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교수
한국성서대 김승호 교수 ©기독일보DB

2-2. 로잔운동의 현재와 나아갈 방향

앞에서 살펴본 것 같이 로잔의 신학과 선교사상은 분명 1961년 휘튼대회, 1966년 베를린대회, 그리고 1970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1차 대회를 개최할 때 공동의장이었던 빌리 그래함은 로잔대회가 열리는 ‘하나의 분명한 주제’(an Agenda for the Lausanne Congress)를 밝혔는데 에큐메니컬 진영의 선교와 차별화된 ‘복음전도에 세계교회가 연합하고 헌신하도록 함’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로잔을 위한 나의 기도는 하나님의 선교에 다시 초점을 맞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가길 원한다”라고 했다(my prayer is that they will re-focus on the mission of God, to reach all peoples with the good news of Jesus).

미국 콜럼비아국제대학(Columbia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Intercultural Studies를 가르치는 마이크 바넷(Mike Barnett)은 ‘로잔의 슬로건은 온 교회(Whole Church)가 온전한 복음(Whole World)을 온 세상(Whole World)에 전하자’ 이지만 로잔의 본질인 “세상의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예수를 전하는 일” 을 잃는다면 로잔은 길을 잃는 것이다”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현재 로잔은 어떠한가? 3차 대회 이후 흩어진 복음주의자들 중에는 ‘(에큐메니컬)선교적 교회론’(Ecumenical Missional Church)을 외치며 로잔의 본질을 흐리게하고 있다. 3치 대회에서 잔 파이퍼(John Piper)는 이러한 추세를 사전 인지하고 주제강연 시간 그는 인간의 모든 고통, 특별히 영원한 고통(Eternal Suffering)에 대해 우회적으로 강조한 바 있다.

이제부터 연구자는 4차 대회를 앞두고 앞에서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로잔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로잔운동이 왜 태동했는 다시한번 기억하는 대회가 되길 원한다. 1960년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던 에큐메니컬선교에 대한 대응으로 로잔운동은 태동되었다. 로잔운동이 태동되기 전 복음주의 진영은 이미 1961년 휘튼대회, 1966년 베를린대회, 1970년 프랑크푸르트선언문을 통해 교회(그리스도인)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다시 오실 때까지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심판(창 2:17, 롬 5:12, 6:23, 히 9:27, 살후 1:7-9, 계 20:11-15)을 받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을 얻게 하는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라는 대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선교의 회복을 확인한 바 있다(마 28:19-20, 막 16:12-20). 역사적으로 로잔운동은 휘튼대회, 베를린대회, 프랑크푸르트선언문의 결과로 태동된 복음주의자들의 선교운동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1960년대 에큐메니컬선교신학과 선교는 1948년 WCC가 출범할 때 정했던 성경에 기초한 신학 그리고 선교를 이탈하는 오류를 범했다. 1938년 네덜란드 유트레히트(Utrecht)에서 작성된 WCC 헌장(WCC Basis)을 보면 현재의 에큐메니컬선교운동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된다.

“세계교회협의회(WCC)란 성경을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고백하는 교회들의 친교(Fellowship)이다. 그러므로 세계교회협의회는 한 분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한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헌장에서 보듯 출범할 당시 WCC의 신학은 성경에 기초하며, 복음주의적 성격을 명확하게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에메니컬선교는 복음전도의 비전과 열정을 잃어버린 불행한 예가 되고 있는데 로잔에 참여하는 모든 이해당사자도 로잔이 역사적. 신학적. 선교적으로 왜, 어떻게 로잔운동이 시작되었는지 기억함으로 WCC의 변질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할 것이다.

둘째, ‘복음전도의 우선순위’을 다시 분명하게 천명하길 원한다. 사실 교회(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은 로잔운동시작부터 논쟁이 이었고 현재도 로잔 내부에서 논쟁이 되는 이슈이다. 1차 로잔에서 채택한 15개 항의 로잔언약 가운데 5항은 복음주의교회가 간과해왔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런데 5항의 문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로잔이 사회적 책임에 대해 언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책임과 복음전도 사이의 분명한 구분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게된다.38)특히 6항에서 로잔은 ‘전도의 최우선성’을 천명하면서 복음전도의 우선순위를 절대로 양보하지 않고 있다. 즉 둘 다 중요하지만, 여전히 복음전도가 더 우선적인 선교의 과제라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교회가 희생적으로 해야 할 일 중에서 전도가 최우선이다. 세계 복음화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할 것을 요구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목적의 바로 중심에 서 있으며,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하나님이 지정하신 수단이다.”(로잔언약 6항)

트레빈 왁스(Trevin Wax)39)는 잔 스토트의 자서전 Godly Amibiton을 인용해 로잔언약에 담긴 ‘사회적책임’ 문구를 두고 빌리 그래함과 잔 스토트사이에 긴장과 불편한 관계가 있었음을 아래와 같이 증언하고 있다.

