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성 박사
양기성 박사

기독교 교회는 서구를 중심으로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늘 시대와 환경을 따라 복음의 효율적 선포를 강조해 왔다. 다시 말하면, 시대에 따라 필요한 신앙적 가치가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카톨릭은 중세 수도원 운동을 벌였는데, 이는 겸손과 경건의 덕과 훈련을 쌓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가장 뚜렷하게 기독교 역사선상에 나타난 것은 마틴 루터의 “의”라 할 수 있다. 그는 로마서를 쓴 사도 바울의 정신을 따라 “믿음으로 얻는 의(Justification by Faith)”를 강조했다. 믿음, 그리고 믿음에 의한 의는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한 신앙적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터는 사도 바울의 의의 신학 사상을 재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원은 믿음에 의해 이루어 지는 것이지 인간 도덕적 선행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님을 절실히 깨닫고, 모두가 인간적 선한 의지로도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을 보편적으로 믿었던 당시의 신학관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결국, 루터시대의 최고의 신학적 가치는 의(Righteousness)였음을 알 수 있다.

사중복음 중 첫째인 중생(Regeneration)은 역대 쟁쟁한 신학자들의 기본 신학적 관점이다. 특히, 칼빈이 한 예가 된다. 루터와 그리 오랜 시간적 공간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칼빈의 시대에서는 죄로부터의 벗어남, 즉 중생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듭남을 통해 새로운 존재(New Being)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중생(Re-birth)에 신학적 강조점을 두었다. 그리고, 거듭남의 일환으로 금욕주의의 실행을 주장했다. 이는 19세기 말, 장로교 신학자였던 A. B. Simpson에 영향을 주었고, 그에 의해 중생신학이 웨슬리신학과도 연관성을 가져 웨슬리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복음주의 신학에서도 중생(Regeneration)이라는 신학적 표현을 쓰게 되었다. 웨슬리는 중생의 과정을 거쳐 의에 이르고, 의를 거쳐 성결(Holiness)과, 성화(Sanctification), 그리고 영화(Glorification)에 이른다는 신학적 단계를 정립했다.

둘째로 감리교를 시작한 웨슬리는 중생과 더불어 경건주의 입장에서 ‘기독교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을 신학적 모토로 삼았다. 그의 경건주의는 거룩함과 정결의 결정체인 성결론과 맥을 같이 한다. 웨슬리가 성결을 그의 설교나 신학의 중심 메시지로 둔 이유가 바로 경건주의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웨슬리가 활동하던 시기의 영국 사회는 성결이 절실히 필요했다. 정치는 냉소주의에 빠져 있었으며, 거리에는 술 주정뱅이, 창녀들, 난잡한 줄거리의 소설, 교회직위를 사고파는 행위들, 노예 매매, 등 비인간적, 비도덕적 일들이 만연했다. 이러한 사회적 병폐를 없애고 복음에 입각한 신앙인의 사회를 만들고자 웨슬리는 스스로 발벗고 나서서 거듭남과, 성결한 삶을 살 것을 설교로 호소했다. 성결한 삶을 추구하되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강조했다. 그는 하나님 말씀이 아니고서는 개인이나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 주장했다. 거듭남, 재생을 경험해야 하는데, 인간 도덕이나 법, 또는 교육으로 변화되지 않음을 말했다. 즉 영적 변화를 통해서 인간은 성결의 은혜에로 변화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결에 이를 수 있는 완전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셋째로 웨슬리 신학은 신유(Devine Healing) 신학과도 연관되어 있다. 흔히, 육체의 질병의 완쾌만을 치유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신유는 영적인 변화, 즉 죄에서 회개를 통해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을 포함하기도 한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거나, 걱정 근심으로부터 벗어 나는 일, 지독한 증오심 같은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그 외 영적 죄로부터 자유케 되는 역사들 모두 신유에 해당한다. 인간이 감당 할 수 없는 상황으로부터, 자유함을 체험하는 것이 신적 치유다. 이러한 내용은 웨슬리의 산상수훈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설교에서 보상받지 못하고 사는 자들의 아픔을 위로로서 치유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실제 몸의 질병도 웨슬리의 설교는 이러한 치유의 뜻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 신유는 부패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정결케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넷째로 재림(Second Coming)이 웨슬리 신학과 관련을 가지게 되었다.그리스도의 재림이나 그의 다시 오심은 다양한 해석학적 뜻을 갖는다. 여기서 조직신학적으로 설명하기는 한정적이기는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 날 다시 오실 것이라는 내용이 정통 기독교에서 이해하고 있는 재림이다. 웨슬리 역시, 하나님이 역사를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에 대한 설교를 한 것에서 그의 재림 사상을 엿 볼 수 있다. 성령의 임재가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예표적 증거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서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리라 한 말씀을 믿는 신앙적 기대감을 설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웨슬리에게 있어서 사중복음은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웨슬리 신학에서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내용이 발견된다. 이는 그의 설교나 신학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웨슬리 신학의 장점은 이러한 내용들이 현장에 생동감있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흔히 신학자는 논리적으로 이론을 제시하는 것으로, 목회자는 설교하는 것으로 그날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웨슬리의 설교는 삶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거듭났다면 거듭난 자로서 실생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고, 성결한 삶의 자세가 현실생활에 직접 나타나도록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론을 가지고 말로서만 목회를 하거나 설교, 또는 신학을 하는 것은 웨슬리가 강조하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전도방법론이나 복음운동의 장점은 현실생활에서 열매로 나타나도록 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20세기 들어 한국에도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이 소개되어 성결교회에서는 이를 ‘전도표제’로 채택하였다. 교리라기보다는 교단 확장을 위한 전도방법론이었다. 이 전도표제로, 마치 웨슬리의 설교로 복음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처럼, 한국성결교회 역시 부흥하고 성장하게 되었다.

