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라클 박위 크리에이터
위라클 박위 크리에이터 ©성북교회 영상 캡처

위라클 박위 씨가 성북교회(담임 육순종 목사) 창립 60주년 말씀집회 두 번째 시간인 지난 12일 ‘당신은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박위 씨는 9년 전 건물에서 추락해 하루아침에 전신마비가 되었다. 그러나 엄청난 재활 훈련 끝에 혼자 휠체어를 타고 운전도 하고 있다. 현재는 유튜브 ‘위라클’채널을 통해 삶의 소망을 던지고 있다.

그는 “대학교 때 외국계 패션 기업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가고 정직원 제안도 받았다. 제 인생이 완전히 풀린 것 같았다. 열심히 일한 나에게 보상으로 세상적인 쾌락을 주었다. 한 번은 토요일에 술을 마시고 주일날 교회에 가서 저는 세상의 쾌락을 포기할 수 없으니 세상 반 회색 크리스천으로 살다가 죽을 때쯤 완전히 하나님께 돌아가겠다고 기도하기도 했었다”고 했다.

이어 “정직원 전환이 되는 시점에 친구들과 축하파티를 열었는데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의 온갖 장치가 제 몸을 둘러싸고 있었고, 쇄골 밑으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저에게 앞으로 전신 마비로 살아갈 것이며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거라고 하셨다”고 했다.

이어 “어머니는 사고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생리가 끊겼다고 한다. 부모님이 응급실에 도착했을 땐 벽과 침대가 피로 물들어 있었고 저는 의식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주저앉아서 땅바닥을 기어 다녔다고 한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저는 11시간 동안 의식이 없어서 수술을 못 하고 있어서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 기도해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위야 일어나’라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눈을 떠서 다행히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아드님은 전신마비라고 의사가 말하는 장면을 어머니는 핸드폰 영상으로 다 찍으셨다. 우리 위는 반드시 일어날 것이기에 나중에 간증할 때 증거 자료로 써야 한다고 찍으셨다고 한다. 나중에 CNN에 가서 간증할 거라고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선포하셨다“고 했다.

그는 “반면, 아버지는 크리스천이 아니었다. 그런데 제가 중환자실에서 3일째 되던 날 아버지는 네가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도 믿어보겠다고 말씀하셨다. 저는 전신마비가 된 상황보다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게 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중학생 때쯤 아버지가 하나님을 믿는 걸 포기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버지의 마음을 만지시니 아버지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며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를 절대 포기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박 씨는 “일반 병실로 가고 약 3주가 지나 기적적으로 새끼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들 우리 위의 마비가 풀린다고 난리가 났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병원에서의 삶은 치열한 전쟁이었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두 시간에 한 번씩 누군가 제 몸을 계속 뒤집어줘야 했고 스스로 대소변을 보는 기능을 상실해서 뒤처리를 가족들이 다해야만 했다. 이제 검은 머리보다 흰 머리가 더 많은 아버지가 28살 된 아들의 뒤처리를 하게 만드는 저 자신이 너무 싫었고 고통스러웠다. 이제 취직해서 효도해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전신마비가 되어 28살짜리 아이가 되어버린 현실이 믿기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대학 졸업반인 동생은 휴학하고 24시간 제 옆에서 6개월간 병간호를 해줬다. 시간이 지나서 동생에게 너에게 장애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장애는 우리 가족을 단단하게 묶어준 하나의 끈이’라고 답했다. 그래도 병원에서의 생활은 행복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제가 나쁜 생각할 틈 없이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람을 보내셔서 저와 가족을 위로하셨다. 이를 통해 우리 가족은 지치지 않고 힘을 낼 수 있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었다”고 했다.

박위 씨는 병원 기도실에서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 받은 비전을 나눴다. 그는 “전쟁 같던 하루의 재활을 마무리면 저녁에는 조그마한 기도실에서 기도했다. 저는 예전에 건강하던 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평생 잘 읽지도 않던 성경을 읽기 시작하고 매일 저녁 기도했다. 자신만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어느 날 다른 병실의 환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그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다. 그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긍휼의 마음이었다”고 했다.

