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36-1호 이원영 목사 기념 예배당(안동광성교회/구 안동서부교회) 사적 지정예식
 ©황지현 기자

이원영 목사 기념예배당(안동광성교회/구 안동서부교회) 예장 통합(총회장 이순창 목사) 한국기독교사적 제36-1호 지정예식이 지난 25일 안동광성교회에서 진행되었다.

선비 목사로 알려진 봉경 이원영 목사는 퇴계 이황의 14세손으로 독립운동가이며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반대하는 등 교회 회복에 힘썼다.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안동서부교회 초대 당회장으로 시무했다. 2019년에 이원영 목사 생가가 교단총회사적지 제36호로 지정된 데 이어 기념예배당이 사적 제 36-1호로 지정되게 되었다.

이날 예식은 1부 감사예배, 2부 지정식, 3부 축하와 인사, 4부 제막식 순으로 진행됐다.

경안노회 주관으로 진행된 1부 감사예배에서는 강동석 목사(경안노회 역사위원회 서기)의 인도로 권오운 장로(경안노회 부노회장)의 대표기도, 임승우 장로(경안노회 역사위원회 회계)의 성경봉독, 샤론중창단의 특별찬양 후 경안노회 역사위원장 박춘식 목사가 ‘택하신 거룩한 전’(대하 7:15-16)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박춘식 목사(경안노회 역사위원장)가 설교하고 있다.
박춘식 목사(경안노회 역사위원장)가 설교하고 있다. ©황지현 기자

박춘식 목사는 “본문은 솔로몬 왕이 7년 6개월에 걸쳐 성전을 완공하고 하나님께 봉헌식을 드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들려주신 말씀이다. 이 기념예배당도 해방 후부터 시작한 건축 기간이 7년이다. 이 교회를 건축할 때를 생각해 보면 이원영 목사님, 교인들 모두의 눈물과 기도와 땀과 헌신으로 이 예배당을 지었다고 생각한다. 1952년 6.25 전쟁 중에 예배당을 짓고 준공했다는 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고 기적이다”라고 했다.

이어 “가족이 전쟁 중에 전사한 분, 집이 파괴된 분 등 먹고 살기 힘든 분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성도들은 열과 성을 다해 헌신해서 192평이나 되는 석조 예배당을 지은 훌륭한 분들이었다. 오늘 지정식을 하는 기념예배당은 해방 후 기초를 놓고 6.25 전쟁 중인 1952년에 기초 공사를 하고 휴전되기 전인 1954년 3월 12일, 7년 만에 완공하였으니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박 목사는 “본문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성전에 내 눈과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다고 하신 말씀에는 네 가지의 뜻이 들어 있다. 첫째, 성전이 하나님의 마음에 만족하셨다는 것이다. 이제 기념 예배당이 총회사적으로 지정된다. 여기 모이는 성도 모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열왕기상에 보면 성전을 지을 때 방망이 소리, 도끼 소리,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지었다고 한다. 이 교회가 사람에 의한 소리가 나지 않고 오직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두 번째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뜻이다. 역대하 6장 2절에 솔로몬은 이 성전을 영원히 주께서 거하실 처소로 지었다고 했다. 이원영 목사님이 이 교회를 건축할 때 바로 솔로몬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오늘, 이 교회는 하나님이 택한 교회, 거룩한 전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대로 거룩하게 하신 대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져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지키신다는 뜻이다. 마태복음 16장 18절에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말씀하셨다. 이 교회가 음부의 권세를 성도들이 다 물리치고 세상에 본이 되고 영광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곳은 건축하신 분들의 애정이 깃든 곳이다. 이원영 목사님이 살아계실 때 얼마나 아끼고 귀히 여기고 목회하셨던 역사적인 예배당이었겠는가. 신사참배도 거부했던 어른의 신앙을 본받아서 앞으로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이 예배당을 잘 보존하고, 건축하신 이원영 목사님의 뜻대로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주님을 위해 잘 사용하고 영광 돌리는 제단이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부탁드리며 축원한다”고 했다

1부 감사예배는 안동서부교회 이정우 목사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안동서부교회 이정우 목사가 축도하고 있다
안동서부교회 이정우 목사가 축도하고 있다 ©황지현 기자
총회역사위원회 서기 권영욱 목사가 경고보고하고 있다.
총회역사위원회 서기 권영욱 목사가 경고보고하고 있다. ©황지현 기자

2부 지정식은 총회역사위원회 주관으로 진행되었으며 경과보고, 사적소개, 지정공포, 증서전달, 권면이 이어졌다.