“대회의 핵심목적은 복음주의자들로 지상명령을 완수토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복음이 세상 끝까지 전파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대회의 주제, “온 세상으로 그분의 음성을 듣게 하라”(Let the Earth Hear His Voice)가 로잔대회의 목적을 잘 담고 있다. 로잔대회를 준비하면서 언약초안위원회(the drafting committee) 의장이었던 스토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복음전도는 물론 사회 및 정치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스토트의 이런 생각은 ‘복음전도’에 방점이 있는 마태복음 28장의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이 아닌 요한복음 20:21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는 구절에 초점을 두어 예수님의 선교는 영혼뿐 아니라 육체까지 돌보는 것이었던 것처럼 교회의 선교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는 하나님께서 예수께 하신 것처럼 예수께서 우리는 세상 속으로 보내신다는 것은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섬기기 위해서임을 주장했다. 즉 선교를 예수의 성육신적 삶의 모델(빌 2:7)이 우리를 통해 세상 가운데 재현되는 과정으로 보았다. 우리가 대위임령과 대계명의 이중적 부르심에 동등하게 반응하는 것이 선교적 부르심으로 보았다. 그 결과 로잔언약은 스토트의 생각이 반영되어 ‘전도와 사회적 책임은 동전의 양면’ 임’을 담았다. 하지만 1차 로잔대회 이후 스토트는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로잔언약이 표방한 선교의 양면 즉,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았다. 1975년 1월 후속대회로 모인 멕시코대회 첫날 스토트가 참석한 자리에서 빌리 그래함은 ‘우리는 복음전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주제강연을 하였는데 스토트는 그래함의 강연을 생각하며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스토트는 로잔위원회 앞에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함께 가야한다는 로잔언약이 앞으로 로잔운동에 반영되지 않으면 자신은 위원직을 사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스토트와 그래함은 1950년대 그래함이 영국에서 전도집회를 하던 때부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사이였지만 스토트는 그래함에게 도전했던 것이다. 스토트의 충격적인 말에 위원들 모두가 놀랐다. 15개 항의 된 로잔언약에서 ‘사회적 책임’을 언급한 분량이 적었고, 그리고 스토트를 잃으면 로잔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했다. 위원회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스토트와 ‘전도’를 강조한 피터 와그너(Peter Wagner)가 타협(compromise)하여 “교회의 총제적 성경적 선교”(the total biblical mission of the church)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일단 봉합했다. 그래함 역시 오랜 친구 스토트를 잃지 않기 위해 그해 4월 스토트에게 존경과 사랑이 담긴 편지를 보냄으로 두 사람의 갈등은 봉합되었다. 로잔언약에서 사회적 책임과 관련하여 단 한 차례 언급되었지만, 마닐라 선언문과 캐이프타운서약에서 사회적 책임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연구자가 보기엔 사실 전도와 사회적 책임 이슈에 대한 로잔 안에서의 갈등은 현재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지난 49년간 로잔의 주요한 문서 로잔언약, 마닐라 선언문, 케이프타운 서약은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 교회의 사명임을 천명했고, 총체적 선교를 실행하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에게 총체적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길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타락한 인간이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사역이다. 온전한 사람이란 영적, 정신적, 육적, 사회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선교를 뜻한다(대하 7:14 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연구자는 앞으로 로잔이 ‘복음주의적 총체적 선교(Evangelical Holistic Missions)’를 실천하되 이 총체적 선교 때문에 ‘복음전도의 우선순위를 포기 혹은 약화시키거나, 로잔운동이 인간의 다양할 필요들을 채우려다가 WCC가 범한 인본주의적 선교로 나갔던 실수의 길을 밟지 않기를 소망한다.

배춘섭은 “복음전도를 우선시하는 ‘우선주의’(Prioritism)가 개혁주의(복음주의)신학에 더 적합하다. 왜냐하면 개혁주의(복음주의)선교는 세상을 변혁시켜야 할 긍정적 존재로 이해하기보다, 궁극적으로 종말론적 관점에서 하나님이 심판하실 멸망의 대상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우선주의’ 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현재도 로잔 내부에서 로잔이 사회적 책임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자들도 있고, 한편으로는 로잔이 복음전도보다 사회적 책임으로 너무 많이 나갔다고 불만을 토론하는 자들이 있다. 연구자가 보기엔 사회적 책임 이슈는 앞으로 계속 로잔 안에서 논쟁적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로잔은 에큐메니컬운동을 대응하기 위해 태동된 하나의 ‘운동’(movement)이다. WCC처럼 조직체로서 관리, 통제, 그리고 감독하는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 이라는 것이 로잔운동의 특징이다. 이 특징은 로잔이 지니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1차 대회가 끝난 후 로잔은 관리. 감독하는 조직적인 기관(Organizational Structure)이 아닌 세계선교를 위해 촉매(catalyst) 기능을 하는 로잔위원회(LCWE)를 두어 운동을 지속하기로 하였다.