이어 “재활병원에는 저보다 심각한 상태의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기도실에서 한 시간 정도 울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 가운데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위야, 너는 반드시 회복될 건데 앞으로 너와 비슷하게 아픈 사람들 또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가서 반드시 희망이 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비전을 주셨다. 그 당시만 해도 저는 혼자서 휠체어를 밀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앞으로 제가 미래에 어떻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희망을 줄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오지 않고 상상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했다.

그는 “이후 퇴원했지만, 모든 생활을 가족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때까지 재활하기로 생각하고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재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휠체어를 혼자 10M도 밀지 못했는데 엄청난 재활 훈련 끝에 드디어 혼자 침대로 옮길 수 있게 되었고, 혼자 차에 휠체어를 싣고 운전도 가능하게 되었다. 혼자서 일회용 소변줄을 이용해 소변도 볼 수 있게 되었고, 재활의 끝판왕인 좌약도 혼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혼자 독립적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 육체적인 건강의 회복과는 반대로 신앙생활의 내리막을 걸었던 그는 공동체 생활을 통한 신앙의 회복을 간증했다. 그는 “저는 재활이 잘 되고 있음에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내 목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매일 일으켜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듣고 계시지 않은 것 같았다. 예배 시간에 가도 기도가 잘되지 않고 하나님께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제 마음은 냉랭했고 기쁨을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했다.

박 씨는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공동체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 다시 청년부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청년부 2년째에 가장 끈질긴 친구가 제 셀 리더가 되었다. 그 친구의 도움으로 수련회에 참가했지만,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는 냉랭했다. 수련회 마지막날 밤 집회 시간, 저는 하나님께 이제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그 대신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만 보여 달라고, 어떤 방법으로든 알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굉장히 실망한 상태였는데 담당 목사님이 아픈 지체들은 강대상 위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저는 더 이상 치유 기도를 받고 싶지 않았는데, 친구들이 몰려와 저를 순식간에 강대상 위로 올렸다. 마치 중풍병자와 친구들 같았다. 그날 단상에서 친구들이 저를 둘러싸고 머리, 어깨, 허벅지, 발가락, 종아리를 붙들고 저를 위해 기도했다. 그 모습을 보는데 하나님이 이게 중보기도라는 걸 느끼게 해주셨다. 하나님은 제 부족한 믿음을 보시고 저에게 중보기도의 실체를 보여주셨다. 저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알려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저에게 중보기도의 실체를 알려주심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보이셨다”고 했다.

이어 “그러자 저를 위해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 제가 엄청나게 울면서 회개했다. 저는 그날부터 서서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다시 공동체 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저는 모태 신앙으로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교회 공동체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왜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어려운지, 하나님께서 왜 교회 공동체를 만드셨는지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연약한 부분을 보듬고 사랑하길 원하신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을 더 깊게 느끼고 알아갈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비대면 시대에 교회 공동체의 중요성을 많이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신앙생활의 바닥을 칠 때 저를 이끌어줬던 것은 내 옆에 앉아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이었다. 만약 내 곁에 교회 친구들이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 나와서 간증할 기회는 없었을 것 같다. 내 옆에 있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른다. 나 같은 사람 생명 하나도 살릴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박 씨는 “어느 날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저는 제 자유의지로 술을 마시고 다쳤기 때문에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한 적이 없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장애가 있거나 고통 받는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교회에선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하는데 내가 보는 이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보였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는데 왜 가만히 내버려 두냐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직접 개입하셔서 도와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고 했다.

