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목사(남포교회 원로)가 21일 주일예배에서 ‘요한복음 12:1-12’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박 목사는 “당시 유대법에는 정결례가 있어서 주인은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손과 발 씻을 물을 주는 게 당연한 규칙이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물이 아니라 비싼 나드 향유 한 근을 부어드렸다”며 “가룟 유다는 ‘왜 이리 비싼 향유를 낭비하는가? 팔면 300데나리온도 더 나와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훨씬 낫지 않느냐’고 따졌다”고 했다.

이어 “우리는 가룟 유다가 배신하는 일도 알고 있다. 회계에 많은 부정을 일으켰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성경이 대조하려는 바는 윤리적·도덕적 차원의 대조가 아니다.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면 인생은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며 진실되게 산다는 건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소극적으로 거짓말하지 않고 남 헤치지 않으며 산다면 다 밟혀죽는다. 살아남기 위해선 선택의 여지없이 악랄하고 무섭게 굴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룟 유다를 욕해서 예수를 믿는다는 말을 쉽게 때우면 안 된다. 마리아는 아까 얘기한대로 순전한 감격과 기쁨으로 예수의 발을 씻겼다. 그녀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는 사실까지는 몰랐다”며 “마리아는 예수님이 죽음으로 마리아의 감사와 경배를 완벽하게 결실해야 된다는 사실까지는 몰랐다”고 했다.

박 목사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데나리온은 하루치 노동자의 임금이다. 300데나리온은 1년 치 품삯이다. 오늘날로 치면 약 3,000만원이다. 마리아가 한 일은 깊은 이해에서 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처지에 깊이 감사한 일이 나중에 훨씬 위대한 사건으로 역사에 남았다”며 “유다는 못난 짓을 했지만 개인의 잘못 하나로 그치는 게 아니었다. 예수가 없으면 이렇게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대표자로서 보여 줬다”고 했다.

그는 “요한복음 12장 47절에서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고 나왔다. 예수님은 심판이 내 임무가 아니라고 하셨다”며 “누군가가 ‘잘했다, 잘못했다’는 것이 예수 믿는 표가 돼서는 안 된다. 예수를 믿으면 세상이 할 수 없는 기회와 세상, 자리에 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세상이 할 수 없는 것을 예수 때문에 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은 실제로 해야 하는 일을 아무것도 안하고 댕댕거리기만 한다”고 했다.

이어 “여기서 가룟 유다의 생색내기를 볼 수 있다. 그는 예수를 믿는 게 아니라 예수를 이용해서 인생의 어떤 자기 확인, 자기 증명, 생존의 수단을 삼으려했던 것”이라며 “가룟 유다를 불쌍히 여겨야 하는 건 그를 용서하자는 게 아니다. 예수를 모르면 다 그렇게 살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드러나서 표면화되는 사람도 있고, 사기 안 치고 거짓말 치지 않아도 이를 숨기고 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둘 다 똑같다”고 했다.

박 목사는 “누가복음 7장 47절에서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 하느니라’고 나왔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인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시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다”며 “이 죄인 된 여자는 예수님께 용서를 구하러 가지도 못했다. 그저 소문을 듣고 자신은 예수님께 가서 ‘이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대접하시며 우리 편이 되신다는 것’만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른데 울 데가 없어 예수님 앞에서 울었다. 자신의 모든 걸 내놓고 울었다. 그녀는 희망이 없고 핑계를 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주 앞에서 운다”며 “그 여인이 회개하고 죄 사함을 요구하며 예수님께 가서 간구한 게 아니다. 예수님은 그의 형편에 대하여 반응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께서 여인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신 말에 조건을 단다. 가령 죄를 많이 지었지만 예수께 가서 믿음을 가지고 용서와 구원을 요구했다는 조건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대부’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대부는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돈 꼴레니오네가 딸의 결혼식을 맞고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시작 한다”며 “장의사는 돈 꼴레니오네에게 ‘내 딸이 청년들에게 수치를 당했다’며 복수를 간청한다”고 했다.

이어 “돈 꼴레니오네는 장의사에게 ‘너는 이 방에 들어올 때 인사도 하지 않고, 결혼식 축하도 하지 않았으며 우정도 안 구했다.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복수만 요구했다. 어떤 존경과 친밀감도 보이지 않았다. 네가 만일 내 가족이었다면 너에게 일어난 일은 내게 요청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내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며 “똑같다. 우리도 예수님께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까 내 기도를 들어 달라’고 한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나를 말론 브란도로 보는가’라고 반문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여인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식으로 보신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라며 “우리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다고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이 여인의 가엾음과 불쌍함에 대하여 여인이 예수님 앞에서 감사와 진실, 그리고 간절한 간청이 있었기 때문도 아니”라고 했다.

박 목사는 “‘당신이 만든 자녀요, 백성이요, 영광이요, 약속하고 목적한 존재’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녀를 용서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부모로서 우리를 자식으로 대하신다는 것”이라며 “이는 제한과 조건을 넘어서 하나님이 무한정 ‘내가 죽는 자리까지 너희를 위하는 행위가 될 것’이라는 선언”이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일을 우리는 비장하게 생각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젊어서 연애할 때 누구든지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해서 죽는 것은 절절한 게 아니다. 오히려 기쁜 기회라고 생각 한다”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식도 이와 같다. ‘너희들을 편들러 왔어. 조건을 요구하지 않아. 다른 자격이 필요 없어. 너희들을 위하여서는 모든지 할 수 있어. 네 죄사함을 받았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단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25장에서 달란트 비유는 주인이 오랜 타국에 여행을 가면서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겼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 받은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았다”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이를 숨겨뒀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고 엄격하며 분명한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그러자 주인은 ‘너는 내가 굳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러면 은행에 맡겨 이자라도 받을 것 아닌가’라며 진노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늘 오해한다. 앞서 두 종은 이 일이 책임도 의무도 아니고 자기 일이었다. 주인과 함께 하는 동료로 생각했다. 주인이 맡겨주신 게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일로 생각했다. 같이 잔치에 참여하려는 가족으로 생각했다”며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가 분리됐다. 정리하고 계산하고 책임져야 하는 두려운 대상으로 주인을 생각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한 달란트 받은 종에게 ‘너는 나를 그렇게 밖에 이해하지 못하느냐?’라며 책임을 묻고 계산하겠다고 하신다. 또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작은 자는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며 “그가 내 식구고 내 피가 흐른다면 존재와 감정 그리고 반응과 언행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여유로운 자여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중에 가장 아닌 자에게 최선을 다하신다. 그래서 우리를 심판 하신다”고 했다.

박 목사는 “‘나는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에게 조건이나 구차한 기준을 들이대지 않는다. 너희 모두를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라도 죽을 수 있다’고 말하신다”며 “여러분은 기도할 때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현실을 살 때는 아무 필요가 없는 십자가처럼 산지 오래다. 하나님이 우리를 편드시고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대적하겠느냐? 이것이 내게 힘이 되고 어떤 위협과 공포 속에서도 살아갈 근거가 된다. 이것이 넉넉한 힘이라는 걸 안다면 예수 믿는 것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박 목사는 “고통과 명예로운 것이 나뉘지 않는다. 고통을 받으면 잘못됐고, 영광과 명예는 언제나 성공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죽음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의 깊이와 신비를 잘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라며 “우리를 만든 귀중한 것은 우리의 실패였다. 그것이 우리를 복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그러기로 작정하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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