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학회(회장 정병준)가 최근 온라인 줌(Zoom)을 통해 제445회 학술발표회를 개최하고 한국 기독교 역사와 근대 사회 변화를 조명하는 연구 성과를 공유했다.
이날 학술발표회는 김성은 교수(전남대학교·한국기독교역사학회 지역이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발표회에서는 남슬기 박사(영국 SOAS)가 ‘영국성공회 초기 의료 선교 활동: 서울 낙동과 정동의 의료공간 변화를 중심으로, 1890-1904’를 주제로 발표했으며, 차현지 박사(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는 ‘목사 현순의 기독교적 실천의식과 3·1운동기 외교독립운동: 목회 활동·생활윤리·외교 텍스트의 연속성을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논찬은 김세훈 교수(연세의대 동은의학박물관장·병리학교실 교수)와 한규무 교수(광주대학교)가 각각 맡았다.
◆ 서울 정동과 낙동 중심으로 전개된 영국성공회 의료선교 재조명
첫 번째 발표에 나선 남슬기 박사는 영국성공회 한국선교회가 의료선교를 초기 선교활동의 핵심 과제로 인식하고 추진해 왔다고 설명했다.
남 박사에 따르면 영국성공회의 한국 선교는 1889년 캔터베리 대주교에 의해 한국 교구가 설립되고 찰스 존 코프(Charles John Corfe)가 초대 주교로 서임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영국성공회는 목회와 교육, 번역 사업보다 의료사업의 정착을 우선적으로 추진했으며, 서울에서는 낙동과 정동을 중심으로 의료선교 활동을 전개했다. 이곳에 설립된 선교병원과 진료소는 1890년부터 1904년까지 약 14년 동안 성공회 초기 의료선교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다.
남 박사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서구 선교사들과 외국인들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의 활동이 서울과 개항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며 “영국성공회의 초기 선교 역시 서울과 인천 제물포를 중심으로 전개됐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 근대 의료선교 연구가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 보구녀관, 동대문부인병원 등 미국계 선교병원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며 “이러한 연구들은 서양의학의 도입과 의료기관 형성, 여성 의료와 간호교육의 발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지만, 영국성공회의 의료선교 활동은 상대적으로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남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 1890년부터 1904년까지 서울에서 전개된 영국성공회의 초기 의료선교를 ‘의료공간의 형성과 변화’라는 관점에서 검토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국성공회의 서울 의료선교는 단순히 병원을 설립한 역사가 아니라 의료공간을 형성하고 재편해 나간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성공회는 서울 진출 초기부터 정동과 낙동 두 곳에 의료거점을 마련했으며, 각 공간은 서로 다른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도록 계획됐다. 또한 두 시설은 단순한 진료소를 넘어 병동과 수술공간, 약국 및 약품보관소, 간호공간 등을 갖춘 의료시설로 발전했다”고 했다.
특히 “낙동의 성마태병원은 기존 한옥 기반 의료시설에서 벗어나 유럽식 병동을 도입하고 간호수녀와 간호사의 상주 간호체계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의료공간을 실험한 사례로 평가됐다”며 “반면 정동의 성베드로병원은 외교공간이라는 입지적 장점을 바탕으로 성장했지만 대한제국 수립 이후 경운궁의 황궁화가 진행되면서 의료공간 운영 환경에도 변화가 나타났다”고 했다.
남 박사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성공회가 서울 시내에 추가 진료소를 설치하는 등 도시환경 변화에 적응했다”며 “이는 의료공간이 정치·사회적 환경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연구의 의의로 미국계 선교병원을 중심으로 진행된 기존 연구를 보완해 영국성공회 의료선교의 존재와 역할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을 꼽았다. 또한 의료공간의 형성과 변화에 주목함으로써 근대 의료기관을 도시공간과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연구가 서울 의료시설의 공간적 형성과 변화에 초점을 맞춘 만큼 실제 의료활동의 구체적 양상과 환자 구성, 질병 구조 등에 대한 분석은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고 밝혔다. 남 박사는 “간호수녀와 전문 간호인력의 역할, 의료선교사들의 활동, 그리고 1904년 서울 병원 폐쇄 이후 인천과 지방으로 이동한 성공회 의료선교의 전개 과정은 향후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끝으로 그는 “영국성공회의 서울 의료선교는 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한 역사를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공간 속에서 새로운 의료공간을 형성하고 변화하는 정치·사회적 환경에 대응하며 영국의 의료문화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조정해 나간 과정이었다”며 “정동과 낙동의 의료시설은 한국 근대 의료선교가 의학의 전파를 넘어 공간과 사회, 권력과 문화가 교차하는 역사적 과정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했다.