웨슬리의 실제적 복음화 활동은 여러 신학자들이 증언적 형식으로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웨슬리 자신이 말하기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이라 했고, 시카고신학교 교수였던 Theodore Jennings도 그의 책 “Good News to the Poor”에서 약하고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고 도와주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말하기도 했다. 죄로부터 벗어나 자유한 존재가 되는 중생, 성결한 실제의 삶, 다양한 정신적 육체적 질병으로부터의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치유,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시 오실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 등은 웨슬리와 사중복음의 관계를 잘 알게 해 준다. 사중복음은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특히 인간학적 사상이 인간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21세기에 더욱 강조되어야 할 복음전파의 방법론으로서 웨슬리의 현실론적 복음운동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웨슬리 신학이 세계화가 되었는데, 웨슬리 성결운동의 흐름속에 등장한 사중복음은 한국 내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성결교단은 사중복음의 가치를 자랑스레 말한다. 즉 거듭남, 성결, 거룩한 신적 치유,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에 대한 기대, 정말 이 세대에 가장 필요한 구원론적인 가치들이다.

루터 칼빈 웨슬리는 개신교의 영원한 3대 스승이다. 루터의 성자신학, 칼빈의 성부신학, 그리고 웨슬리의 성령신학으로 이어져 오늘의 개신교가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별히 웨슬리가 1738년 5월 24일 불타는 성령을 체험한 뒤에 뜨거운 성령신학자로서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을 일으켜 영국교회를 부흥시키고 유럽교회를 재건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기독자 완전(마 5:48) 곧 성결한 삶을 살기위해서 일평생 새벽 4시부터 7시까지 새벽기도를 규칙적으로 실천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외적성결 곧 사회적인 성화(성결)를 위해서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치유하며 섬기기 위해 윤락촌 광산촌 병원 교도소 등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십자가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는 88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5일 전까지도 전도자로 살았고, 그의 설교는 ‘중생 성결’(성화)을 강조하면서도 ‘신유 재림’에 대해서도 역설하였다. 1907년 5월 서울에서는 일본 동경성서학원에서 수학한 카우만과 길보른의 제자인 김상준과 정빈 두 사람이 동양선교회의 도움으로 오직 전도하는 단체인 ‘복음전도관’으로 시작되었다. 이때 사중복음이 구원론적인 차원에서 전도를 위한 표제로 제시되었는데, ‘거듭나고(중생) 성결하게 살면 신유를 통해서 건강한 몸으로 살다가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면 천년 왕국에 들어갈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성결교회의 시작은 18세기 영국에서 존 웨슬리의 성령신학 성결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고, 19세기 미국의 성령운동과 성결운동(디엘 무디. 마틴 냅)을 통해서 오늘의 성결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성결교회가 웨슬리의 내적성결은 추구하고 전도표제인 4중복음은 강조하였지만, 반면에 웨슬리의 외적성결 곧 사회적 성화(학교 병원 복지사업 등 문화선교)에 힘쓰지 않음으로써 외연확장에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여진다.

바라건대 한국성결교회가 웨슬리의 성령신학과 내적 성결운동에 앞장서면서도 외적성결인 이웃사랑의 사회복음 선교지향적 교회를 지향한다면, 21세기를 선도하는 세계적인 교회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기성