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묻지마 칼부림 사건 현장 인근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역 묻지마 칼부림 사건 현장 인근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추모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최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라 벌어졌다. 지난달 21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서 조 모(33)씨가 흉기 난동을 일으킨 데 이어 약 2주 후인 지난 3일 경기도 분당 서현역에서 다시 최 모(22)씨가 칼을 휘둘렀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범행이 이뤄진 두 사건에서 사상자 다수가 발생했다.

성남 서현역과 서울 신림역에서 흉기 난동을 일으킨 가해자 최 모씨와 조 모씨는 경찰에 붙잡힌 뒤 각각 “특정 집단이 나를 괴롭히고 죽이려 한다”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알려졌다.

최 씨는 2020년 ‘분열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은 뒤에도 약물치료 등을 거부했다고 한다.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최 씨는 특목고 진학 실패 이후 진학한 일반고에서 자퇴를 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온 ‘은둔형 외톨이’라고 알려졌다. 정신병력 유무가 알려지지 않은 조 씨는 소년 전과 14범에다 2010년 폭행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최 씨와 조 씨의 범죄 행각을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 그 원인을 돌리는 데서 한발 나아가 사건의 배경에 자리한 한국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이를 완충할 공동체성의 붕괴를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성길 연세의대 정신의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사회에서 경쟁이 가속화되고 비교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팽배와 더불어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확산으로, 구성원들 사이에선 ‘나는 피해자’라는 의식이 싹터 분노와 앙심을 품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것이 여러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는 ‘분열성 성격장애’는 주변인들이 나를 해한다는 망상에서 비롯돼 분노가 축적되면서, 결국 개인적 은둔이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반격으로 표출된다”고 했다.

송재룡 경희대 특임교수(사회학)는 “전 세계적으로 한 개인에게 책임과 의무, 삶의 의미를 제공하는 공동체성의 붕괴 및 파편화된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며 “아울러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온라인 공간에서 유통되는 소식과 글들은 MZ세대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증폭시켜 정체성 혼란을 더욱 가중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스마트폰이나 온라인 게임, 유튜브 등에는 반사회적 폭력성으로 점철된 이미지와 내용이 많이 유통되고, 이로 인해 실제 현실과 가상세계 간 경계를 허물도록 그 경향성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한 개인에게 가상세계에서 경험하는 폭력을 현실 세계에서도 적용 가능한 것처럼 생각을 불어넣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사회에선 예의범절 등 유교주의적 공동체성이 지배적이었다가, 온라인 공간이 확장되면서 지난 20년 동안 공동체성이 급속도로 붕괴한 측면이 있다”며 “한국사회가 근대화 이후 이런 문화·정서적 빈틈을 심리상담 등 여러 제도적 시스템으로 대응해야 할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라고 했다.

그는 “탈종교화 시대, 다원주의로 인해 상대주의가 팽배하면서, 절대적 진리를 외치고 심지어 삶의 유형과 형식까지도 기준점을 제시했던 한국 기독교는 이제 선한 경쟁력을 얘기해야 한다”며 “즉 다양한 사람들의 여러 삶의 유형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되, 그 전제 위에서 절대적 진리를 좇을 때 오는 행복에 대해 어떻게 권장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한국교회가 지역사회와 MZ세대를 중심으로 소그룹모임 등 공동체적 치유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역할론도 제기한다. 이경애 박사(예은심리상담교육원)는 “교회만큼은 대한민국의 계급 사회론과 성공 신화를 좇을 것이 아니라 ‘너는 존재 자체로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교회는 청년들에게 영혼 구원뿐만 아니라 영·혼·육의 전인적 구원을 선포해야 한다”며 “요한복음 3-5장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 수가성 여인, 앉은뱅이 등 각자가 처한 삶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맞춤형 케어를 하셨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교회가 청년들이 심리적·경제적 어려움 등 삶의 문제들을 얘기하고 공감해줄 수 있는 지역사회의 치유 공동체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청년들의 고민을 섣불리 가치판단 하려는 태도를 내려놓으며, 먼저 듣고 수용하는 소그룹 공동체 구축이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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