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요나단의 전태식 목사가 찬양하고 있다.
다윗과 요나단의 전태식 목사가 찬양하고 있다. ©하남시두란노교회 영상캡처
하남 두란노교회(담임 김형조 목사)가 지난 12일 다윗과 요나단의 전태식 목사를 초청해 찬양 간증집회를 진행했다. 전 목사는 ‘지금까지 지내온 것’, ‘하나님의 은혜당신은 하나님의 사람’, ‘해 같이 빛나리’ 주님여 이손을’ 연달아 찬양한 뒤 ‘친구의 고백’의 주인공인 베드로의 이야기를 전했다.

전 목사는 “제가 살아온 모든 날들의 순간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인생은 매 순간이 만남의 순간이다. 성경엔 만남을 통해 인생을 바꾼 수많은 사람을 기록하고 있다. 제 많은 노래의 주인공인 베드로는 어느 조그만 나라의 시골 바닷가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역사에 아무런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살다가 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2천 년 동안 이 땅을 살았던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남아 있다”고 했다.;

이어 “어느 날 예수님을 따라나선 베드로는 3년간 주와 동행하며 위대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새벽을 맞이한다. 그가 입에 담지도 못할 말로 저주하며 주를 부인하는 순간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죽을 때까지 그 새벽을 잊지 못하고 남은 생을 가슴을 치며 울어야 했을 것이다. 이후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의 빈 무덤을 목격한 인류 최초의 목격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3년 전으로 돌아가 물고기를 잡으며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일이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그 실패한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찾아오셔서 너는 나를 사랑하냐고 물으신다. 그 만남의 현장의 의미를 아는가. 요한복음 21장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베드로는 위대한 행보를 새롭게 시작한다. The Acts. 사도행전의 위대한 베드로다. 오늘 주님의 그 질문 앞에 서 있는 우리의 답이 베드로와 같기를 바란다. 그리고 베드로가 만난 부활하신 능력의 주, 생명의 주를 만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며 ‘친구의 고백’을 불렀다.

전태식 목사는 작년에 쓰러져 입원한 뒤 그가 경험했던 기적에 관해 간증했다. 그는 “몸이 안 좋아서 수술 소견서를 갖고 분당서울대 병원에 갔었다. 주차하고 사람들이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로 걸어 내려가다가 의식을 잃었다. 나중에 목격자 진술을 보니까 사람이 앞에서 걸어오다가 와르르 무너졌다고 쓰여 있었다. 그렇게 11시간 30분을 의식 없이 응급실에서 호흡기를 꽂고 누워있다가 새벽 1시 40분쯤 정신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그때 제 혈압이 225에 당뇨 수치는 측정 불가였다고 한다. 인간이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감압 주사를 두 대, 세 대를 맞아도 혈압이 19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 뇌 속에서 핵폭탄 하나가 터진 것 같은 고통을 느껴야 당연하다고 했다. 그 당시 코로나로 인해 비어있는 병실이 없어서 저는 새벽 2시에 퇴원을 했고 그날 밤부터 저의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는 “숨을 쉴 수 없고 죽을 것 같았다. 무너진 건물의 철근과 콘크리트 사이에 끼어 있는 것 같아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비틀거리며 악을 써대다가 집으로 다시 들어왔는데 못 견디고 새벽 동이 틀 무렵 눈을 까뒤집고 혼절했다. 119를 타고 지역 병원에 갔지만 해결이 안 돼서 다시 서울대 병원을 이동해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온갖 처치를 받고 깨어난 후 뇌신경학과 교수님은 제 얼굴과 MRI 사진을 보더니 저에게 혹시 신을 믿느냐고 했다. 지금껏 수십만 장의 MRI 사진을 봤는데 저와 같은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워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혈관이 가다가 거대한 혈전 하나가 막혔는데 혈압 225에 당뇨 수치가 600 이상이면 100세 넘은 노인의 혈관 상태라고 했다. 그런데 아주 젊고 건강한 혈관이라도 그 정도 사이즈의 혈전이 있으면 막히면서 결국 혈관이 터진다는 것이다. 그게 의학적으로 뇌출혈이고 막혀 있는 상태가 뇌경색인데 저는 뇌경색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혈관이 터졌어야 마땅한데 혈관 벽을 찢지 않고 혈전이 쭉 밀려 빠져나가면서 부서져 조각이 나서 혈관 속으로 흐른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일이라며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살리셨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나님은 저를 살리셨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병실이 없어서 일반실로 못 가고 바로 퇴원해서 집 주변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죽을 것 같고 숨을 쉴 수 없고 가만히 있으면 천장이 내려오고 벽이 내게로 몰려드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호흡 곤란을 호소했지만, 산소포화도는 정상이었다. 뇌신경호르몬이 뇌경색 후유증으로 오류 신호를 보낸 것이다. 기적적으로 병실이 나서 입원했는데 깨면 발작을 일으키니까 일주일 동안 하루 20시간을 재웠다. 산소도 없는 산소통이 있어야 안심이 됐는데 다른 용어로 공황질식장애다. 그렇게 일주일 만에 몸무게가 11kg이 빠졌다. 먹지 못해서 마르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죽이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11일째 병원 중간 정산을 했는데 월셋집 보증금을 빼도 갚지 못할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의사는 지금 퇴원하면 죽는다고 했지만 12일째 되는 날 퇴원을 감행했다. 그 뒤로 집 마루에 이불을 깔고 문을 요만큼 열고 콧구멍을 대고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하면 밖으로 나갔지만 가만있어도 팔다리가 떨려서 채 다섯 걸음을 걷지 못했다. 그렇게 죽어가던 어느 날 주일, 고난 주간이 시작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주의 고난에 동참하며 주께서 느끼시는 그 고난을 깊이 묵상하며 은혜받는 한 주이기를 소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자를 보다가 허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눈물이 터지기 시작하더니 일주일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했다.

