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장난꾸러기 아들 때문에 걱정이 많은 한 아버지가 있었다. 썰매를 타고 비탈길을 내려오는 놀이를 좋아하는 아들은 운동화 밑창이 금방 닳아버리곤 했다. 생활이 궁핍했던 아버지는 고장 난 세탁기를 중고로 구매하고 아들의 신발을 사주기로 결심했다. 중고세탁기를 구매하러 찾아간 집은 교외에 위치한 넓고 아름다운 집이었다.

“야, 이런 집에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남자는 부러워하면서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세탁기를 팔기로 한 부부가 문밖으로 나왔다. 세탁기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게 된 남자는 부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자기 아들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저희 집 말썽꾸러기 아들 녀석 때문에 항상 걱정이에요. 신발을 너무 험하게 신어서 다 헤어져버렸단 말예요.” 그러자 부잣집 부인의 안색이 변하더니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색으로 집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르고 서 있는 남자에게 곁에 있던 남편이 말했다.

“저희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태어난 이후로 한 번도 걸은 적이 없답니다. 만약 아이가 신발을 신고 한 켤레만 닳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에 집사람이 슬퍼서 저러는 거니 이해해주세요.”

빠듯한 형편에 신발 빨리 닳게 해서 새 신발 사게 하는 아들이 평소 불만이었을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돌아갔을지 생각해보라. 집에 돌아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얘야, 앞으로 썰매 마음껏 더 자주 타거라!”

‘비교의식’으로 인해 상처 입고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이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이는 별로 없다.

대부분이 자기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하고만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에 불평과 불만이 쏟아지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럴 때가 많은 사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위의 글은 그런 이들에게 큰 교훈과 깨우침을 준다.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 불평 외엔 나올 게 없다. 하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이들을 생각해보면 그저 감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마태복음에는 “천국은 마치 이와 같으니라...”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천국 비유’가 여러 개 등장한다. 모두가 ‘Half & half motif’를 가지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1 vs 1의 비유’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이나 두 대상이 등장해서 모두가 한결같이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재림 시에는 누가 진짜 천국 백성인지 가짜 백성인지가 판가름 난다는 내용의 비유들이다.

그런데 그중 마 25:1-13에 나오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어리석은 다섯 처녀’의 비유는 ‘5 vs 5의 비유’로 되어 있다. ‘1 vs 1’은 아니지만, 이 역시 ‘Half & half motif’에 속하는 비유다. 신부의 들러리가 두 사람이 아니라 더 많았기에 비유의 한계상 그렇게 설정하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천국 비유 중 정말 예외적인 하나가 있다. 그것은 마 25:14-30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이다. 이것은 ‘1 vs 1의 비유’가 아니라 ‘2 v 1의 비유’이다.

천국 비유 중 왜 여기만 ‘2 vs 1’의 비유일까? 내 생각에 그것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불평을 잠재우기 위해서 예수님이 예외적으로 등장시켰다고 본다. 한 달란트 받았다가 한 달란트 그대로 갖고 나와 예수님께 책망과 저주를 받은 종의 문제는 뭘까? 잘못된 비교의식 때문이다. 누구는 다섯과 둘 주고 자기는 달랑 하나만 주는 주인은 사람을 차별화하는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런 주인을 위해서 일부러 일하지 않고 게을러 버린 것이다.

‘주인에 대한 착각’이 ‘자기 사명에 대한 착각’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만일 그의 행동이 옳았다면 두 달란트 받은 종의 행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어째서 자기 재능대로 최선을 다해 배나 남기게 된 것일까? 그 역시 ‘누구는 다섯 주고 나는 왜 둘만 주는가?’라는 불만을 가질 수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재능에 맞는 최고의 것을 주신 주인을 위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런 점에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할 말이 없어야 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남에게는 있으나 내게는 없거나 부족한 것들만 쳐다보면 불평과 불만 밖엔 나올 게 없다. 하지만 남에게는 없으나 내게 있거나 풍족한 것들을 카운트해보면 그저 감사만 쏟아진다.

우리 주변에 나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이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나와 내 가족들만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나보다 더 연약하고 더 가난하고 더 불편한 이들을 살피면서 항상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들을 돌아보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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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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