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하비 키야니 박사의 기고글인 ‘제국의 유혹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독교적 증언을 지키는 길'(Maintaining faithful Christian witness when faced with the temptations of empire)를 1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키야니 박사는 말라위 선교사이자 신학자로서 CMS(영국) 개척자 미션 트레이닝의 아프리카 기독교 프로그램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 필자는 영국의 복음주의 선교 단체 네트워크인 Global Connections의 최고경영자(CEO)로 섬기고 있었다. 그 직후 필자는 선교 단체 지도자들과 함께 한 역사적으로 기독교 국가였던 유럽의 한 나라가 또 다른 기독교 국가를 침공한 상황에 대해 교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놓고 어려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가장 적절한 대응은 기도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필자는 더 적극적인 행동 방안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최소한 Global Connections가 정기적인 평화 기도 모임을 마련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 기도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예멘,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등 오랜 기간 무력 충돌로 공동체가 파괴되어 온 여러 지역을 위해 드려졌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사실이 있었다. 관심이 놀라울 만큼 빠르게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네 번째 기도 모임이 되었을 때 참석자는 필자와 팀원들뿐이었다.
그보다 더 깊이 인상에 남은 것은 또 다른 사실이었다. 유럽 전반에서 나타난 많은 반응이 전쟁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나 기독교적 증언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전쟁이 유럽 한가운데서 벌어지고 있다는 충격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긴급함을 불러일으킨 것은 무장 충돌을 피해 백인 유럽인들이 갑자기 피난하는 장면이었다. 오랫동안 예멘이나 수단, 콩고 같은 곳을 파괴해 온 전쟁은 멀리 떨어진 비극으로 여겨졌지만, 이번에는 갑자기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 사실은 필자에게 불편한 질문들을 던졌다. 왜 세계 교회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전쟁에 대해 더 깊은 신학적 통찰을 발전시키지 못했을까? 왜 우리의 반응은 일관된 도덕적 비전보다 가까움과 친숙함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가? 그리고 왜 비서구권 기독교인들의 반전 목소리는 자주 무시되는가?
이 질문들은 자연스럽게 기독교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영향을 미쳐 온 ‘정의로운 전쟁(Just War)’ 교리로 이어진다.
‘정의로운 전쟁’ 사상의 긴 그림자
일반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와 연관되는 이 교리는 폭력에 도덕적 한계를 두고, 그리스도인이 정치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안내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새로운 역사적 상황 속에서 글을 썼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는 더 이상 박해받는 소수 공동체가 아니었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체제 안에 편입된 종교가 되었고, 결국 제국과 깊이 결합하게 되었다.
필자는 아우구스티누스를 깊이 존경한다. 그는 북아프리카 히포의 아프리카인 감독이었고, 동시에 로마 세계의 시민이기도 했다. 그의 신학적 상상력은 기독교 신앙과 제국의 책임을 조화시키려는 정치 질서 속에서 형성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어떤 의로운 사람이 신앙이 없는 왕 아래서 군인으로 복무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분명히 어기지 않는 한 그는 시민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왕의 명령에 따라 싸울 수 있다. 명령이 불의하다면 죄책은 왕에게 있고, 명령에 복종한 군인은 무죄다."
즉 아우구스티누스는 의로운 사람이 불의한 통치자 아래에서도 군인으로 복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명령이 명백히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않는 한 군인은 복종할 수 있으며, 만약 불의한 명령이라면 책임은 명령을 내린 통치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매우 정교하다. 그러나 동시에 제국에게 매우 편리한 논리이기도 했다. 수세기 동안 이 논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제국 체제 안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었다. 신자들은 국가를 섬기고 전쟁에 참여하면서도, 그 명령이 하나님의 법을 명백히 어기지 않는 한 스스로 도덕적으로 무죄하다고 여길 수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도는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지만, 그 결과는 교회가 제국 권력에 적응하고 봉사하기 쉬운 신학을 만들어 냈다. 따라서 오늘날 이 전통은 성경적 관점에서 다시 진지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전쟁과 제국의 유혹
전쟁이 시작될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은 조용하지만 위험한 유혹에 직면한다. 어느 제국이 하나님 편인지 결정하려는 유혹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과 충돌하는 상황 속에서도 이 유혹은 다시 등장하고 있다. 공적 대화는 전략, 보복, 국가 이익에 의해 빠르게 지배된다. 정부는 안보와 억지력이라는 언어로 행동을 설명하고, 전문가들은 힘의 균형을 분석한다.
