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학대학교가 ‘유신진화론’ 논란에 휩싸였다. ‘유신진화론’이란 ‘하나님이 진화방법으로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가설로 하나님의 섭리로 온 세상이 창조됐다는 ‘창조론’과 대비돼 복음주의 교단 신학대학 안에서 벌어진 논란이 낯설 수밖에 없다.

서울신대 내 ‘유신진화론’과 관련한 논란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이 대학 법인이사회가 지난 3월 이런 내용의 강의와 주장을 한 박 모 교수에 대해 징계 절차에 들어간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이를 놓고 진보·보수 학회간에 대리전 양상이 벌어지는 등 외부로까지 확산하자 황덕형 총장이 학내에 경위를 설명하는 글을 게재하면서 그 전모가 밝혀졌다.

황 총장이 공개한 글에 의하면 서울신학대는 지난 2019년 신학전문대학원 신입생 유치를 위해 ‘창조과학’ 관련 교과목을 신설하고 전문가를 강사로 임용했다. 그런데 박 모 교수가 ‘창조과학’을 ‘사이비 과학’이라고 비판한 게 문제가 됐다. 그 이후 박 모 교수가 창조과학을 비판하는 논쟁을 이어가자 2021년 지방회 감찰회 목회자들이 대학 측에 박 교수의 저술과 논문에 대한 신학적 입장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해 10월 대학측이 신학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검토한 내용을 법인이사회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당시 박 모 교수는 ‘신학적 고백과 반성’이라는 자필 서명 문서를 통해 자신의 주장 가운데 내용적으로 오해를 살 만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했다고 한다. 문제가 된 부분을 수정하고 ‘복음주의 신학과 교단의 신학의 전통과 고백들을 신학적으로 수용하고 해명하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단락되는 듯했던 이 문제가 다시 쟁점화된 건 박 모 교수가 SNS에 그간의 과정에 관련된 인물들을 향해 모욕적인 글을 게시한 게 발단이 됐다. 또 비슷한 시기에 총장에게 제출하기로 약속한 ‘성결교회 창조론 연구’ 논문이 제출되지 않자 대학측은 박 모 교수가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결론 내리고 이를 법인이사회에 보고했다.

서울신학대는 박 모 교수에 대해 “교단 및 외부에서 제기되는 신학적 정체성 논란이 대학 건학 및 교육 이념과 복음주의 신학에 위배되며, 타인에 대한 모욕적인 글을 SNS에 게시한 것은 교원으로서 품위 손상과 대학 명예를 실추시킨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수정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언론, 학회, 동기회, SNS 등을 동원해 대학과 법인 이사회를 비방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지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점도 지적했다.

서울신대 법인이사회가 박 모 교수에 대해 중징계를 지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부 학회의 반발이 이어졌다. 한국문화신학회는 “누구보다 성실한 신학자의 연구결과를 소위 교단의 신학과 위배된다는 사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학교법인 서울신학대학교의 조치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지극히 위험한 사태로 간주하며 이에 대하여 심대한 우려를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기독교교양학회도 최근 발표한 성명에서 “과학과 이성을 신앙의 영역에서 배제하려 했던 과거 교회 역사 속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창조적인 신학을 위한 노력”이라며 박 교수의 ‘유신진화론’을 감쌌다.

그러나 한국창조과학회는 지난 16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유신진화론’은 진화론에 대한 신학적 타협이며, 과학적인 사실이 아니”라며 “‘생물학적 진화나 빅뱅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라는 신념에 기반해 성경에 기록된 창조를 진화론과 타협하여 해석했다는 점에서 가설과 추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무신론적 신념인 진화론과 다르지 않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신학대 교수들 사이에서도 서로 엇갈린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교수협의회가 지난 11일 법인 이사회의 박 교수 징계 의결 요구에 대해 “외부의 소수 목회자가 제시한 관점에 경도된 것으로서 학문의 자율적인 토론과 연구를 권장해야 할 대학의 의무와 명분을 저버린 행위이자 명백한 교권 침해”라는 내용의 입장문을 내자, 신학부 교수 25명은 “‘유신진화론’이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고백하는 창조신앙과 그리스도의 구원에 관한 고백과 일치하지 않다”라며 선을 그었다.

‘유신진화론’은 ‘창조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시대정신에 만족한 설명을 하지 못하자 나온 다양한 타협이론 가운데 하나라는 견해가 있다. 생물학적 진화를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기 위해 창세기를 진화론에 꿰어맞췄다는 점에서 한국교회, 특히 복음적 관점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이론을 한국교회가 받아들이게 되면 창세기의 역사성을 부인하게 되고 성경 전체에 대한 의심이 증폭될 수도 있다는 점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대학은 서로 다른 논리와 주장이 상존하는 곳이다. 내 생각과 다른 다양한 학문적 관점들을 포용하거나 비판할 자유가 허용되기에 ‘학문의 전당’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교수가 대학에서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밝히는 건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신학대학에서 교수가 교단의 신앙고백과 다른 주장을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목회자를 양성하는 교단 신학교의 경우 학문적 자유가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과 신앙고백에 우선할 순 없다. 학문은 학문으로 그쳐야지 신학 위에 올라서려고 하는 건 자기 부정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실수라면 진솔한 사과로 그칠 일이지만 변함없는 소신이라면 그로 인해 파생된 문제에 책임지는 것 또한 오롯이 본인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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