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성길 교수
민성길 명예교수

원래 60년대의 성혁명은 프리섹스 (성해방) 운동이었다. 60년대 젊은이들의 반문화운동(유럽의 68학생운동, 미국의 히피운동 및 반전운동 등)과 여성운동과 함께 성해방운동이 일어났다. 이 때 풀뿌리운동처럼 존재하던 동성애 인권운동도 이에 편승하였다. 이제는 성혁명이라 함은 프리섹스 뿐 아니라 동성애와 트랜스젠더의 정상화(차별금지) 운동과 급진 페미니즘 운동까지 확대된 개념이 되었다.

60년대 성혁명을 “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소수 엘리트들이 아니라, 일반 젊은 세대들이 다수 대중이 성해방을 지지하고 실행하였다는 의미에서이다, 성에 대한 일반 대중들-특히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뒤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섹스 현상은 1968-69년 전후 몇 개의 거대한 롴페스티벌에서 폭발적으로 표현되었고 서서히 전파되어 갔다.

① 성혁명의 핵심 주장은 프리섹스이다. 성혁명은 보통 사람들의 성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야기하였다. 성은 결혼과 생식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젊은이들의 혼전섹스와 성인들의 불륜이 급증하였다. 간통은 범죄가 아니게 되었다. 그리하여 실제 성적 억압은 서서히 감소되었다. 전반적으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가 더 해방되었다. 일상에서 성적 표현이 과감해졌다. 그 전형적인 스타일은 캐주얼 섹스-일회용 섹스이다. 이는 오다 가다 또는 클럽에서 만남이 이루어 진다. 최근에는 앱을 통해 만남이 이루어진다. 거의 당연히 술과 마약이 동반된다. 남자들이 흔히 섹스에서 책무와 사랑으로부터 쾌락을 분리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포식자적 섹스(predatory sex)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를 들어 남자가 여자를 쾌락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또는 여자가 남자를 안전판으로 사용하기 위해), 상대가 가지고 있는 섹스 내지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도구로 사용하여, 요즘 말로 가스라이팅하여, 상대를 자기 뜻대로 조작하는 것이다. 나중 피해자는 자신이 이용되었다는 것 알고 깊고 긴 상처를 받는다.

② 프리섹스와 관련하여 사고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하는데, 이것이 중요하다. 성에 대해 낙관적 내지 긍정적 개념, 즉 성적 쾌락도 성취(fulfillment)의 한 근원이라는 지식이 등장하였다. 이는 생식하지 않는 성, 결혼 밖에서의 성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성혁명 옹호자들의 주장일뿐이다. 현재 성적 욕구를 성취한다는 것은, 행복과 관련하여, 개인과 사회의 가치가 되었을 뿐 아니라 권리가 되었다. 겸양(modesty)의 미덕은 살아졌다. 프리섹스 문화가 정신의 황폐를 불러 온다는 것은 여러 자료들이 증명하고 있다. (다음 칼럼 참조)

③ 성혁명의 결과 사회문화 전반에 성화(性化 sexualization)가 나타났다. 이는 무엇인가에 성적 특성들을 추가하거나 섹슈얼리티를 의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보면 영화, 드리마 뮤직비디오, 광고 등등은 물론 예술과 문학까지 온통 성화되고 있다. 일상에서 사람들은 TV 영화, 인터넷, 그림책, 광고, 뮤직비디오, 그리고 최근에는 스마트폰 등을 통해 온갖 종류의 섹스물의 융단 폭격을 받고 있다. 가장 전형적인 예는 성적 대상화(sexual objectification)이다. 이는 사람을 성적 대상으로 보고, 그 신체적 특징들과 성적 매력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주로 여성에서 노출적 의상, 성적인 포즈나 표정 등 신체적 아름다움이 매우 강하게 강조된다. 그런 여성은 장식적인 도구로 취급받는다. 청년문화도 성화되고 있다. 특히 소녀들이 미디어에서 성화의 대상이 되고 있어 그들의 성정체성 발달에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심하게 성화된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산업(sex industry)이 크게 성장하고 있다.

