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 ©ReligionForBreakfast 유튜브 캡쳐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가 최근 제이슨 지메네즈(Jason Jimenez)가 쓴 ‘예수님이 무덤에서 돌아오셨다는 3가지 주요 증거’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제이슨 지메네즈는 미국 스탠드 스트롱 미니스트리(Stand Strong Ministries)의 창립자 겸 회장이며, 저명한 기독교 세계관 연설가이자, 서밋 미니스트리(Summit Ministries)의 교수진이다. 다음은 칼럼의 요약.

1.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증거

오늘날 로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증거를 부인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심지어 바르트 에르만(Bart Ehrman), 제임스 타보르(James Tabor), 일레인 파겔스(Elaine Pagels)와 같은 자유주의 학자들도 로마의 유대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의 명령에 따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보내졌다는 정경 기록이 정확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또 다른 강력한 지지자는 데이비드 F. 슈트라우스(David F. Strauss)이다. 많은 복음서 이야기를 신화라고 여겼던 독일의 자유주의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에서 살아났다는 겉보기에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주장을 인정했다. 슈트라우스는 그의 저서 『예수의 새로운 삶』(A New Life of Jesus)에서 “무덤에서 반쯤 죽었고, 약하고 병들어 치료를 받기 위해 기어야 하며, 붕대를 싸매고 부축해야 하고, 관용이 필요한 존재, 마침내 자신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사람을 무덤 밖으로 훔쳐내어 제자들에게 그분이 죽음과 무덤을 이기시는 분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당연히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이를 확증하는 초기의 독립적인 자료들로 인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경 복음서, 사도행전, 바울 서신에 쓰여 있는 초기 신앙고백과 전통(예: 고린도전서 15:3-8) 외에도 요셉우스(Josephus), 로마의 클레멘스(Clement of Rome), 이그나티우스(Ignatius), 타키투스(Tacitus), 탈무드(Talmud), 사모사타의 루시안(Lucian of Samosata’s) 등 정경이 아닌 다수의 출처들이 있다.

게다가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세부적으로 보면, 그가 생존했거나, 자신의 죽음을 조정했다고 볼 만한 구체적인 근거가 전혀 없음이 분명해진다. 몇 가지 잘 알려진 역사적 및 의학적 사실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진 후에도 생존할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을 명백히 없애준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견뎌냈다. 누가는 예수님이 조혈증(hematidrosis)을 경험했다고 전하며, 이는 극심한 정서적 고통으로 인해 땀샘 근처의 혈관이 터져 피와 땀이 섞이는 드문 의학적 상태를 일컫는다(눅 22:44). 예수님은 체포된 후 병사들에게 잔혹하게 구타를 당했으며, 그분은 어깨부터 발목까지 공개적으로 채찍질을 당해 근육 조직이 찢어지고, 장기마저 노출되었다(마 27:26, 막 15:15, 눅 22:63-65, 요 19:1).예수님은 등에 나무 대들보를 들고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 처형 장소인 골고다로 나아갔다(요 19:16-17). 마가복음 15장 25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혀 오후 3시까지 그곳에 남겨졌다고 33-37절에 설명되어 있다. 요한은 병사들이 예수님께 와서 그분이 이미 죽은 것을 보고(요 19:33), “한 군병이 창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이 흐르게 하였다”(19:34)고 덧붙였다.

2. 빈 무덤과 죽은 이후 모습들의 초기 증거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며칠 만에 예수님의 무덤이 텅 빈 채 발견된 것은 부활의 결정적인 요소이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사도 바울의 글과 정경 복음서를 포함한 여러 초기 자료들에 의해 뒷받침되는 확고한 사실이며, 이 모든 것들은 주후 80년 이전의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5–8절(주후 55년경 기록)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본 사람들을 독립적으로 보고하는 초기 신조(예수님의 부활 후 5년 이내에 퍼져 나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제시한다. “예수는 게바(베드로)에게, 그 후에 열두 제자에게, 그리고 나서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일시에 나타나셨는데 그중 대부분은 지금도 살아 있으나 몇몇은 잠들었다.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그리고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으며, 그 후에 나처럼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에게도 나타나셨다.”

수많은 목격자들이 단순히 부활한 예수님을 보았을 뿐 아니라, 그분과 대화하고 교감했으며, 이들의 존재는 빈 무덤의 이야기를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이 증인들 중에서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다. 그녀는 소수의 여성들과 함께 예수의 무덤에 처음으로 다가갔는데, 거기서 무덤이 비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 설명의 중요성은 당시 여성의 신뢰도가 낮고 법적인 증인으로서 자격이 없었다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제자들이 여성들을 그러한 주요한 사건의 증인으로 세웠다는 이야기는 조작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더욱이, 이 여인들은 무덤에서 돌아오자마자, 자신들의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대담하게 제자들과 다른 이들 앞에서 공유하여, 자신들의 주장이 진실임을 더욱 입증했다. 누가복음 24장 11절에는 “[제자들] 보기에는 그들의 말이 허탄한 이야기로 여겨져 믿지 않았다”고 나와 있다.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에 넣을 만한 내용이 아니다. 여인들이 최초의 목격자로 기록되어 있고, 제자들이 처음에 그들의 보고를 믿지 않았던 유일한 이유는 바로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여인들과 제자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예수님의 부활 후 목격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려는 다른 설명(예: 제자들이 시신을 훔쳤다)이 존재하는 것은 빈 무덤을 가리키는 증거의 강력함을 강조한다(마태복음 28:11-15). 심지어 7세기 이슬람교도들도 예수님의 빈 무덤을 신성시하거나, 십자가형으로부터 기적적인 탈출로 설명하고자 했다(수라 4:157-8).

시신이 없는 것과, 예수님이 죽은 이후에 그분이 목격되었다는 다양한 증언을 종합해 볼 때, 대안적인 설명은 무덤이 실제로 비어 있었음을 더욱 뒷받침한다.

3. 제자들의 변화

예수님의 부활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들이 있지만, 특히 마지막으로 설득력 있는 증거 중 하나는 제자들의 변화이다.

제자들이 겁에 질리고 낙담한 추종자에서 담대하고 확고한 부활의 전파자들로 변모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의 진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한다. 그들의 부활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박해와 심지어 순교까지 기꺼이 견디어 낸 것은 그들의 확신이 진실함을 보여준다.

극심한 반대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초기 기독교는 예루살렘에서 급속한 확장을 보였다. 이러한 도전에 직면한 기독교 운동의 성장과 확산은 부활의 강력한 영향력을 입증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진리에 자신의 생명과 명예를 기꺼이 감수한 사실은 역사적 사실로서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이러한 증거들을 진지하게 검토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철저한 조사는 그것이 일종의 신화나 전설로 치부되지 않고, 역사적 사실로서의 설득력 있는 사례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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