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재 목사
김흥재 목사(신광두레교회 평신도사역자훈련원 원장)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평신도 사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먼저 평신도란 누구인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평신도가 누구입니까? 평신도라는 말은 소위 평신도와 성직자를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은 적어도 신분적인 구분은 아니었습니다. 성직자라는 말도 3세기에 이르러서야 교회에서 어떤 직위를 지니고 있는 자라는 의미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중세 귀족과 평민 계급의 구별이 더욱 분명해 지는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도 영향을 받게 되고,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성직자와 평신도는 점점 신분적인 구분의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트렌트 공의회(1545-1563)에서는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사제, 부제, 서리부제, 복사(acolyte), 귀신 쫓아내는 사람, 성경 읽는 사람, 문지기 다음에 평신도가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성직자는 서품 성례를 통하여 사도적 권위와 권한을 승계받으며, 평신도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서 초자연적 은혜를 평신도와 불신자들에게 매개시켜 주는 신분적인 위치를 갖게 된 것입니다.

루터는 『독일 크리스천 귀족에게 보내는 글』에서 성직을 계층 구조로 이해하는 로마 가톨릭에 반하여, 모든 기독교인이 제사장 직분을 맞은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는 평신도와 성직자를 신분의 차이로 구분하기 보다는 서로가 맡은 직책이 다른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루터의 성경적인 주장은 신분적 구별에 대한 개혁이었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용어는 직능의 구별을 나타내는 것이지, 신분적인 구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는 성도인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만인 제사장을 통하여 평신도와 성직자는 하나님 앞에 동등한 신분을 가진 성도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만인 제사장 교리가 교회 내의 직분상의 구별은 폐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인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제사장이 되었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주님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교회에 몇 가지 직분을 허락하셨다는 것은 양쪽 다 성경과 모순되지 않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루터와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은 사제와 평신도라는 계급적 차별은 철폐했지만, 교회 안에서 목사, 장로, 집사, 교사와 같은 직분은 구별했습니다.

평신도 사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개혁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적 개혁 정신의 바탕 위에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에 평신도 사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평신도 사역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심방 목회에서 교육 목회로 페러다임을 전환해야 합니다. 교회는 군중으로 들어와 군사가 되어 나가는 곳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을 받은 후 사도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평신도들을 계속해서 가르쳤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고 곧바로 세상을 향하여 뛰어나간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도들로부터 말씀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말씀으로 평신도들을 양육하는 훈련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리더들은 성도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끄집어 내어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의 모든 초점을 제자들을 양육하는 것에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에 떠오르는 별 중에서 가장 뛰어난 12명을 뽑아서 거대한 스타디움의 강단에 세움으로써 교회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블루칼라에 속하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최소한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인격이 특별하게 뛰어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자기가 낫다고 싸우기도 하고, 보기 싫은 사람을 정죄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귀찮다고 내쫓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오순절 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자 오합지졸들이던 사람들이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어린 소녀 앞에서 말을 더듬던 베드로가 가장 용감한 리더요, 최고의 설교자로 변화했던 것입니다.

무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훈련받은 제자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군중으로 들어와 군사가 되어 나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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