누가 이를 주도하고 있는가?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국제적으로는 하나의 집단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어떤 학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거론하였다: ① 방탕주의(libertinism) 신봉자, 여러 분야의 엘리트들이 직, 간접적으로 성혁명 사상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선구자로서 대표적으로 사드후작, 니체, 칼 막스, 빌헬름 라이히, 마가렛 미드, 허버트 마르쿠제, 알프레드 킨제이, 윌리엄 마스터즈, 존 머니, 미셀 푸코, 등등이 있다. ② 세상에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여 인구를 통제하고자 하는 엘리트들(population controllers), (예를 들어 마가렛 생어), 그리고 ③ 급진 페미니스트(radical feminist) (예를 들어 주디스 버틀러) 등.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희망에 따라 세상을 재창조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혁명으로 뒤집어진 세상에서 권력을 잡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이들의 제자들이나 추종자들이 세계 각급 조직들에 포진하여 있으며, 틈새를 타고 자신들의 사상을 밀어 넣고 있다. 대체로 이들 활동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이라는 정책과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사회의 특정 집단, 주로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약자에 성소수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PC 추종자들의 행태는 매우 전체주의적이다.

그러나 성혁명가들의 겉으로의 선전 선동의 내용은 매우 매력적이다. 즉 “해로움 없는 성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우 매력적인 환상을 제공해주며, 그래서 폭발적 호응을 끌어 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자유섹스는 그 댓가가 혹독하다. 또한 원칙의 문제로서 “아기 없는 섹스, 책무 없는 섹스”가 가능하고 또 바람직한가? 그럴 수 없다. 그들은 부모가 행복해하는 한 아기들은 괜찮다고 주장하는데, 이거야말로 이는 대단히 이기주의적이자 해로운 거짓말이다. 성혁명가들은 이혼이나 낙태로 자녀나 아기들을 해치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21세기 성혁명은 어떨까? 20세기 중반에 폭발한 성혁명은 지금 21세기에도 온갖 부작용들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인간의 성본능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PC 정책은 자제보다 사람의 권리를 더 중시한다.

미래는 어떠할까? 성적 유토피아는 도래할까? 인간이 스스로 성욕을 자제하지 못하면 장차 어떤 사회가 될까? 아마도 성혁명가들에게는 보노보 침판지의 삶이 유토피아일 것이다. 보노보는 거의 항상 섹스를 하는데, 느긋한 가운데, 재빠르게, 기계적으로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사회적 유대를 유지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이런 세상이 온다면 그것은 진보라기보다 인간 고유의 문명인 사랑과 헌신의 문명이 퇴보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에서는 섹스 문제는 거의 반드시 폭력을 동반한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변화는 성혁명이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만간 아이돌 섹스를 대신하여 로봇 섹스가 등장할 것 같고, 가상현실을 이용하는 포르노가 등장할 것 같다. 또한 영리한 화학자들은 새로운, 성적 쾌락을 증진할 마약들을 합성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혁명적 섹스는 모두 우리의 시각에는 비인간적이다. 그러나 혁명에 강박적이 된 성혁명가들은 혁명을 위해서라면 비인간적인 것을 상관하지 않을 수 있다.

진보에 올인하다 보면 아예 섹스나 젠더를 초월한다는 개념이 등장할 것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소위 트랜스휴매니즘이다. 실제로 인간을 유전적으로 조작하여 기계 제작하듯 소용에 따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성적 쾌락에 최적인 모듈이 나와 인체에 갈아 끼울 수도 있을 것이다. 성교 기술자인 인조인간 지골로(gigolo)나, 전투만 잘하고 성욕은 없는 군인 기계를 생산할 수도 있다. 이쯤되면 현재 개념의 성혁명이나 PC는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세계는 더 이상 인간의 세계가 아니게 될 것이다. “유물론적인 세계는 무자비하게 굴러가며 인류를 파괴할 것이다.”- 이는 1930년대 세브란스 신경정신과 과장 찰스 맥라렌 교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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