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폴로 74 희년학술대회
21일 지구촌교회에서 엑스폴로 74 희년학술대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이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구촌교회

세계성시화운동본부가 EXPLO ’74 희년대회, CCC, 나사렛형제들과 함께 21일 지구촌교회(담임 최성은 목사)에서 ‘EXPLO’74 Remember: 회고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엑스폴로 74 희년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엑스폴로 74는 1974년 8월 13일부터 8월 18일까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된 부흥 대성회로 한국 기독교에서 역사상 손꼽히는 규모의 성회였다. 이후 한국교회는 하루에 6개씩 교회가 개척되었으며, 1년 만에 110만 명이 성장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행사는 예배, 학술대회 순으로 진행됐다. 예배는 박영률 목사의 인도로 김철해 교수의 대표기도, 임청화 교수(백석대학교)의 특송, 최성은 목사의 설교 순으로 진행됐다. 최성은 목사는 ‘다시 복음을 회복하라’(이사야 61:1~3)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최 목사는 “1974년 개최된 엑스폴로 74 대회가 내년에 5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50년 전 그 당시의 한국 사회와 5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 사회는 경제적, 시스템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맞이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빈곤해졌고 사람들은 더 우울해하고 또 외로워하고 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신앙과는 멀어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한국 사회에 아름다운 소식이 필요하며 그 아름다운 소식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예언자로 활동했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다. 영적으로 황폐해져 가는 북이스라엘을 보고 남유다의 멸망과 주변국들에 대한 예언을 했던 이사야가 그들에게 임할 심판의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회복시키시고 어떻게 구원하시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께 끝까지 순종하고, 복음을 지켜낸 그들에게 어떤 하나님의 영광이 주어질 것인지 고백한다. 이에 대한 말씀이 이사야서 60장과 61장이다. 특히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땅에 오실 메시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복된 소식이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 한다”고 했다.

최성은 목사
최성은 목사(지구촌교회 담임)가 '다시 복음을 회복하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최승연 기자

최 목사는 “1절 말씀은 메시아의 도래를 이야기하지만 이걸 우리의 삶에 적용한다면 복음을 전하는 자가 성령 충만한 역사로 말미암아서 먼저 회복되어야 할 것임을 전한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성령의 충만을 받은 자로서 회복해야 할 것을 본문 말씀을 통해 몇 가지 나누고자 한다”며 “첫째, 복음의 선포를 회복해야 한다.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 애통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듣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한 열린 기회가 없다면 우리는 복음을 증거해야 되는 사명도 잃어버리게 된다. 로잔대회, 엑스폴로 74 대회에서 울부짖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할 첫 번째 사명”이라고 했다.

이어 “둘째, 복음의 자유를 회복해야 한다. 복음은 심령이 상하고 죄의 노예가 되어 있고 어둠에 갇혀 있는 자들을 자유케 하는 능력이 있다. 엑스폴로 74 대회가 개최된지 50년이 지난 이 시대에도 우리를 죄로부터, 사탄의 권세로부터, 죽음에서 자유케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회복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며 “셋째, 복음의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요즘 설교를 전하면서 때로 복음의 균형을 전달하는 것에 있어서 강단이 무너져 있는 것을 저 스스로 느끼게 된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정말 위로하고 상처에 대해서 어루만져주는 사랑에 대한 설교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내 삶에 어떤 부분이 무너져 있는지, 어떤 부분이 죄인지, 어떤 부분 때문에 내 삶 가운데 어려움이 있는지를 복음을 통해 균형있게 전하는 것이 목회자가 회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 목사는 “넷째, 복음의 기쁨을 회복해야 한다. 복음은 우리의 삶에 말할 수 없는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 예수님을 믿고 모든 삶의 문제가 다 즉각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이는 목회자가 성도에게 이야기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중요한 것은 모든 삶의 권세로도 풀 수 없는 죄와 영생에 관한 문제를 복음으로 풀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대는 복음에 대해서 웃고 복음에 대해서 오는 것을 회복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며 “다섯째, 복음의 사명을 회복해야 한다. 무너진 곳을 찾아서 중보기도하고, 메꾸고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복음 증거, 성령 받은 자의 사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팬데믹 상황을 지나면서 우리 자신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모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연합으로 함께 모였을 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며 모여서 기도했을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음을 증거했던 놀라운 역사의 현장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이지 못할 때 복음 증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구를 섬겨야 할지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의 본질을 뒤돌아보고 회개할 수 있도록 하셨다”며 “50년 전 개최된 이 대회를 회고할 때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고 기념하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시 하나님께서 주셨던 엄청난 성령의 충만함과 열정을 계속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고 했다.