◆ 목사 현순의 독립운동, 기독교 사회윤리의 확장 과정으로 해석
이어 발표한 차현지 박사는 기독교대한감리회 목사였던 현순(1879~1968)의 독립운동을 그의 기독교적 실천의식과 사회윤리의 연속선상에서 조명했다.
차 박사는 “일제 식민지 시기 종교계 지도자들 역시 시대적 격변을 피할 수 없었으며, 3·1운동은 종교계 인사들이 신앙 활동을 넘어 민족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순이 오늘날 민족대표들의 요청을 받아 상하이로 건너간 목사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기여한 독립운동가, 그리고 미국에서 외교독립운동을 펼친 인물로 기억되고 있지만, 평범한 목회자에서 독립운동가로 변화하게 된 사상적 배경과 실천적 동기에 대해서는 여전히 연구가 필요한 영역”이라고 덧붙였다.
차 박사에 따르면 현순은 조선 말기 중인 관료 집안에서 태어나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유교적 질서와 봉건적 관습에 대한 회의, 개화사상과 서구문명에 대한 관심을 함께 갖고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기독교 수용과 목회 활동을 통해 더욱 구체화됐다.
그는 “현순에게 기독교는 단순한 개인적 신앙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하와이와 국내 목회 현장에서 민중을 교육과 계몽을 통해 변화시켜야 할 대상으로 인식했으며, 전도와 교육을 통해 자유롭고 책임 있는 공동체 구성원으로 세우고자 했다”며 “이는 복음 전파와 사회개혁의 지향이 결합된 실천적 목회 활동이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러한 기독교적 실천의식이 가정생활에서도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현순은 전통적 권위 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자녀에게 체벌을 가하지 않았고, 아들과 딸의 역할 차이를 완화하려 했으며, 복종보다 독립성과 인격 존중을 중요하게 여겼다”며 “이는 기존 가족질서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 아니라 가정 내 폭력적 권위와 위계를 절제하고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고 평가했다.
차 박사는 “현순의 목회 활동과 가정생활 윤리가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봉건적 억압과 폭력적 권위에 대한 문제의식이 기독교적 실천윤리로 구현된 연속적 장이었다”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일제 식민지배 아래 반복되는 억압과 폭력의 현실 속에서 자유와 인권, 정의의 회복이라는 더 넓은 과제로 확장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1919년 2월 19일 기독교계 민족대표들로부터 외교통신 임무를 부여받은 사건은 현순의 목회적 실천의식이 외교독립운동이라는 공적 영역으로 확대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고 했다.
더불어 “상하이에 도착한 이후 현순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과정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3·1운동의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노력했다”며 “독립선언서 영문 번역과 언론 기고, 외교 전문 작성 등을 통해 한국인의 자유와 일제의 탄압 실상을 국제사회에 전달하는 데 힘썼다”고 했다.
차 박사는 현순이 관여한 외교 텍스트들이 한국 독립을 개인의 자유와 생명의 존엄, 인류 복지, 비폭력 저항의 언어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는 그의 외교독립운동이 단순한 반일 선전이나 임무 수행을 넘어 식민지배로 훼손된 자유와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윤리적 실천이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어 “현순의 독립운동은 목회 활동과 단절된 돌발적 항일운동이 아니었다”며 “목회 현장과 가정생활 속에서 형성된 기독교적 실천의식이 3·1운동이라는 역사적 계기를 만나 민족적·국제적 차원으로 확장된 결과”라고 했다.
아울러 “현순의 독립운동은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축적된 기독교적 사회윤리 인식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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