총회역사위원회 전문위원 임희국 목사가 사적소개를 하고 있다.
총회역사위원회 전문위원 임희국 목사가 사적소개를 하고 있다. ©황지현 기자

전문위원 임희국 목사는 ‘이원영 목사 기념예배당(안동광성교회/구 안동서부교회)’의 명칭을 하나하나 풀어서 소개했다. 임 목사는 “이원영 목사님은 일평생 선비목사로 곳곳하게 사셨다. 독립운동가로 일제의 황민화정책을 모두 거부하고 고초 당한 산 순교자로 존경받으며, 안동지역 제1세대 목회자로서 한평생 안동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또한 “이원영 목사님의 친필 유품 수십 점이 안동국학진흥원에 기탁되어 있다. 국학 진흥원 학자가 깜짝 놀랄 말을 했다. 안동에서 국학은 대다수 성리학, 유교 문집 연구에 집중했는데 이제부터는 기독교 자료도 국학의 범주에 들어가게 되었다. 굉장한 이야기”라며 지역 교회가 보존 중인 당회록 등의 자료를 기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임 목사는 “오늘 특별히 이원영 목사님의 목회 발자취가 남아 있는 광성교회가 총회 사적지로 지정된 것은 한국교회사에서도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본다. 서부교회가 복구된 1947년 6월 29일부터 교회건축을 기도회와 동시에 건축을 위한 헌금이 시작되었다. 하루 세 끼를 얻어먹기 힘든 상황에서 교회 건축이 시작되었다. 6.25 전쟁으로 건축이 중단되었다가 전쟁이 잠잠해진 1951년에 다시 정지 공사가 시작되었고 1952년 정초식을 가지고 1954년 3월 12일 준공했다. 2층 교회를 약 7년 이상 기도와 땀으로 완공했다. 요즘 건축가들의 견해를 빌리면 서부교회는 있는 그대로 자연석을 다듬은 아주 품격 있는 석조건물로서 가치가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이 예배당은 한국장로교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예배당 건축이 시작되던 1947년 6월 25일 이원영 목사님은 베드로전서 2장 4~5절을 본문으로 ‘교회 재건’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셨다. ‘교회 건축’이 아니라 ‘교회 재건’이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저의 해석은 일제강점기에 교회에 강요된 신사참배를 청산하는 교회로서 재건이고, 신사참배로 무너진 교회를 재건해야 한다는 뜻으로 교회 재건이라고 붙였다고 풀이된다. 그래서 오늘 총회 사적지 36-1호로 지정되는 기념예배당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청산하는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다”며 베드로전서 2장 4-5절 설교 본문을 봉독하며 사적 소개를 마쳤다.

총회역사위원장 김일재 목사가 광성교회 임보순 목사에게 증서전달을 하고 있다.
총회역사위원장 김일재 목사가 광성교회 임보순 목사에게 증서전달을 하고 있다. ©황지현 기자

이어 총회역사위원장 김일재 목사가 총회장을 대리해 사적 지정을 공포한 후 총회를 대표해 안동광성교회 담임 임보순 목사에게 사적지정서를 전달했다.

이후 김일재 목사는 이원영 목사님의 선비정신과 예언자적인 자세를 권면했다. 그는 ”첫 번째, 이원영 목사님의 항일 정신, 선비정신, 예할 건 예하고 아니오 할 건 아니오 했던 정신으로 목회하고 교회도 지키고 시대를 보는 통찰력을 가지길 바란다. 두 번째는 신앙의 선조들이 하셨던 자랑스러운 것은 갈고 닦아서 더 빛내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원영 목사님과 관계된 자료를 잘 모아서 기념관을 지어 전시하면 살아있는 역사가 되고 자료가 될 것이다. 목사님의 모든 발자취를 잘 갈고 닦아서 후손에게 돌려지길 부탁드린다“고 했다.

3부 축하와 인사는 임보순 목사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한국기독교사적협의회 회원교회 기념동판 및 인증서 전달 후 이원영 목사의 후손인 이필근 장로의 축사, 장세문 목사(경안노회 공로목사)의 격려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원영 목사의 후손인 안동서부교회 이필근 장로가 축사하고 있다.
이원영 목사의 후손인 안동서부교회 이필근 장로가 축사하고 있다. ©황지현 기자

이필근 장로는 “이원영 목사님의 발자취를 생각하니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게 너무 죄송스럽고 유족들 입장에서 이원영 목사님을 넘어서야 하는 부담을 느낀다. 목사님은 유머가 많았고 겸손하셨으며, 자신에 대해선 엄격하고 남에 대해선 관대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셨다. 또 형제 간애 남다른 우애가 있었다. 제가 어릴 때 교회에 오면 앞마당에 돌더미가 있었는데, 교회의 기초를 쌓으려고 모아 놓은 돌더미였다. 이 교회의 기초는 그렇게 교인들 전체가 새벽마다 기도하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지은 것이다. 아무쪼록 이 행사를 통해서 이원영 목사님의 신앙생활, 역사적인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열심히 신앙생활하겠다”고 했다.

장세문 목사(경안노회 공로목사)가 격려사를 전하고 있다.
장세문 목사(경안노회 공로목사)가 격려사를 전하고 있다. ©황지현 기자

장세문 목사는 “이원영 목사님에 관해 들은 이야기를 전하면 오직 성경 중심의 믿음의 사람이었고 오직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낮춤말을 하지 않으셨고, 심방을 갈 때는 교인들의 어려운 생활에 조금도 부담되지 않도록 애쓰셨다고 한다. 이원영 목사님은 목회자는 교인들을 집안에 가장 무서운 어른인 할배같이 알아야 한다는 말씀과 목회자는 매사를 지릅(삼대) 위에 닭 걷듯이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이원영 목사님의 고매한 신앙 인격과 영성을 목사님이 드린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익혀서 복받기를 바란다”며 이원영 목사 ‘기념비’에 적힌 글을 읽으며 격려사를 마쳤다.

사적 제36-1호 이원영 목사 기념 예배당 총회지정 한국기독교사적 지정예식
제막식을 진행하고 있다. ©황지현 기자

이날 모든 행사는 광성교회 김정일 장로가 이원영 목사님이 성도들과 함께 건축한 예배당을 잘 관리하고 후대에 잘 전달하고,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신 목사님의 신앙관을 본받고 좋은 교회로 성장시켜가겠다는 다짐과 함께 광고를 전한 뒤 4부 제막식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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