끝으로 최 목사는 “우리는 주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실 때까지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이며 이 대회를 기념하고 회고하라는 의미인 줄로 믿는다. 김준곤 목사님과 빌 브라잇 박사님 등 당시에 활동하셨던 영적인 역전의 용사들께서 그 일을 다시 한번 다음세대에게 전해서 다시 한번 청년들이 이 땅에 일어나는 놀라운 역사, 복음을 회복하고 다시 한번 사명을 감당하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모든 세대에게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고 했다.

이어진 학술대회에서 이상규 교수(백석대학교 석좌)가 ‘EXPLO '74와 민족 복음화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 교수는 “1970년대 한국교회는 활력과 변화, 부흥과 성장의 시기였다. 당시 열린 대형 집회 가운데서 엑스폴로 74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집회였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민족복음화’라는 선명한 가치를 내걸고 시작되었고, 이 집회를 위해 조직적이고도 체계적인 준비와 훈련을 거쳤다는 점에서 일회성 회집과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한국교회는 1900년대부터 민족복음화를 의도하고 대중 전도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 첫 번의 경험이 1909년의 ‘백만인구령운동’이었다”고 했다.

이상규 교수
이상규 교수가 'EXPLO '74 와 민족 복음화운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최승연 기자

그는 “한국교회가 1907년 평양대부흥을 경험한 이후 1909년 백만인구령운동을 전개했다. 이는 1909년 3월부터 1911년 3월까지 한국 기독교계에서 100만 명 신자를 확보해 보자는 의도로 전국적으로 전개한 초교파적 전도 운동이었다. 이후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후 김치선 박사(1899-1968)가 주도한 3백만 부흥운동, 그리고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가 있었다”며 “전도집회가 열리고 나서 1년 뒤 한국 대학생선교회(CCC)가 주최한 엑스폴로 74는 CCC의 조직과 김준곤 목사의 민족복음화에 대한 이상이 가져온 결실이다. 이 대회는 오랜 기간동안의 기도와 준비를 거쳐 실행되었다. 민족복음화 지도자 요원 강습회를 비롯해 면단위 교회학교 교사강습회와 읍면단위 300개 시범교회에서 전도훈련을 실시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엑스폴로 74 대회는 1974년 8월 13일부터 18일까지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되었다. ‘예수 혁명’, ‘성령의 제3폭발’이라는 주제와 ‘민족의 가슴마다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성령의 개절이 오게 하자’는 구호 아래 개최되었다. 이 대회를 위해 주최 측은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천막촌을 설치했고, 대형 밥솥 20개를 설치해 한번에 10만 명이 식사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당시 경찰은 이 대회를 위해 광장에 임시 파출소와 임시 소방서, 미아보호소를 설치하고 여의도 부근 한강에 경비정 10척을 대기시켰다. 당시 참가한 인원은 약 665만 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이어 “대회 기간 중 총 323,419명이 합숙훈련을 받았고 매일 밤 50만에서 80만에 이르는 이들이 철야기도를 드렸다. 또 대회 기간 중 CCC의 4영리 전도책자로 423,000명에게 복음을 전하여 273,000명이 주님을 영접했다고 한다”며 “이 대회는 전적으로 김준곤 목사의 민족복음화에 대한 의지의 결실이었다. 그가 말한 ‘민족’은 인종적 종족주의가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한국인 전체를 기독교화하려는 의지, 곧 전국복음화 운동이었다. 엑스폴로 74는 민족복음화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한 집회였고 그것이 이 시대 한국교회에 주어진 사명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엑스폴로 74가 갖는 의의는 1) 민족복음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고 2) 한국 청년대학생 전도와 복음화에 기여했으며 3) 한국에서의 복음주의 운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4) 많은 복음주의적인 지도자를 양성 5) 건실한 사회이념 형성에 기여했다는 것”이라며 “김준곤 목사는 복음주의 신학에 근거하여 청년 대학생들을 복음화 하고 이를 기초로 민족복음화라는 거룩한 비전으로 일생을 살아간 한국교회의 영적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김준곤 목사에 의해 주도된 엑스폴로 74는 오직 한 가지 목표, 곧 민족복음화를 위한 대형 전도 집회였고, 결과적으로 민족복음화에 기여하여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하였고, 한국의 청년대학생 전도와 복음화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복음주의 신앙 운동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 이 대회를 통해 많은 복음주의적인 인도자를 양성했고 1979년 이후 건실한 사회이념 형성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CCC는 단순한 학생선교단체라는 범주를 뛰어넘어 한국교회 전도와 성장, 변화와 각성을 이끌어간 동력원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경험하는 네오막시즘, 포스트모더니즘, 도덕적 상대주의 등으로부터 한국교회를 지키고 건실한 사회 국민 도덕 의식을 견지하게 된 것은 김준곤 목사와 이 대회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박응규 교수(아신대학교)가 ‘EXPLO ’74와 한국 교회사적 의미’, 조귀삼 교수(한세대학교)가 ‘EXPLO ’74와 세계선교’라는 주제로 각각 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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