이어 “3일 정도 지나서 하나님이 갑자기 제 마음에 ‘위야 네가 가서 직접 사랑하면 되잖아’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도저히 반문할 수 없었다. 저는 제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내 가족, 내 친구들, 내 주변인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그 사회적 약자들,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네가 직접 가서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제게 이 사랑의 원리를 깨닫게 해주셨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돈이면 거의 모든 것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사랑은 돈이 없어도 줄 수 있다. 우리가 사랑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사랑할 수 있었다. 그게 저는 너무 충격이었다. 사랑은 세상의 가치가 수반되지 않는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저는 뭔가 엄청난 일을 해야지만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가복음 12장 30, 31절 말씀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와 목적은 바로 사랑하기 위해서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병원 기도실에서 비전을 받았지만,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교회 아웃리치를 다녀온 어느 날, 하나님이 생각나게 해주셨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유튜브였다. 제 이름은 박위다. ‘위(WE)’는 영어로 ‘우리’다. ‘위’(We)+ ‘미라클’(miracle),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이라는 뜻의 ‘위라클’ 채널을 만들었다. 이 채널의 가장 큰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든 일상이 기적임을 일깨우면서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지체에 삶의 소망을 던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위라클 채널을 하면 많은 분들이 연락을 준다. 오늘 생을 마감하려다가 우연히 위라클 채널을 보고 살기로 결심했다는 분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하나님께 감사하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너무나 놀랍다.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살아계시다”고 했다.

박 씨는 “저는 일회용 소변줄을 사용하는데 세균 감염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어느 날 요로감염과 신우신염에 걸려 열이 40도까지 올라갔다. 항생제가 듣지 않아 온몸에 아이스팩을 댔다가 오한이 오면 이불을 덮는 과정을 5일 내내 반복하는데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전신마비가 되고 한 번도 이것 때문에 운 적이 없는데 꼬박 한 시간을 침대에서 울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내 미래가 너무 두렵게 느껴지고 온갖 잡다한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다”고 했다.

이어 “빌립보서 4장 13절을 주문처럼 외우며 울면서 세수하는데 갑자기 십자가가 떠올랐다.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하필 이 상황에서 십자가가 떠오르냐고 하나님께 따졌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장면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비하면 지금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닐 텐데 내 것이라 주장했던 내 삶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 죄인인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죄의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에 내가 새 생명을 얻은 것이라는 걸 그날 처음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이 사실을 깨닫고 세면대 앞에서 울면서 회개하다가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떠올라서 울음을 그쳤다. 그 말씀이 내 마음 가운데 확 꽂히면서 말씀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께선 제가 다치고 나서 하루 다섯 시간을 기도해도 모자란 날이 있었다며 눈물을 많이 흘리셨다고 한다. 그때 우리 위가 회복될 수만 있다면 목숨도 내어놓다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자식을 향한 사랑이 목숨과 맞바꿀 정도로 큰데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으니 얼마나 가슴 아팠겠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이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으로 새 생명이 주어진 것이다. 저는 다치기 전엔 걷고 뛰고 내 손으로 밥 먹고 스스로 대변 보는 것에 대해 한 번도 감사하며 살지 않았다. 그런데 전신마비가 되고 나니까 과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기적과도 같은 삶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하면 눈먼 자가 눈뜨고 다리를 쓸 수 없는 사람이 갑자기 일어서는 초현실적인 현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기적은 지금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는 삶, 우리의 삶 그 자체”라고 했다.

박위 씨는 “남과 비교해서 내게 없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지금 내게 있는 것, 내가 누리는 것을 바라보자. 현재 고난의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이 생긴다. 하나님은 항상 약한 자를 쓰셨다. 저는 제가 육체적으로 얼마나 연약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제가 전신마비가 돼서 열심히 살아가는 제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고 용기가 된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걸 깨닫고 또 인정하니까 하나님이 저를 도구로 사용하신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세상에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받는 사람들을 택하셨다. 우리가 만약 연약하고 고통 가운데 있다면 이제 아마도 하나님이 쓰실 수 있다는 뜻인지도 모른다”며 위로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고난은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다. 사람들은 제 모습을 보면서 끔찍한 고난의 시간 속에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저는 전신마비된 생활을 통해서 삶의 진정한 행복과 가치를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다. 마가복음 12장 31절 말씀처럼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셨다. 우리는 언제든 어떻게든 하나님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충분히 사랑을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모두가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할 수 있기를 축복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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