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 후속 논의가 마무리된 지 하루 만에 양국의 발표가 상반되면서 통상 외교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자국 시장을 100% 완전 개방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지만, 우리 정부는 이를 강하게 부인하며 “추가 개방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31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 간 관세협상 결과를 소개하며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중 1500억 달러는 조선업 분야에 투입돼 미국 내 선박 건조 사업에 사용될 예정이며, 나머지 2000억 달러는 알래스카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에너지 인프라, 핵심 광물, 첨단 제조업,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투자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러트닉 장관이 같은 글에서 “한국이 시장의 100% 완전 개방에 동의했다”고 언급한 부분이 논란의 불씨가 됐다. 대통령실이 앞서 “이번 협상에서 시장 개방은 없었다”고 밝힌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정상회담 직후 “농산물 추가 시장 개방에 대해 철저히 방어했다”며 “쌀, 쇠고기 등 민감 품목을 포함한 농업 분야의 추가 개방은 없었고, 검역 절차에서 협력과 소통을 강화하는 수준의 합의만 있었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러트닉 장관의 발언에 대해 즉각 반박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산 제품의 99.7%가 이미 무관세로 수입되고 있으며, 2031년까지 99.8% 수준까지 확대될 예정”이라며 “이번 협상을 통해 추가적으로 개방된 부분은 전혀 없다”고 못 박았다.
논란이 확산되자 김남준 대통령실 대변인도 “한국은 이미 대부분의 미국산 상품에 대해 시장을 개방한 상태이며, 이번 합의로 새롭게 바뀌는 내용은 없다”고 재확인했다. 반면 러트닉 장관은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양국 간 입장 차이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이번 협상에서 한국은 반도체 관세와 관련해 경쟁국인 대만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혜택을 확보하기로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이미 대부분의 관세를 철폐한 상태이며, 반도체 관세는 미국과 대만 간 협의가 마무리돼야 구체적으로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아직 미국과 대만 간의 협상이 끝나지 않아 세부 관세율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미국 정부는 앞서 철강과 자동차에 이어 반도체에도 품목별 관세 부과를 예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의 상반된 발표가 이어지면서, 통상 협상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둘러싼 의문이 커지고 있다.
사실 양국의 ‘진실 공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30일 한미 관세협상 타결 당시에도 미국은 “한국이 농산물 시장을 개방했다”고 발표했지만, 우리 정부는 “사실무근”이라며 즉각 반박했었다. 전문가들은 미국 측이 자국 내 정치적 목적을 위해 협상 성과를 과장 발표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정부는 이번 합의 내용을 명확히 하기 위해 양국 정상 간 논의 사항을 담은 팩트시트를 곧 공개할 계획이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는 관세와 안보 협력의 구체적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MOU)를 신속히 마련해 통상 협력의 틀을 제도화할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빠른 시일 내에 서명 절차를 완료하고, 관세 인하 및 후속 절차를 추진하겠다”며 “법안 발의 등 국내 행정 절차가 지연되지 않도록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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