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난 팰드스타인 CEO
조나난 팰드스타인 CEO. ©root-source.com/bridgebuilders/jonathan-feldstein/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조나단 펠드스타인의 기고글인 ‘이스라엘 군인의 예수상 파손 논란이 던지는 질문,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Uproar over an Israeli soldier destroying a statue of Jesus: What are some lessons we can learn?)를 최근 게재했다.

조나단 펠드스타인은 Genesis 123 Foundation과 RunforZion.com 의 사장 겸 CEO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이스라엘과 하마스(Hamas), 헤즈볼라(Hezbollah), 후티스(Houthis) 그리고 이란이 얽힌 장기 분쟁이 2년 반 넘게 이어지면서 사태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비난과 이미지, 상반된 서사들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어떤 의혹이 제기되면 사실 확인 이전에 이스라엘부터 정죄하는 반응이 자동적으로 따라붙곤 한다.

그러나 바이럴 이미지나 초기 보도가 언제나 사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역시 우리는 반복해서 경험해왔다.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판단을 유보하는 신중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 비록 세상의 법정은 너무 자주 이미 판결을 내려놓고 “이스라엘 유죄”를 외치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남부 레바논의 한 기독교 마을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예수상을 파손했다는 보도가 처음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은 그것 역시 긴장을 고조시키고 반이스라엘 정서를 자극하기 위해 퍼진 허위 정보일 가능성을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추가 사실을 확인한 결과,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이 사건은 곧바로 일부에서 이스라엘의 ‘민족 청소’, ‘기독교 박해’ 등을 입증하는 새로운 증거처럼 활용됐다. 이미 이스라엘을 비난할 이유를 찾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기존 불에 기름을 붓는 재료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대다수 이스라엘인들, 특히 기독교 공동체와 다리를 놓기 위해 애써 온 이들에게 이 사건은 변명의 여지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광범위한 비판을 받은 것은 마땅했다.

다행인 점은 이스라엘군(Israel Defense Forces)이 하루 만에 사건을 조사했고, 관련 병사 두 명을 전투 임무에서 배제한 뒤 구금 조치했으며 현장에 있던 다른 병력도 징계했다는 것이다. 또한 지역 기독교 공동체와 협력해 훼손된 예수상도 복원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여러 차원에서 충격적이다. 단순한 사유재산 파괴가 아니라 수백만 기독교인에게 신성한 종교 상징을 훼손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도덕적 문제를 떠나서도 레바논에서 이슬람 무장세력과 전쟁 중인 군인들이 이런 행동을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묻게 된다.

유대-기독교 이해 증진을 위해 일해 온 이들에게 이 일은 특별히 아픈 사건이 되어버렸으며 종교 간 관계를 넘어 이 행동은 기본적 윤리와 도덕 기준을 명백히 어긴 일이 되었다. 어떤 이유도 예수상을 훼손 시킨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 사건 이후 대응은 중요한 대조점도 보여줬다. 이스라엘군은 사건을 인정했고 즉각 조치했다. 이는 이런 행위가 이스라엘의 가치관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사건 자체는 강하게 규탄받아 마땅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묻는 사회적 반응은 오히려 주목할 부분이다.

특히 지역 내 많은 행위 주체들이 자신들의 학대나 폭력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현실, 더 나아가 이슬람권 전반에서 벌어지는 광범위한 기독교 박해에 침묵하는 현실과 비교하면 이는 중요한 차이로 보인다.

이번 사건이 드러낸 더 깊은 문제

많은 기독교인 친구들은 묻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이 질문은 단지 병사 한 명의 일탈을 넘어 더 깊은 이해의 간극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많은 이스라엘인은 실제로 기독교인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다. 국내든 세계적 차원이든 마찬가지다. 기독교인 이스라엘 시민이 군 복무를 하고 있고 세계 교회가 이스라엘을 정치적·영적으로 지지한다 해도, 이런 관계는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추상적이다.

많은 기독교 순례자들이 이스라엘을 찾지만 그 경험은 종종 이스라엘 사회와 깊이 만나는 경험이라기보다 나란히 스쳐 지나가는 경험으로 남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중동에서 자유롭게 신앙을 실천할 수 있고 매년 인구가 성장하는 유일한 기독교 공동체가 이스라엘 기독교인들이지만, 정작 많은 이스라엘인은 평생 기독교인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다.

여기에 역사 기억도 작용한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3,500년 전 출애굽 해방을 기념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기독교인을 잘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강한 역사 기억은 또 다르다.

그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자행된 유대인 박해의 기억이다. 초대교회 시절 이후 거의 2천 년에 걸친 그 기억 말이다. 오늘의 기독교인들과 실질적 관계가 없다면 오래된 선입견이 그대로 유지되기 쉽다. 이런 인식이 바뀌려면 시간과 의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설명이 예수상 훼손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다만 무지와 단절이 어떻게 어떤 사람이 그것을 잘못된 일로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는 있다. 실제로 유대인 지인들 가운데 기독교와 다리 놓는 사역에 대해 적대적 반응을 보인 이들도 있었지만, 동시에 현실을 새롭게 이해하며 눈을 뜨는 이들도 있었다.

정의는 선택적으로 적용돼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에 대한 반응은 또 다른 복잡한 문제를 드러냈다. 많은 사람들이 즉각 비판한 것은 정당하고 필요했지만, 일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 전체, 더 나아가 유대 민족 전체에 집단적 죄를 씌우려 했다.

개인의 일탈을 집단 전체의 본질로 일반화하는 태도는 공정성과 일관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인들이 구조적 박해와 폭력에 직면할 때 같은 수준의 분노가 잘 나타나지 않는 현실은 선택적 분노라는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이번 레바논에서 발생한 해당 사건의 심각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의에 대한 신뢰는 가해자가 누구든, 맥락이 무엇이든 동일한 기준으로 잘못을 대할 때 생긴다.

만일 누군가 이스라엘 군인의 예수상 훼손에는 격분하면서도 다른 지역의 국가 주도 기독교 박해에는 침묵한다면, 그것은 기독교인 복지에 대한 우려보다 유대 국가에 대한 적대감이 더 크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위기는 더 깊은 대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인 행동과 국가 정책을 구분하는 일이다. 병사 한 명의 부끄러운 행동이 한 나라 전체의 도덕 구조를 규정할 수는 없다. 동시에 그런 행동은 성찰과 교정을 요구한다. 한 사회의 진정한 수준은 잘못이 없느냐가 아니라 잘못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서 드러난다.

고통스러운 사건이지만 동시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더 깊은 대화의 계기, 더 강한 종교 간 연대의 계기, 제도 안 윤리 기준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스라엘과 기독교 동맹 모두가 오래된 고정관념을 넘어 서로를 더 직접적이고 존중 있게 만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이스라엘을 쉽게 비난해 온 기독교인들에게도 정직한 대화를 시작할 창이 될 수 있다.

훼손 행위 자체도, 그것을 이용해 이스라엘 전체를 악마화하려는 시도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이후 무엇이 이어지느냐 따라서 책임 추궁, 성찰, 그리고 새 헌신이 그것을 부끄러운 일회적 사건으로 남길지, 더 나은 무언가의 출발점으로 만들지를 결정할 것이다.

궁극적 목표는 단지 유사 사건을 막는 것이 아니다. 상호 존중에 뿌리내린 진정한 이해를 세우는 것이며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노력에 함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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