그러나 뉴스의 이면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공습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려는 가족들, 두려움 속에서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들, 그리고 내일 도시가 안전할지 알지 못하는 공동체가 있다.
이러한 순간에 예수의 제자들은 더 깊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제국이 여전히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시대 속에서 기독교적 증언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성경은 제국의 그늘 속에서 기록되었다 성경의 이야기는 제국의 그늘 아래서 펼쳐진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이집트, 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같은 강대국들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에 활동했다. 이 제국들은 질서와 안정, 안전을 약속했지만 선지자들은 반복해서 경고했다. 지배를 통해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영적 위험이라는 것이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 로마 제국이 지중해 세계를 지배했다. 예수는 제국의 점령 아래 있는 땅에서 태어났고, 십자가 역시 단순한 처형 도구가 아니라 로마의 권력을 과시하는 제국의 도구였다.
초대 교회가 “예수는 주이시다”라고 고백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개인적 신앙 고백이 아니었다. 가이사도 ‘주’라고 불리던 세계에서, 참된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선언하는 급진적 고백이었다.
제국과 복음 확장의 복잡한 관계
초기 기독교와 제국의 관계는 완전히 적대적이지만은 않았다. 로마 제국은 의도하지 않게 복음 확산의 환경을 제공했다. 로마가 유지한 비교적 안정적인 질서, 즉 팍스 로마나(Pax Romana)와 광대한 도로망, 해상 교역로는 장거리 이동을 이전 시대보다 훨씬 쉽게 만들었다.
사도들과 초기 선교사들은 이러한 제국의 길을 따라 이동하며 복음을 전했다. 다시 말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제국이 동시에 그의 부활 소식을 전파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이 관계는 이후 역사 속에서 더욱 복잡해졌다. 15세기 이후 유럽의 세계 확장과 함께 기독교도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상인과 군인을 실은 배에는 종종 선교사들도 함께 타고 있었다.
이 역사는 복잡하다. 기독교가 식민지 구조와 함께 전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많은 지역에서 영적 갱신과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을 낳는 힘이 되기도 했다.
세계 교회의 등장
지난 한 세기 동안 일어난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 교회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오세아니아에서 기독교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기독교 정체성은 더 이상 특정 문명이나 정치 블록에 묶일 수 없게 되었다.
유럽에서 사역하는 아프리카 출신 그리스도인으로서 필자는 종종 교회가 국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갈등을 바라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국가들은 어느 편이 승리해야 하는지, 어떤 이익을 지켜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나 교회는 화해가 여전히 가능한지를 묻는다.
같은 전쟁 속에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있고, 이란과 주변 국가에서도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 그리스도의 몸은 세계의 긴장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 긴장을 넘어서는 연합을 살아가도록 부름받았다.
제국을 넘어서는 증언
복음이 제국의 야망 속에 흡수될 때마다 교회는 신뢰를 잃는다. 교회의 사명은 강대국의 전략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는 것이다. 그 나라는 지배가 아니라 화해, 정의, 겸손, 희생적 사랑을 통해 나타난다.
이 말은 정치 현실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정부는 실제 안보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갈등은 오랜 역사 속에서 형성된다. 그러나 교회는 군사적 승리가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라고 믿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초대 교회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 가운데 하나 아래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들의 증언은 로마 군대에 의존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민족의 장벽을 넘어 형제자매가 되는 공동체를 세웠고,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이 다른 모든 충성을 재정렬하도록 만들었다.
조용하지만 어려운 증언
전쟁의 시대에 기독교적 증언은 정치와 미디어의 수사보다 훨씬 조용하게 보일 수 있다. 그것은 한 민족 전체를 악마화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두려워하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일 수 있다. 심지어 우리 편에서 나오는 선전에도 저항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지정학적 갈등 앞에서 작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제국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결국 세계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믿음을 드러낸다.
역사를 보면 제국은 계속해서 흥망성쇠를 반복해 왔다. 교회에게 남겨진 질문은 이것이다: "교회의 증언이 제국과 함께 흥망할 것인가, 아니면 제국이 무너질 때에도 여전히 신실하게 남아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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