연구자가 우려하는 점은 신학적 성향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로잔에 참여한 다양한 집단들이 자신들의 의제를 주장하고 관철하려 할 때 운동의 본질은 흐려지고 대회가 진행될 때마다 채택된 겹겹이 쌓인 의제들로 인해 세계복음화에 초점을 두고 태동한 운동이 산만해지고 에너지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자유로운 참여는 결국 ‘절충과 타협’(Compromise and Negotiation)이라는 방식을 통해 로잔의 분열은 막아주겠지만 운동이 처음 시작된 세계복음화라는 목적을 지키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1, 2, 3차 대회를 거치면서 로잔은 처음 시작될 때 사명을 붙들기보단 대회 때마다 참여자들이 자신들의 의제를 강하게 밀어붙임으로 로잔도 이제 에큐메니컬처럼 인간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의 이슈들을 다루는 만물상회(萬物相會, All Things Market)가 되어버렸다. 크게 낙관은 하지 않겠지만 4차 대회가 1974년 로잔이 왜 태동하였는지 돌아보며, 운동 본래의 목적을 회복하여 온 교회(Whole Church)로 온 세상(Whole World)을 복음화(Evangelization)하는 순수복음운동으로 재헌신하길 기대한다.

III. 나가는 말

1974년 로잔운동이 시작되면서 로잔은 세계선교를 위해 긍정적인 많은 성취를 만들어냈다. 3차 대회를 거치면서 로잔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Finality of Jesus Christ)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시대를 초월한 유일한 진리임을 천명했다(로잔언약 3항, 마닐라 선언문 2부 3항, 케이프타운 서약 1부 4항). 복음전도의 우선순위를 강조한 것도 로잔의 공헌이며(로잔언약 7항, 마닐라 선언문 2부 4항, 케이프타운 서약 2부 8항), (여전히 로잔 내부에서 논쟁적 이슈이지만) 긴 세월 동안 복음주의 진영이 소홀히 여긴 교회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강조를 한 점도 긍정적인 기여이다(로잔언약 5항, 마닐라선언문. 8, 9, 18, 21항, 케이프타운 서약 1부 10항),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에 대한 전도의 책임(로잔언약 9항, 마닐라 선언문 2부 11항, 케이프타운 서약 2부 4항), 복음에 대한 타협 없는 가운데 타 종교인들에 대한 사랑, 만남, 그리고 대화(마닐라 선언문 2부 3항, 케이프타운 서약 2부 C 3장), 전도에서 성령의 사역(마닐라 선언문 1부 10-11항, 2부 5항, 케이프타운 서약 1부 5장),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평신도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로잔언약 1항, 마닐라 선언문 2부 6항), 선교의 동반자로서 여성의 중요성과 역할(마닐라 선언문 2부 6항, 케이프타운 서약 2부 3장), 다이스포라 선교(케이프타운 서약 2부 5장), 그리고 3차 대회에서는 다양한 글로벌 이슈들(총 33개), 그리고 신학교육의 중요성 등을 로잔의 선교과제로 삼았다. 3차에 걸친 대회의 결과물인 로잔언약, 마닐라 선언문, 그리고 케이프타운 서약은 현대 복음주의 신학과 선교의 핵심을 잘 정리 표현해주었으며 복음주의자들로 세계복음화를 위해 자신들의 헌신을 결집할 수 있는 하나의 ‘깃발’(banner)이 되어주었다.

변하는 세상을 향해 변하지 않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지난 49년 동안 복음주의 진영의 선교운동 로잔의 공헌과 기여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4차 대회를 앞두고 연구자는 로잔이 태동할 때 본래 목적을 되찾아 복음의 선포를 진전시켜 세계복음화를 성취하는 참된 순수 복음운동으로 회복되길 간절히 기대한다. 이미 보아온 것 같이 대회가 거듭될 때마다 로잔 내부의 다양한 이해 집단들의 자기주장이 계속될 때 로잔은 너무 많은 선교과제로 인해 ‘복음전도’ 라는 우선순위와 핵심사명을 상실하게 되어 1960년대 WCC의 변질된 모습을 재현하는 불행을 맞게 될 것이다. 로잔이 꿈꾸는 비전은 복음선포를 통한 세계복음화이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 14-15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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