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센터 북한구원 화요모임
‘탈북민센터 북한구원 화요모임’에서 15일 강송철 전도사(탈북민, 총신대)가 간증을 했다. ©에스도기도운동 유튜브 영상캡쳐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진행되는 ‘탈북민센터 북한구원 화요모임’에서 15일 강송철 전도사(탈북민, 총신대)가 간증을 했다.

강송철 전도사는 “북한에서 나온지 3년이 됐다. 지금 총신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북한에서 나와서 한국에서 방황을 했고, 그 시간을 통해 이 자리에 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북한에서의 삶, 한국에서 겪었던 삶, 지금 나의 삶에 대해 간증을 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서 2000년도 고난의 행군이 끝나고 강행의 시기일 때 고위층 간부의 집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어머니가 장사를 하셔서 남들보다 부유한 환경에서 살았다. 그때는 북한이 다 잘살고 굶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행복한 삶은 오래가지 않았고 13살 되던 해에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장사가 망했다. 어머니는 중국으로 피해가셨고 농촌으로 할머니와 동생과 이사를 가 지내게 됐다. 한달 만에 굶주림이 찾아왔다”며 “그때 비로소 내가 살던 것보다 어려운 북한 상황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학교를 자연스레 그만두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어머니는 없고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하시고 동생은 어려 생업에 뛰어들었다. 나무하러 다니고 힘들게 살던 중에 어머니가 중국에 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했다.

이어 “그러다 중국에 간지 5년 만에 어머니가 강제북송 되었다. 어머니에게 면회를 갔을 때 눈물로 갔었다. 어머니가 6개월 후에 감옥에서 나오는데 할머니가 되어서 나왔다. 어머니가 중국에 와 계실 때 오라고 했지만 안갔었다. 세뇌교육에 빠져있어 북한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5년이란 시간동안 고생을 하면서도 조국을 배반하지 않고 떠나지 않았는데 어머니가 감옥생활을 한뒤 생각이 바뀌었다”며 “어머니에게 북한에 대한 분노로 인해 ‘남조선에 가자’고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5개월 만에 탈북을 시도했다. 당시 집행유예 중이어서 위험했는데 다행히 중국까지는 탈북에 성공했다. 중국에서 한국에 가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필요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어머니에게 구원의 손을 내밀어 주셨다. 교회를 통해 태국까지 무사히 가게 됐고, 어머니는 태국에서 선교사님들을 만나 성경공부를 하게 됐다. 어머니는 하나님을 만났고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셨다”고 했다.

강 전도사는 “그 당시 저는 17살로 이제 성인이 됐기 때문에 군대에 가야하기도 했고, 보위부에서도 연락이 왔다. 보위부에 끌려가면 죽겠다는 생각에 그날로 바로 도망쳐 갔다. 밀수꾼을 찾아가서 어머니가 중국에 큰돈을 가지고 있으니 보내주기만 하면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밀수꾼이 큰돈을 요구했는데, 그때 다행히 선교사님이 도와 주셔서 미국교회와 한국교회의 후원을 받아 탈북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그렇게 중국에 가서 어머니와 울면서 통화를 하는데 어머니가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 기도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기도를 일단 따라했다. 그리고 어머니와 같이 예수제자훈련원에 들어가게 됐다. 3개월 동안 성경통독을 하고 말씀공부를 하고 세례를 받고 나오게 됐다. 그때 뜨겁게 성령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져서 한국에 오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했는데 남조선에 오니 좋은 게 너무 많아서 신앙을 지키기 어려웠다”며 “한국 친구들을 만나면 북한에서 나와 하나님을 믿는 게 대단하고 북한에서 나온 게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한국에서 방황을 하다보니 유혹이 많은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게 참 대단한 것 같다. 북한은 너무 궁핍해서 문제라면 대한민국은 너무 부유해서 하나님을 떠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헀다.

강 전도사는 “국정원 하나원에 있을 때까지는 매일 새벽기도에 갔다. 그런데 하나원에서 나오고 나니 친구들과 놀러다니느라 매일 교회를 빼먹고 교회에 끌려가면 몰래 도망쳐 나왔다. 그래서 어머니가 섭섭하셨는지 저에게 ‘어떻게 한국에 왔는지 구원을 받았는지 잊었냐’고 하셨었다. 그때 제가 ‘그런데 어쩌라구요’라고 했었다. 그때 어머니와 많이 싸우고 속을 많이 태웠다”며 “어머니는 매일 기독교TV를 틀었는데 저는 당시에 그게 너무 싫었다. 찬송가를 틀면 세상노래를 더 크게 틀고, 성경을 읽으시면 성경책을 찢어버리겠다고 하면서까지 어머니와 많이 싸웠다. 어머니는 언젠가부터는 저와 싸우지 않으셨다.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시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기도에 나가시며 달라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는 “세상에서 놀면놀수록 부족함이 찾아왔다. 더 자극적인 걸 바라게 되고 사랑하는 어머니와 대화를 안하고 처음보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놀았다. 그러나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로 하나님은 저희 가정에 기적을 일으켜 주셨다”며 “제 동생이 탈북을 하게 됐다. 당시 탈북비용이 어마어마 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식으로 교회에서, 성도님들, 모르시는 분들을 통해 탈북하게 됐다. 동생은 한국으로 바로 오게 됐다. 그런데 신기한 건 동생이 와서 순종을 잘했다는 거다.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잘 다니고 성경필사를 하고 찬양을 부르고 말씀을 나눴다. 그 모습을 보며 한쪽 방구석에서 게임을 하는 제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형으로서 부끄러웠다. 동생의 모습을 보고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됐다”고 했다.

강 전도사는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됐지만 또 넘어졌다. 그때 당시에 어마어마하게 간증을 하러 다녔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제가 교만해져 있었다. 하나님보다 그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그걸 아셨는지 하나님은 그 모임에서 나오게 하시고 지금 다니는 탈북민 개척교회인 북부 중앙교회로 보내셨다”며 “그때 교회에 청년이 저뿐이라 어머니와 다퉜었다. 전 교회에서는 청년들과 잘 어울리고 중고등부 사역도 하고 있었고 많은 나눔을 하고 인기도 있었는데 떠나게 됐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저와 다투지 않고 또 기도를 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까 전에 제가 어머니에게 순종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해주셨던 것을 믿고 다시 한번 어머니에게 순종을 해 지금은 개척한 교회 아래서 교회 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청년도 한 명도 없었고 교인도 많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청년도 채워주시고 교인도 채워주셔서 교회가 훨씬 풍성해 졌다. 그전에는 다 갖춰진 교회에 갔었는데, 지금 교회에서는 노래도 잘 못하지만 찬양팀도 섬기는 등 부족한 저를 하나님은 훈련을 시키셨다”고 했다.

강 전도사는 “제일 감명 깊게 봤던 말씀은 시편 23편이다. 하나님은 부족한 저지만 은혜를 부어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부족함 없이 잘 살고 있다. 원래는 어머니가 나오는 자리인데 제가 나오게 됐다”며 “이 자리에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나와 간증을 하셨어서 걱정이 많았는데 어제 기도하는 중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주셨다. 제가 가진 게 없고 초라하고 배운 게 부족하지만 그분들이 섬기는 하나님이나 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나 똑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데는 차이가 없다고 느꼈다. 에스더 기도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고 대한민국에도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 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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