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애 박사
이경애 박사

기독교 최대 중요한 절기인 부활절이 지났다. 올해는 교회 내적으로 뿐 아니라, 외적 공공장소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진행되었다. 다시 기독교의 복음을 회복하고 부활의 삶을 기대하는 열망이 어느 때보다 간절한 부활절이었나 싶다. 이제 절기로서의 부활절, 행사로서의 부활주일은 지나갔다. 우리는 이제 이 부활의 증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정직하고 진지하게 대답할 때이다.

심리적으로 가장 단단한 삶의 표현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나만의 루틴을 지키는 것이다. 날마다 자신에게 자발적으로 부여된 삶의 과제가 있을 때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날 힘과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람에게 가장 간절하고 근본적인 물음은 의미 물음일 텐데 날마다 자신이 설정한 의미 있는 루틴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오늘 일어나 할 일이 있고, 그 임무를 수행할 엄중하고 신성한 의무감이 있기 때문에 하루를 시작할 내적 동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 이후 여러 갈등과 자괴감, 절망과 패배감에 흔들리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가신다. 요한복음 21장에서의 부활하신 예수님의 조찬으로의 초대는 수치심과 부끄러움, 그리고 회의감으로 복잡한 제자들, 그리고 우리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보여주신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식사하시고, 베드로의 사랑 고백을 받으시며 결국 최후 사랑의 명령으로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다. NIV 영어 성경에서는 ‘feed’, ‘take care of’의 표현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다양한 돌봄의 형태를 제안하고 계심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양을 돌보고 먹이는 것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라고 할 수 있는 만민 구원, 모든 민족을 제자 삼는 위대한 선교 사명이지만(마가복음 16장 15절), 돌보는 사명은 단지 이러한 거창한 타이틀이 주어져야 행할 수 있는 사명은 아니다. 돌봄은 일상에서 늘 행해질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며, 부활 이후를 사는 기독교인의 날마다의 일상의 사명, 루틴이기도 한 것이다.

사랑 호르몬, 행복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Oxytocin)은 어머니가 어린 아기에게 젖을 먹일 때, 누군가와 사랑이 담긴 신체적인 접촉을 할 때, 그리고 누군가를 친절하게 도와주는 봉사와 같은 활동을 할 때 증가된다고 알려져 있다. 단지 기분만이 아닌 우리 몸에서 이러한 행복 호르몬이 작용하여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만족감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남을 향한 친절한 행동, 힘이 되는 격려의 말, 나의 작은 희생을 통해 주변을 부드럽게 하는 행동들이 결과적으로 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선을 행하는 자에게도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다.

돌보는 행위는 그것이 먹이는 것이든 또 다른 양육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든 우리를 살게 하고 만족감을 주고, 삶을 의미 있고 보람 주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부활의 예수님께서 내적, 외적으로 복잡한 제자들에게 얼마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셨겠는가? 얼마나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은 말씀도 많으셨겠는가? 그러나 성경은 제자들이 예수님과의 공동체 안에서만 위로받고 격려받는 것만을 지향하지 않는다. 성경은 부활의 증인인 제자들이 자아를 확장하여 선을 베풀고 보다 섬기며 관용적인 삶을 살도록 격려한다. 그리고 이것이 부활의 증인이 된 우리들의 날마다의 삶의 의미이며 루틴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계신다.

떠들썩한 행사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약간의 허무감과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부활절이 단지 행사일 때 그럴 것이다. 그러나 부활의 ‘삶’이 우리의 일상이 될 때 기독교인은 요동하지 않고 차분하고 단단한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님이 맡기신 생명을 먹이고 돌보는 일이다. 날마다 주어진 일상에서 작은 선을 베풀고 나누는 행동의 변화, 이것이 바로 부활의 삶인 것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두려워하지 말고, 부활의 증인으로 거창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섭섭하게 여기지 말고, 오늘 내 주변에 한 사람에게 먹이고 돌보는 한 가지 일을 실천해 보자. 따뜻한 격려의 말, 작은 간식의 나눔, 관심으로 주님께 올리는 그 한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 나아가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용기 있고 힘 있는 도전까지 말이다.

오늘은 의미 없고 허무하고 무료한 날이 절대 아니다. 눈을 들어 돌아보자. 나의 선한 행위를 기다리는 그 이웃을 향한 나의 작은 돌봄을 실천할 때, 오늘을 위대한 한 날로 만드는 부활의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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