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은 아브라함을 일상의 목축민이 아니라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인물로 조명하며, 그의 신앙을 개인적 차원을 넘어 세계사적 무대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창세기 14장은 신앙인의 삶이 현실의 국제 질서와 충돌하는 지점에서 어떤 선택과 고백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준다.
본문의 사건은 동방의 강대국들이 13년 동안 지배해 오던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면서 시작된다.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네 나라 연합군은 요단 남방의 다섯 도시 국가를 진압하기 위해 출정했고, 이 과정에서 소돔에 거주하던 롯이 포로로 잡혀갔다. 이 전쟁은 약자를 지배하려는 강자의 야욕과 자주 독립을 꿈꾸는 약자의 저항이 충돌한 결과였다.
국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라함 앞에는 살렘의 왕이자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과 소돔 왕이 차례로 등장한다. 여기서 본문의 핵심은 가나안 종교의 엘 하나님 신앙과 아브라함의 야훼 신앙이 만나는 장면이다. 아브라함은 소돔 왕이 제안한 물질적 전리품은 거절했으나, 멜기세덱이 선포한 축복은 겸손히 받아들였다.
이는 가나안의 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야훼 하나님이 동일한 분으로 고백되는 신앙적 장면으로, 야훼 신앙이 가나안 땅 속에서 보편적 신앙으로 자리 잡아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멜기세덱은 전쟁의 승리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역사로 선포했고,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드림으로 그 고백에 응답했다.
히브리인, 곧 떠돌이로 살아가던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그가 이끈 318명의 사병은 침략군을 격퇴하며, 성경에서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군사 행동의 첫 사례로 등장한다.
전쟁은 본질적으로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지만, 생명을 보호하고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전쟁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본문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아브라함의 전쟁은 정복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구출과 회복을 위한 전쟁이었다.
본문은 죄악의 도성 가까이에 거주하며 신앙의 긴장을 잃어버린 롯의 삶과, 경건함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켜 온 아브라함의 삶을 뚜렷하게 대조한다. 롯의 포로 사건은 세상에 지나치게 가까이 머물 때 신앙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이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세상을 미워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시지만, 분명한 성별을 요구하신다. 롯에게 임한 사건은 징계의 성격을 지니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이 죄에 잠기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하나님은 스스로 돌이키기를 기다리시지만, 끝내 깨닫지 못할 때는 직접 개입하셔서라도 돌이키게 하신다.
아브라함이 롯을 구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중보와 하나님의 긍휼이 함께한 결과였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보다 더 큰 권위를 지닌 왕이었지만,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떡과 포도주를 내어주었다. 이는 훗날 그리스도께서 주실 생명과 희생을 예표하는 상징으로 이해된다.
개선 장군처럼 돌아온 아브라함은 살렘의 왕이자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영접을 받고, 그 앞에 무릎을 꿇어 축복을 받으며 평화의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다.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는 평화 운동의 출발점이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 온전히 존중받는 상태이다. 전쟁과 폭력은 언제나 가장 약한 이들, 곧 어린이와 노인부터 무너뜨린다.
분쟁과 갈등이 지속되면 사회는 불신과 증오로 병들고, 경제는 붕괴되며 교육과 문화는 설 자리를 잃는다. 반대로 평화가 유지될 때 사회는 신뢰와 협력, 창조성을 회복한다. 그러나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의식적인 노력과 용기 있는 행동,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폭력은 전쟁과 무력 충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난과 차별, 혐오와 불의 또한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평화 운동은 이러한 구조적 폭력의 원인을 드러내고 치유하려는 노력을 함께 포함해야 한다.
이 운동은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믿음 위에 설 때 지속될 수 있다. 전쟁은 하나님 없는 권력자들의 싸움이지만, 평화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아브라함의 후예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축복으로 만족하며 소돔 왕의 물질적 보상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는 자신의 부요함이 사람이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물질적 복은 영적 축복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았기에, 그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이러한 선택 속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단순한 승리자가 아니라 신앙과 평화를 실천하는 인물로서 깊은 품위를 지니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성경은 우상이 허망함을 말하고, 야고보 사도는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내려온다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쟁과 폭력의 우상을 내려놓고 참된 평화의 주님께로 나아가야 한다.
평화는 이상이 아니라 실천이며, 선택이고 책임이다. 평화 운동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한 사람의 용기 있는 결단에서 시작된다. 창세기 14장의 아브라함은 그 길을 오늘의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 땅에서 전쟁의 소용돌이가 사라지고 참된 평화의 날이 오기를 소망하며, 평화를 이루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다시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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