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련 소장이 출판기념회에서 가정 사역의 출발점이 됐던 사건을 전하며 그간의 사역들과 개인의 아픈 가정사를 털어놓았다.   ©오상아 기자

"청담동에서 갤러리 할때는 너무 화려한 저였어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코디가 안되면 나가지 않는 여자였는데, 다시 주님 만나고 나서는 배설물처럼 버리고 질끈 묶고 살았죠. 그러다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살자' 해서 좀 바뀌긴 했지만요"

라브리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 소장이자 라브리위기가정회복센터장으로서 사역하고 있는 전혜련 권사가 흔들리는 가정과 학대 받는 여자들의 고통을 끌어안아주는 인생을 살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오롯이 담은 책 '가정을 살리는 여자'(낮은 자가 부르는 평강의 노래)<예영커뮤니케이션 펴냄ㅣ247쪽>를 출간하고 지난 6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가진 출간기념회에서 '청담동 시절'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저는 "준비되지 않은 결혼을 했다"며 "상처받은 그 남자와 상처 입은 여자가 만난 그 결혼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려웠겠냐"고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화가인 남편과 청담동에서 갤러리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갤러리를 운영하는 남편 학교 선배의 권유로 외국에서 10억원어치의 그림을 사게 됐다. 무려 50억을 남겨준다는 솔깃한 권유였다.

그림을 사러 실크로드를 갔고, 모스코바로, 뉴욕, LA를 왔다 갔다 한 달을 보냈다. 화상(畫商)을 정식 루트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약속 장소가 자꾸 바뀌어 2주를 예정하고 들어간 것이 한 달이 되었다.

전 소장은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마어마한 작업을 하고 계셨던 같다"며 말을 이었다. 

그때 서울에는 폭우가 쏟아졌고, 전 소장 부부가 입국하기로 한 시점에 큐레이터들은 하와이로 연수를 가기로 얘기가 돼있었다. 그들이 연수를 떠나고 갤러리가 빈 그때였다.

한 달을 체류하고 새벽에 서울에 도착하니 세콤(사설 보안경비업체)에서 전화가 빗발쳐 있었다. 그 새벽에 전화를 하고 갤러리로 바로 오라는 말에 달려 갔더니 문이 열리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면서 뒷마당 하수도 구멍이 낙엽에 막혀 갤러리로 물이 넘어와 전시 작품들과 전시하려고 받아놓은 이태리 작품들이 다 훼손된 상태였다.

작품이 망가져 부도가 났다. 그녀는 "그 사건이 주님께 다시 돌아온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갚을 길은 없고, 작가들의 돈이 손해가 났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기도하면서 방법을 물으니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전부 부르라'는 응답을 받았다.

딸아이를 들쳐 업고 3시간을 갤러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작가들부터, 큐레이터, 고객들까지 다 왔다.

전 소장은 "저를 믿고 돈을 빌려주셨는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재산에 축을 냈습니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돌로 치듯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냐, 그렇게 빠져나가려고 하느냐'고 고함을 쳤다.

그런데 한 원로작가 한명이 "우리가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살아왔지만 얼마나 우리 그림을 가지고 장난치고 팔아먹었던 사람들이 많았나. 이 사람같이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본적이 없다"면서 "한번 믿어주자"고 했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전 소장은 "그분이 그때 나타나신 '예수님'이라고 생각한다"고 간증했다.

그녀는 "법정에 가면 그 큐레이터 직원들만 법에 저촉되고 대가를 지불하면 되는 거였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셔서 내려놓았다"며 "그 사건 다음부터 아파하는 가정, 힘들어하는 아내들을 돕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 무너짐…'일어섬의 시작'

그때쯤 IMF 외환위기가 터져 가정들이 붕괴되고 있다는 숱한 보도들을 보면서 쉼터를 시작했고 다니던 교회에서는 가정사역을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 선배가 운영하던 프랜차이즈 식당의 서빙을 하며 돈을 벌었다. 갤러리 관장으로 불리던 여자가 아줌마로 불리며 김치 갖고 오라고 다그침 받는 것이 서러워 많이도 울었다. 그렇게 3개월을 일하다 청량리 지점의 관리자로 가게 됐다.

청량리 588 지역으로, 식당은 도로변에 있었지만 뒷문으로 나가면 성매매업소들의 윈도우가 줄지어선 곳이었다. 성매매금지법으로 그곳이 문 닫을 때쯤이었다.

그때쯤 어느 한 오후 술에 취한 젊은 여성이 삼계탕 한 그릇을 시켜놓고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지배인에게 연락이 왔다.

2층에 있던 전혜련 소장이 내려가 보니 스물 세넷 되보이는 예쁜 아가씨가 삼계탕을 집어 던지고 울고 있더라는 것이다.

말을 거니 "내 말 좀 들어보라"며 "세상이 정말 더럽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사무실로 올라가자고 해서 마주 앉으니 3시간 동안 왜 자신이 성매매현장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는지, 2년만 더 있으면 5억을 만들 수 있는데 어디 가서 돈을 버냐고, 섬에 팔려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 마음 아픈 얘기들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전 소장은 종로경찰서 청장에게 편지를 썼다. 그랬더니 경찰서에서 그 여인들에게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겠냐며 성매매특별지역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게 소문이 나서 한 명 두 명 전 소장에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전 소장은 "그때부터 그 여성들 아파하는 이야기를 들어줬어요. 그러다 상담사가 된 거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전 소장 자신의 가정에서 남편은 존재감이 없었다. "저희 남편은 여전히 가족과 먼 삶을 살았고요. 그림을 그리니까 자유롭게 다니며 연락도 안됐고, 저는 아이와 살았어요."

■ 나그네와 과부된…여성들 쉼터 되어

그러다 갤러리를 하며 알았던 옛 지인들에게 연락이 왔고, 밴쿠버에 갈 기회가 생겼다.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삶의 기회인가 싶어 남편을 찾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딸과 둘이 캐나다행을 결심했다.

그곳에서 6개월을 지내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신학생이나 전도사들 사모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됐다.

그들은 남편의 학업을 위해서 음식점에서 서빙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다. 그런데 손님들이 권하는 술 한두 잔이 크리스천으로서 양심에 꺼리지만 팁을 받으면 그것으로 다음날 자녀에게 용돈이라도 얼마 줄 수 있으니 받아 마셨다는 것.

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일이 끝나도 바로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술을 깨느라 밖에서 배회하는 모습이 딱해 전 소장은 위험하다며 어느 시간이고 와서 쉬라고 했다.

일주일 후 새벽 2시쯤 어느 교회서 한번 봤던 여성이 찾아왔다. 그렇게 그곳에서도 쉼터가 시작됐다. 밤새 이야기를 듣고 따뜻한 밥을 먹여 보냈다.

전 소장은 지금은 안산 자택에서 다문화여성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위한 쉼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7년전 사별한 남편은 내재된 분노로 폭력을 휘둘렀고, 남편이 술 먹고 올 때 가슴 졸이는 것 나도 경험했다고.... "

그렇게 자신도 그들에게 아픔을 털어놓고 공감해준다고 전 소장은 전했다. 비극을 넘어서 수많은 가정을 회복시키는 '상처 받은 치유자'로 우뚝 선 그녀의 삶이 이 책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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