전 목사는 “저는 고난 주간에 굉장히 바쁜 사람이다. 제 노래 대부분은 십자가고 보혈이고 주님의 아픔이고 눈물이다. 그런데 문득 돌이켜보니까 내 인생 고난의 극점의 순간, 매초마다 죽음의 공포를 극심하게 느껴서 악을 써대야 했던 그 순간에 단 한 번도 예수 그 이름을 떠올린 기억이 없었다. 목사로서 너무 부끄러운 고백이다. 30초마다 죽음의 공포가 다가오는데 그 고통 가운데서 한 번도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게 너무 놀라웠다. 그리고 너무 죄송하고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통곡하며 목 놓아 울었다”고 했다.

이어 “그때 비로소 내가 알게 된 한 가지가 있다. 주님은 얼마나 아프고 두려우셨을까.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과 땀이 피로 변하기까지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실 수 없냐고 하셨다. 주님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외로우셨을지 얼마나 저리도록 아프셨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비로소 그 아픔을 겪으면서 내가 주와 함께 죽었고 내가 주 안에서 살아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우리의 영적 전쟁이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은 너무도 확신에 차 있다. 그렇게 걸음을 걷기 시작하고 열 걸음, 스무 걸음 그리고 나중에 100미터, 500미터, 5킬로를 걷기 시작했다. 의사가 말한 상식대로라면 저는 여전히 누워 있어야 할지 모른다”며 그에게 일어난 기적을 설명했다.

그는 “첫 번째는 제가 서울대 앞마당에 쓰러졌다는 것이다. 제가 살던 산골에서 넘어졌다면 아무리 구급차가 빨리 와도 30분, 여주 병원까지 30분, 다시 대학병원까지 1시간이다. 어쩌면 지금쯤 침대에 누워있거나 아니면 몸의 반쪽을 못 쓰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치료약을 최소 2년 반, 길게는 7~8년을 먹어야 하는데 6개월이 안 돼서 아침 약을 끊고 8개월 만에 점심 약도 끊었다. 의사 선생님은 인간의 회복 속도가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일 년 만에 또다시 사순절, 다가올 고난주간에 주 앞에 예배하는 자리에 서 있는 기적을 지금 여러분이 만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두 번째 기적은 도저히 불가능했던 거대 혈전이 혈관 하나 다치게 하지 않고 뚫고 나간 것이다. 뇌수술하지 않아도 됐던 게 기적이다. 그런데 진짜 기적은 따로 있다. 저는 제 소식을 알리지 않았는데 누가 알렸는지 전 세계에 내가 밟았던 땅, 수많은 주의 백성이 그날부터 저를 위해 금식하며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게 진짜 기적이다.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는 그 기적의 산 증거로 저는 살아있는 것”이라고 했다.

전 목사는 “우리는 너무도 깊은 고난의 터널을 지나왔다. 그리고 여전히 너무도 고독한 광야의 길을 걷고 있다. 오아시스 하나 없는 사막이다. 우리가 지나는 긴 터널의 끝이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버려진 듯 홀로 남겨진 아픔에 절망한다. 하지만 위대했던 하나님의 사람 욥은 그의 인생의 고난의 정점에서 인간으로서 가장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주여 내가 전에는 주님을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우리에게 고난은 귀로 듣기만 하던 주를 눈으로 보게 되는 가장 확신에 찬 축복임을 믿으시길 바란다”며 ‘내게 오라’, ‘쓴 잔’을 찬양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축복과 격려를 드리고 싶다. ‘모죽’이라는 대나무가 있다. 모죽은 5년 동안 초라한 모습으로 거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아무 희망 없이 가다가 마침내 5년째가 되는 봄날 존재감 없이 말라비틀어졌을 것 같은 모죽이 봉우리를 터뜨린다. 그 순간부터는 하루 평균 60cm~1미터를 자라서 한 달 만에 거대한 대나무숲을 이룬다. 사실 모죽은 지난 5년 동안 땅 위로는 거의 자라지 않는 것 같았지만 땅 밑으로는 100미터 이상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것이 모죽이 5년 동안 가진 비밀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밖으로 보여지는 것에 너무 몰두하고 살다 보면 안이 말라비틀어져 버린다. 우리는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좁은 길을 걷고 있다. 교회가 온 세상을 향해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져서 어떻게든 선교지에 한 명의 선교사를 더 파송하고 교회를 하나 더 세우기를 소원하고 교육기관을 하나라도 더 만들기를 꿈꾸는 일들은 거대한 건물을 짓는 것보다 아름답다. 천국에 올라갔을 때 주님께서 등을 토닥이시면서 저 아름다운 열매가 너의 눈물이고 너의 헌신이고 너의 기도였다고 말씀하시는 행복한 꿈을 꾸면서 이 길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걸어 나가길 바란다”며 마지막 찬양으로 ‘주만 바라볼지라’를 찬양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