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리츨의 신학은 아돌프 하르낙(Adolfvon Harnack, 1851~1930)과 하르낙의 미국인 제자인 아서 맥기퍼트(Arthur C. McGiffert, 1861~1933)로 이어졌다. 이 두 사람의 신학적 과제는 헬라 철학이 어떻게 기독교 교리 형성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조사하고 증명해 내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전통적으로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 교리는 헬라 철학의 산물이므로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복음이 ‘알맹이’라면 교리는 ‘껍질’이라는 것이다. 예수는 조금도 초자연적이지 않은 한낱 인간으로서, 교리를 선포한 것이 아니라 윤리교사로서 완전한 사랑의 모범을 제시했고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르쳤으며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주장했다. 특히 맥기퍼트는 “신약성경 전반을 살피건대 기원은 사도적이지 않고 이야기는 신뢰할 수 없으며 가르침에는 권위가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기독교의 외적 권위에 대한 부정과 거부를 들고 나선 인간 이성은 19세기에 들어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를 모조리 의심하고 해체하는 일을 주도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이성에 반하는 교리들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고 했다. 특히 신적 예정 같은 칼빈주의 교리들은 자유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교리의 하나였다.

역설적으로 자연주의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공격을 막고자 출발한 자유주의자들이 오히려 더욱 자연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들이 만들어낸 기독교 신학은 엄밀히 평가하면 기독교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유주의 신학을 논해야 하는 까닭은 여전히 기독교라는 이름표를 달고 하나의 실체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실체는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고 복음전파의 사명을 맡은 기독교회를 잘못된 길로 미혹하는 첨병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의 요체는 무엇인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주의 신학은 철저히 자연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유신론자들이지만 동시에 진화론자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교묘하게도 하나님이 물질과 생명을 창조하신 것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무신론적 진화론자들과 같이 신적 창조를 부정한다. 이들은 동시에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다. 이들은 창 1장 1절에 처음 사용된 ‘바라’(ברא)라는 단어가 ‘무로부터의 창조’를 의미함을 애써 부인한다. 1장 27절에 하나님의 형상에 따른 인간 창조를 하나의 비유로 본다. 제임스 오르(James Orr) 같은 이는 1890년 한 강좌에서 ‘하나님과 세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통해 “실제로 진화론이 주장하는 사실이 설계에 의해 창조의 증명을 약화시키지 않는다”며 진화론을 지지했다. 특별히 유신론적 진화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주가 고정된 보편적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때로는 비 생명에서 생명을 창조하시거나 하나님 의식을 인간 안에 심어놓으신 것 같이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개입하신다”고 전제하면서 “대부분은 자연적인 진화의 과정을 밟도록 하시고 특별한 경우에만 하나님이 개입을 하신다”며 진화론이 성경적임을 주장한다.

둘째, 자유주의자들은 신학의 출발점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두지 않고 인간의 주관적인 경험에 두었다. 계시종교를 윤리와 도덕의 종교로 전락시켰다. 말씀 중심의 기독교를 인간 중심의 합리적인 종교로 바꿔치기했다. 특히 ‘사변적 유신론’으로 널리 알려진 ‘리츨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인격적인 분인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든, 영혼이 지속성을 가지든 그런 것들은 기독교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대신에 그들은 “인간 예수님의 인격이 우리 마음에 주는 달콤한 감동을 누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공언했다. 이런 점에서 자유주의 신학은 주관주의적 신학이다.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성경(Sola Scripture) 중심의 신학 방법을 따르지 않고 주관주의적이며 신비주의적, 감정적, 경험적인 새로운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통적인 신학의 체계를 허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것은 교회공동체를 약화시키는 주범이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으로 인해 초대교회부터 종교개혁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지켜지고 계보를 이어왔던 기독교 신학의 공동체가 약화되고 말았다. 대표적인 신정통주의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유럽의 개신교는 자유주의로 인해 죽었다”고 까지 진단했다. 이것은 하나의 잘못된 사상이 얼마나 악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산 교훈이 된다. 한 개인의 신학의 방법과 내용은 성경과 기존의 건전한 신학적인 전통에 의해 검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신학이 새로운 독창성과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부분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신학을 형성하였는지는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신학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말씀을 벗어나면 그것은 참다운 신학이 될 수 없고 그런 신학을 좇는 자는 사망과 곤경에 처할 뿐이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시 107:10~11) (계속)

최더함(Th. D, 역사신학, 바로선개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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