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언론의 초점은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맞춰졌다. 올해의 주제는 ‘연결, 혁신, 번영’이었다. 각국 정상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고, 주요 의제는 미·중 정상회담, 관세 협상, 그리고 공급망 재편이었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는 졌고, 시진핑이 이겼다”고 평했다.
우리에게도 경제적 협상 결과 못지않게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낸 일이다. 이는 안보적 측면에서 중요한 진전이었다. 그러나 이런 국제적 의제들보다 국민의 일상에 더 직접적인 관심사는 물가, 주거, 고령화, 그리고 저출산 문제일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난 10월 31일 KBS ‘추적 60분’이 방영한 ‘고립사’ 편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방송은 “고독사” 대신 “고립사”라는 표현을 썼다. 단순히 혼자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연결망이 완전히 끊긴 채 방치된 죽음이기 때문이다.
방송이 공개한 한 현장은 충격적이었다. 사망 후 8개월 만에 발견된 고립사자의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바닥을 덮고 있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라기보다, 버려진 삶의 잔해처럼 느껴졌다. 화면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전문가들은 원인을 실직, 이혼, 질병, 경제적 파탄, 사회적 단절, SNS 의존, 그리고 무관심한 사회 분위기 등으로 진단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결이 끊긴 순간에 개입하지 못한 사회 시스템’의 부재였다. 사람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하지만, 사회가 그 고립을 방치할 때 비극은 현실이 된다.
이 문제의 대안을 찾아 영국의 사례가 소개되었다. 영국은 ‘링크 워커(Link Worker)’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고립 위험이 있는 1인 가구가 자신의 어려움을 신고하면, 링크 워커가 즉시 사회적 연결망을 구축해 준다. 건강 문제는 의사와, 채무 문제는 재정 전문가와, 외로움은 공동체나 취미 모임과 연결한다. 즉,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회적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단순한 연결이 고립을 끊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출발점이 된다.
한국 사회도 이미 심각한 고립 상태로 들어섰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19세에서 34세 사이 청년의 약 5%, 즉 50만 명이 극도의 고립 상태에 놓여 있다. 취업난, 인간관계 단절, 불안정한 소득, 열악한 주거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노년층이다. 배우자의 사망, 자녀의 독립, 건강 저하로 사회관계망이 급속히 축소된다. 이로 인해 외로움과 무력감, 그리고 생의 의욕 상실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는 지금 ‘연결의 위기’에 놓여 있다.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고립사 위험 가구도 함께 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조기 발굴과 예방 시스템이다. 지역사회가 먼저 나서야 한다. 지자체의 복지 인력, 주민센터,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들이 촘촘한 안부 확인망을 형성해야 한다. ICT 기술을 활용한 안부 확인 서비스, 고립가구 발굴 프로그램, 관계망 회복 프로젝트 등도 더 넓게 확산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잇는 마음이다. 영국의 ‘링크 워커’처럼 누군가의 손을 잡아 주는 사람, 관계의 끈을 다시 묶어 주는 사람, 그런 존재가 지역사회에 필요하다. 이 역할을 교회와 같은 종교단체가 맡는다면 사회적 의미는 더욱 커질 것이다. 종교가 단순히 신앙의 울타리를 넘어, 인간의 외로움과 고립을 돌보는 ‘사회적 링크’가 된다면 그 영향력은 매우 클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링크 워커’ 몇 명이 아니라, 서로의 삶에 다가가 손 내미는 한 사람, 한 사람이다. 그 연결의 손길이 모여 고립사 없는 사회, 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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