국민의 환호, 또는 끓어오르는 분노 감정을 정략적으로 이용해 궁극적으로 권력을 손에 쥐려 하겠지만 희생과 피해는 모두 국민에게 떠넘길 것이다.
국민 간에 극한 대립과 갈등, 분열은 망국의 지름길이다. 지난 4개월여의 혼란만으로도 충분하다. 만약 헌재 선고 후 정치적 소요사태가 일어나 유혈 폭동 등 내란 수준으로 확대된다면 그때는 비상계엄보다 더한 국가적 파국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가운데 교단 중에 가장 먼저 기독교대한감리회가 헌재 선고에 승복하자는 메시지를 냈다. 기감 감독회의는 지난 1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이제는 수용과 포용, 치유와 하나 됨의 길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라고 밝혔다.
기감은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내부적으로 서로 다른 견해가 충돌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교단이다.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직후 감신대 교수 전원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시국 선언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갈등은 감신대 재학생 일부가 탄핵에 반대하는 대자보를 교내에 붙이면서 교단 내에 표면화됐다. 이후 감리교 거룩성회복협의회 소속의 목회자들과 원로목사들의 탄핵 반대 시국 선언으로 이어지게 됐다.
그동안 대통령 탄핵 문제에 침묵하던 기감 교단이 장고 끝에 헌재 심판 선고에 승복하자는 입장문을 발표한 건 지금의 정치적 혼란 상황이 교단과 한국교회 전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거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제 결과가 나온 이상 대립과 반목을 끝내자는 거다.
어떤 결과든 승복하고 받아들이는 게 법치주의의 정신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그 과정이 무탈하고 공정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건 주권자인 국민이 선거로 내린 결정을 바꿀지 말지를 판단하는 국가 중대사라는 점에서 그 과정이 공정하고 적법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국민이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헌재는 지난해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지 무려 111일 만에 선고를 내리게 됐다. 그동안 헌재 탄핵 심리 과정에서 문형배 헌재 소장 대행 등 일부 헌법재판관의 정치적 편향성이 도마 위에 오르고 헌법의 최후 보루인 헌재가 국민적 불신을 사게 된 건 커다란 손실이다. 오늘의 선고가 그 모든 불신과 의혹이 눈 독듯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어떤 결정이 내리질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가 그동안의 갈등과 혼란을 매듭짓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헌재로 옮겨진 시간이 다시 국민에게 돌아올 때 칡넝쿨처럼 뒤엉켰던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외교 안보 전 분야에 걸친 국민의 일상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돌고 돌아 다시 국민에게 온 귀중한 시간이 혼란과 갈등으로 헛되이 소모되지 않도록 이제 한국교회가 발 벗고 나설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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