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기독일보
민종기 목사 ©미주 기독일보
"저 자신도 문제로 삼는다. 아일랜드가 아니라 브릿지가 되어야 하는데 교회가 섬이 되었다.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건, 별로 상관 안하고 참여도 안 하고 세상과 대결도 못하고 세상의 용어를 잊어버려서, 세상과 교류를 못하게 되었다."

지난 8월 24일(현지 시간) 미주 은혜한인교회에서 개최된 <3050 차세대 목회자 세미나>의 세번째 강의 <균형잡힌 목회자의 삶>의 강사로 선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는 오늘 교회가 세상과의 연결점을 잃어버리고 점차 고립되어 가는 현실에, "인문학적 백그라운드가 없으면 우리끼리 천국이 된다"고 우려를 표하며 기독교가 융성하던 시기, 기독교를 이끌던 이들은 교회 안의 용어와 개념에만 갇히지 않고 그 당시의 사상과 개념을 섭렵해서 그들의 언어로 그들을 설득하고 기독교를 변증해낼 수 있었다며, 인문학적 통찰력을 지닌 목회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 세미나는 지난 7월 31일(월)~8월 23일(수) 새벽 5시 30분에 '부흥의 세대여 다시 일어나라'는 주제로 갈보리선교교회(담임 심상은 목사)에서 열린 제2차 차세대목회자 21인 초청 OC 영적 대각성 새벽기도회의 연장선상에서 개최되었으며, 노창수 목사(남가주사랑의교회 담임), 이종용 목사(코너스톤교회 담임),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한기홍 목사(은혜한인교회 담임)가 강사로 나섰다.

목회 위해 바른 습관 세워야
걷기, 꾸준한 성경 읽기와 전공 분야 독서

세번째 강의에서 민종기 목사는 먼저, 균형잡힌 목회를 위해 운동과 삶의 습관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경을 적어도 일년일독해오고 있으며, 목회초반부터 독서클럽을 만들어 자신의 전공분야와 관련된 내용들을 계속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큰 그림을 갖고 목회를 임하면, 실수 줄일 수 있어

그는 정약용의 기독교적 배경을 살펴본 후, "목민심서를 읽은 후, 이런 큰 그림을 갖고 목회를 한다면 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목민심서의 각 장인 부임(赴任) , 율기 (律己 자기 다스리기), 이전(吏典: 인사관리) 및 호전(戶典, 재정관리), 예전(禮典, 제사, 접대, 학업), 병전(兵典, 국방책), 형전(刑典, 소송과 형옥), 공전(工典, 산림행정, 수리사업, 관아수리, 성곽수리, 도로관리)에 목회를 위해 고려할 사항들을 대입해 설명했다.

그는 부임과 율기(律己) 를 설명하며, "스스로 자기를 규율할 수 있어야 남을 도울 수 있다"며, "22년동안 새벽예배를 했기 때문에 4시 반이면 저절로 일어나진다. 10여년 동안 일기를 쓰고 그날 읽은 구절을 보고 묵상한다. 한번 세워진 습관을 무너뜨리기 쉽지 않다. 인공위성이 궤도에 오르면 다시 추친하지 않도록 궤도를 돌듯이, 습관이 세워지면 습관대로 살아가게 된다"며 목회자로서 무너지지 않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사와 행정,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이어서《목민심서》의 제5편인 '이전(吏典: 지방 관아의 인사관리)'편에서, 목회자의 인사관리와 행정에 대해 설명하며, "목회자가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 목회의 권위가 무너진다"며, 행정과 인사가 용이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제 7편인 예전(禮典)과 관련해, '성도의 양육'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부교역자들과 6개월간 토론을 통해 목회 비전에 대해 논의했으며, 교인 구성을 고려해 '교육 목회'라는 비전을 정한 후, 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천하는데 14년이 걸렸다며, 장기적인 시각으로 비전과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 8편인 병전(兵典) 편에서, "성도들이 설교 듣는 시간이 영적 전쟁 시간이다. 성도들이 세상적 세계관을 갖고 들어온다. 그들이 성경 말씀으로 그 가운데 잘못된 것을 발견하고 우상이 뭔가를 발견하고, 결단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영적 전쟁을 위해 기도와 축사외에, 상담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부정을 저지른 교인 치리 문제

제 9편, 형전(刑典)에 대해, "내부의 부패를 척결하는 것"이라며, "헌법에 의거하여, 근신, 면직, 제적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며, 부정을 저지른 교인을 징계하고 면직한 사례를 나누었다.

