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노
▲푸른교회 조성노 담임목사

교회를 창립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니 잘 실감이 나지 않고, 지난 세월이 허망하기까지 합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먹먹하고 할 말을 잃게 됩니다. 그저 주님 앞에 죄스럽고, 성도들 앞에 부끄럽고, 권권사님께 면목이 없다는 게 지금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벚꽃, 백목련, 자목련은 이미 다 지고 다시금 영산홍 붉게 타는 4월 하순이지만 제 마음은 오히려 무겁기만한데, 실은 나무들도 겨울을 인내했다기보다는 봄을 기다림으로 저렇듯 화사한 꽃들을 피운 것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 자공 간의 대화입니다. <자공이 말하였다. "여기 아름다운 옥이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이것을 궤 속에 숨기시겠습니까? 아니면 상인에게 파시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그리고 나서 말하였다. "나는 상인을 기다리는 사람이다"(아대가자, 我待賈者)>. 공자의 삶과 사상에는 어디에나 기다림의 정신이 배어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진리를 기다리는 사람이다>(我待眞理者). 그렇습니다. 공자처럼 우리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어리석어 시간의 겉모습만을 볼 뿐 그 내면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해 자주 덫에 걸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다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구약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의 한 여인에게 물과 떡을 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그 여인은 마지막 남은 한 줌 가루로 떡을 빚어 먹고 어린 아들과 죽기 위해 처연히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오죽이나 곤궁했으면 그렇게 최후의 식사 한 끼를 하고 이 세상을 하직할 생각까지 했겠습니까? 사정이 이런데도 엘리야 선지자가 차마 못할 주문을 합니다. <내게 물과 그 떡 한 조각을 가져오라!>(왕상 17:13). 충격적인 것은 그 사르밧의 과부가 굶주려 쓰러져가는 다른 생명에게 그 남은 한 줌의 사랑을 내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온통 죽음뿐이었던 그 절체절명의 비극 속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네 통의 가루가 떨어지기 아니하고 네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리라>(왕상 17:14). 인간의 결단과 하나님의 역사가 만나 기적의 불꽃이 점화된 것입니다. 시대가 아무리 어둡다 해도 지금 우리에게 나뭇가지 두어 개비만이라도 있다면 사르밧의 여인처럼 그것으로 사랑의 불씨를 지펴야 합니다. 그러면 마지막을 준비하던 <죽음의 때>가 도리어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생명의 때>로 반전 될 것이고, 우리의 텅 빈 <통과 병>에도 <사랑의 가루>와 <소망의 기름>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제 눈에는 지금 우리 푸른교회의 사정이 엘리야 시대의 그 사르밧 여인의 처지와 꼭 같아 보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두가 아합왕과 이세벨처럼 바알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을지라도 우리만큼은 정녕 믿음의 올곧은 길을 가길 바라십니다. 세상 악이 아무리 위협적이고, 지금의 사정이 아무리 가뭄에 갈라진 대지만큼이나 처참하다 해도 우리 수중에 한 줌 가루만큼의 선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기름 몇 방울만큼의 희망만 있어도 그것으로 얼마든지 생명의 떡을 구워 주린 이웃들과 나눌 수 있다고 하십니다. 공자님이 <상인>을 기다리고 진리를 기다렸듯이, 사르밧의 과부가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며 한 줌의 사랑을 내밀었듯이 우리도 그렇게 기다리며 사랑을 실천하면 아무도 예상치 못한 시각에 새 날, 새 일을 위한 불길이 반드시 우리 가운데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체험이 우리 인생에 두고두고 귀한 일깨움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며 기다리며, 희망을 접지 맙시다!

/노나라의별이보내는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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