"교인이 바람이 났다. 그럼 가만 둬야 할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징계를 했다. 모든 직분을 뺐고, 면직시키고 제명했다. 한 동안 교회를 나오다가 떠났다. 나중에 이 분을 회개하고 돌아오셔서 회복시켜서 다시 교인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투표해서 집사 직분을 줬다. 징계를 안하면 교회의 성결성을 유지할 수 없다."

제 10편인 공전(工典)에 대해, '교회의 특별사업, 건물관리, 건물 보수 유지, 건축, 선교관, 선교지 지원'에 관한 내용이 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민 목사는 "목회자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라며,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요 18:36~37), 어거스틴의 두왕국론, 루터의 두왕국론과 칼빈의 두 왕국론에 대해 설명하며, 교회가 세상과 사회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과 다른 지평에서 사역을 하셨다. 로마의 지평, 열심당의 지평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무력으로 일어나고 없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폭력으로 억압해서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다. 루터는 하나님이 두 개의 칼로 통치하시며, 이 두 개의 칼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칼빈은 이 둘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칼빈주의자들은 지상 최초의 혁명가들이었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청교도, 국민에 의해 통치되는 공화정의 기반 만들어

그는 "칼빈주의가 영국 성공회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성공회에 속해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이 청교도가 되었다"며, '커먼웰스(Commonwealth)'라는 말이 청교도적인 용어라며, 그들이 최초로 국민에 의해 통치되는 자유로운 나라를 일군 주역이라고 말했다.

"리차드 백스터의 커먼웰스(Commonwealth)라는 책이 있다. '커먼웰스'는 공동의 재산이라는 뜻이다. 공화국을 창시한 사람들이 커먼웰스라는 말을 썼다. 이 나라는 다 함께 참여해서 세우는 것이다. 당시 민주정치의 기반을 놓은 사람이 청교도들이다. 그들이 미국에 와서 자유로운 나라, 국민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를 세웠다."

그는 "목회자는 세상의 변혁자"라며, 로잔 언약(1974년)의 의의는 '기독교가 사회적 책임을 확인'하게 된 것에 있다고 보았다.

민종기 목사는 아브라함 카이퍼를 인용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져야 하는데, 각 영역-국가적 영역, 상업적 영역, 교회의 영역, 예술의 영역, 학교의 영역-이 분리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전체주의는, 정치의 영역이 다른 영역을 지배하고 있다. 중세의 경우는 교회의 영역이 다른 곳을 지배하고 있었다"며 "각 영역이 평등하게 상호작용"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기독교 사상과 대결하기 위해, 성경에 입각한 사상을 발전시겨야 한다며, 프린스턴 대학의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 유대인)와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들을 꼽았다.

교회, 섬 아닌 브릿지 되어야

이어서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점차 고립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드러내며, 인문학적 통찰을 지닌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저 자신도 문제로 삼는다. 아일랜드가 아니라 브릿지가 되어야 하는데 교회가 섬이 되었다.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건, 별로 상관 안하고 참여도 안 하고 세상과 대결도 못하고 세상의 용어를 잊어버려서, 세상과 교류를 못하게 되었다."

"기독교가 융성하던 시기의 사람들은 교양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다. 기독교의 가치를 시대의 용어로 풀어줄 수 있던 사람들이다. 어거스틴의 신국론을 보면, 그는 당시의 상식을 섭렵했던 사람이다. 그들의 상식을 갖고 로마 사람들을 설득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를 통해서 신학을 재정리했다. 이런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 당시 기독교 세계를 이끌 수 있었다. 칼빈은 법학도서의 체계를 갖고 기독교강요를 썼다. 기독교적인 작품, 영화가 나오면 너무 유치하다. 불교 영화보다도 심오함이 떨어진다. 저것을 보고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까. 인문학적 백그라운드가 없으면 우리끼리 천국이 된다. 설교도 마찬가지. 설교했는데 교회 내부용이 있고, 세상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설교가 있다. 인문학적 통찰이 있는가에 달려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정치 철학을 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가, 중세 사상이 성경과 관련되어 있는데 학교에서 그와 관련된 수업을 찾을 수 없어 풀러 신학교에서 전 총장 리차드 마우(Richard Mouw)의 사회정의, 기독교 철학 등 수업을 들으며,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학자의 길을 가려 했지만, 결국 10년간 유학생활을 하며 교회에 진 빚이 있어서 목회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간증했다.

"학자의 길을 가려 했지만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세번 꿈으로 목회자의 길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 항복했다. 진짜 목회 힘들 때, 떠나고 싶을 때, 그 꿈이 나를 붙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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